작업물/번역

[봇치더락SS] 사랑받는 너에게 사랑받고 싶은 나의 노래를 - 5

카와즈 2024. 5. 10.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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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을 뜨고 처음 비치는 건 흰 어깨와 중력에 따라 시트에 흩어진 금색 머리칼. 나는 담요를 가볍게 걷어내 윗몸을 일으키고는 크게 기지개를 켰다. 햇빛을 커튼으로 가로막은 이 방은 아침인데도 어둑해서, 막 일어난 것도 있어서 시야가 좁게 느껴졌다. 니지카의 머리카락을 들어올려서 목덜미를 드러내자 어제 남긴 자국이 하얀 피부에 도드라져서 욕망이 충족되어 간다. 생각하면 할수록 한심하다고 자신을 저주하며 한숨을 쉬고는 속옷과 옷을 입고 나서 자신의 책상을 향했다. 곡은 아직 절반도 완성되지 않았다.
 러브송. 니지카는 틈만 나면 진척을 물어본다. 아마 기대돼서 어쩔 줄 모르겠는 것이리라. 자신을 위해 만들어지는 그것이.
 부끄러우니까 못 쓰겠다는 건 맞긴 하지만 사실은 니지카가 충격받을 게 싫어서 못 쓰겠다는 게 정확하다.
 나는 니지카를 좋아한다. 애인이 되고 벌써 꽤 됐지만 니지카 말고는 생각할 수 없고 놓아줄 생각도 없다. 내게는 니지카밖에 없다. 그러니까 사귄 날부터 봇치에게 빚지는 건 그만뒀고 돈도 제대로 관리하게 됐다. 그런 걸로 버림받고 싶지 않으니까.
 니지카는 아마 내가 아니라도 괜찮은 거겠지. 상냥하고, 밝고, 올곧고, 글러먹은 나를 지탱해 주는 니지카에겐 나 말고 좋은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세이카 씨도 우리가 사귄다고 말했을 때 완전히 기뻐해 주지는 않았다. 그 때 생각했다. 내가 변하지 않으면 니지카 곁에는 계속 있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료……?"
 "니지카. 미안, 깨웠어?"
 "으응, 곡 만들고 있었어?"
 "응. 하지만 난항 중이야."
 "뭐어 천천히라도 괜찮아."

 화면을 들여다보고 쓸쓸하게 웃고는 속옷과 평상복을 입은 니지카는 거실로 이어지는 문을 열었고 방에는 나 혼자만이 남는다.
 내 사랑이란 건 무거운 걸 거다. 축축하고 묵직하고, 그리고 끈적하다. 생각하고 있는 걸 입에 담는 건 잘 못한다. 그러니까 노래에 담으려고 하고 있는데 그것조차도 무서워서, 자신이 얼마나 한심한지를 자각한다.
 니지카는 어떤 나라도 받아들여 준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들은 이 집에 없었다. 이런 나를 받아들여 주는 건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니지카뿐이고, 니지카 말고 다른 사람은 나를 받아들이지 말았으면 한다. 그 때 그 장소에서 내 베이스가, 내 음악이 좋다고 말해 준 건 다름아닌 니지카 단 한 사람이니까.

 "어디까지 써도 될는지……."

 컴퓨터는 변함없이 침묵해서 내 물음에는 답해주지 않는다. 요녀석 하고 화면을 부드럽게 쿡 찌르고 나는 고개를 떨구었다.
 봇치는 어떤 가사를 써 오려나. 나보다 먼저 곡이 완성되면 선배의 면목이 안 살겠다 생각하고 있으니 니지카가 "아침밥 다 됐어."하고 나를 불렀다.

 빵과 계란프라이, 그리고 햄과 소시지라는 딱 좋은 아침밥을 눈앞에 두고, 우물우물 그것들을 씹는 맞은편의 애인을 보고 있으니 "료도 빨리 먹어."하고 부끄럽다는 듯이 말하니까 어쩔 수 없이 나도 손을 댔다. 맛있다. 하지만 이 맛있음은 분명 소중한 사람과 먹고 있어서고, 같은 것이라도 혼자라면 이렇게 맛있어지지는 않을 느낌이 든다. 실제로 니지카가 집에 없을 때는 밥을 자주 거른다.

 "봇치 짱이 키타 짱이랑 재회하다니. 그래도 우리들하곤 안 만나 주겠지?"
 "니지카 엄청 화냈었으니까."
 "그건, 당연히 화내지."
 "그치."

 이쿠요가 결속밴드를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 니지카는 열화와 같이 화냈다. 평소의 온화한 분위기는 없었고 고성을 지르며 진정되지 않는 분노를 이쿠요에게 부딪히고 울었었다. 나는 이쿠요와 니지카 어느 쪽 편도 되지 못했다. 방향성 차이로 밴드를 그만둔 내가 보기엔 이쿠요가 밴드를 그만두는 이유는 정당하단 걸 알고 있었고, 동시에 니지카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쿠요가 필요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정말로 그랬을까. 이쿠요는 좋아하는 건 매달려서라도 해내는 사람이었으니까 부모가 취직하라고 한 것만으로 얌전히 말을 들을 거라곤 생각되지 않는다. 게다가 이쿠요가 없어도 STARRY는 결속밴드가 태어난 라이브하우스로서 유명해졌다.
 이제와선 만약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 억측이지만, 내가 얘기를 들어 줬으면 지금도 기타 보컬로 있어 주지 않았을까 생각하면 울적했다.

 "뭐 상관 없지만 말야. 이미 끝난 얘기고. 되돌이켜 봤자 소용 없어."
 "니지카는 이쿠요가 돌아오고 싶다고 하면 실제론 어쩔 거야?"
 "……봇치 짱한텐 그렇게 말했지만, 좀 못 받아들일 것 같아."

 분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는 니지카는 그만큼 이쿠요를 신뢰하고 있었던 것이리라. 진심으로 화낼 정도로, 진심으로 울 정도로. 하지만 이쿠요가 그 진심을 마주봐 주지 않았으니까, 그러니까 니지카는 지금도 마음속에서 애를 태우고 있다. 이쿠요에 대한 슬픔을, 분노를.

 "그래도 있잖아, 아마 내 탓이기도 할 거야. 리더인데, 좀 이상한 건 알고 있었는데 괜찮을 거라 생각해서, 나 좋을 대로 해석하고 키타 짱을 내버려 두고 혼자 고민하게 하고, 그치만 키타 짱 그런 걸로 그만둘 애가 아닌데."
 "니지카."
 
 톡톡 호박색 보석에서 물방울을 떨어뜨리는 소중한 애인을 보고 곧장 일어나 그 이상 아무것도 떨어지지 않도록 끌어안았다. 작은 몸은 그 이상의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것을 짊어지고 있다. 니지카는 그 전부를 자신이 짊어져야 한다고 멋대로 생각해서, 좀처럼 짐을 나눠 주지 않는다. 그런 부분이 거북했고 도움이 되지 못하는 자신이 싫었다.

 "있잖아, 전에 그랬잖아. 봇치 짱이. 기타를 좀 더 잘 쳤으면 키타 짱을 지킬 수 있었겠냐고. 나는 악기 중에서 제일 못했으니까. 리더인 주제에, 연상인 주제에. 멤버 하나 못 지켰으면서 리더 따위──"
 "이제 됐어. 니지카 잘못 아니야."
 "내 잘못이야! 키타 짱이 그만두지 말았으면 했는데, 계속 같이 있고 싶었는데. 내가 잘못한 거야. 결속밴드의 보컬은 키타 짱이란 말이야. 키타 짱밖에 없는데."

 왜 나는 끌어안고 있을 수밖에 없을까.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이 울고 있는데, 왜 안심시킬만한 말을 하나도 하지 못하는 걸까.
 내가 니지카 애인으로 있는 의미란 뭘까.
 작은 오열은 어렸을 때부터 세이카 씨를 걱정시키지 않기 위해 억눌러 온 것이다, 괴로울 때의 일그러진 웃음은 우리들을 불안하게 만들지 않기 위해 붙여 놓은 것이다.
 사실은 내가 니지카를 지탱해 줘야 하는데, 나는 전혀 지탱해 주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늘 발목을 잡고 부담을 강요하고 있다. 떨리는 얇은 어깨는 내가 끌어안은 정도로는 멈추지 않았고 등에 둘러진 팔에 힘은 들어가지 않았다.
 말하자면 니지카에게 있어서 나는 지켜야 할 존재에 지나지 않고, 그 역은 원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럼 니지카는 누가 지켜 줄까. 금이 가고 거칠어진 마음을 내가 아닌 누군가가 치유해 주기를, 니지카는 기다리고 있는 걸까.


 카페의 아이스커피를 마시면서 건네받은 가사를 읽는다. 작곡을 하게 되고 나서 가사를 보여 주는 건 이제는 안 하게 됐는데, 이번만은 봇치는 불안하다고 가사를 내게 보여 주었다. 혼자만 탱글탱글해져서는, 하고 밉살스러운 후배를 조금 노려보자 기성을 냈지만 "가, 가사 그렇게 글러먹었나요……?"라고 해서 "괜찮은 거 아냐?"라고 나는 답했다.

 "근데 왜 실연이야?"
 "아니, 실연했? 으니까요."
 "실연했으면 왜 의문형인데?"
 "아니, 아마 그렇겠다 싶어서."
 "잘 모르겠어."

 실연. 봇치가 이쿠요한테? 그런 일이 있을까 생각했지만 시간은 꽤 지났고 이쿠요는 그런 느낌의 여자애니까 애인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 그렇다면 실연송은 그럴 법한가 생각해서 다시 한 번 가사를 읽었다. 하지만 나쁘지는 않다. 봇치에게 러브송다운 러브송은 안 어울리고 이 실연송에는 봇치다움이 나타나 있었다. 말하자면 결속밴드다운 곡이었다.

 "좋다고 생각해. 봇치다워서."
 "저, 정말이요? 불안했어서, 그렇게 말해 주시니 기뻐요……."
 "이쿠요한테 남친이라도 있었어?"
 "아, 아아……아하하……글쎄요……있지 않을까요……."

 발끝이 모래가 되어 가는 봇치를 바라보면서 아이스커피를 3분의 1정도로 줄이고는 오늘 있었던 일을 생각한다. 아무리 지나도 니지카가 보기엔 나는 손이 가는 어린애고, 이래선 애인이라고 할 수 없는 게 아닌가 하는. 봇치와 이쿠요는 서로를 지탱해 주고 있었다. 우리와는 반대로. 상대를 지탱하는 걸 너무 의식한 나머지 지나치게 단단해진 철은 약간의 충격에 뚝 부러져 버린 거라고 나는 멋대로 생각하고 있다. 그녀에게 있어서 끈기가 봇치의 말이었는지 인터넷의 반응이었는지, 혹은 우리들의 응원이었는지. 그건 이제 와서는 알 수 없다.

 "……위로받고 싶은 게 아니라고 먼저 말해 둘게. 이쿠요가 그만두고 나서 니지카는 계속 상처받고 있어. 자기 탓이라고, 자기가 지켜주지 못한 거라고. 하지만 그런 니지카를 못 지켜주는 내가 제일 죄가 깊은 걸지도 모르겠다고 요즘 생각해."
 "아, 네."
 "어떡하면 지킬 수 있을까 생각해도 나는 곡을 만드는 거랑 베이스를 치는 것 정도밖에 할 수 없어. 니지카를 위해 누구한테 돈을 빌리는 것도 나돌아다니는 것도 안 하게 됐어. 하지만 그것만으론 아직 부족해."

 뭘 하면 좋을지 아직 모르겠다. 그걸 보이기엔 나는 역부족이고 확고한 게 아무것도 없으니까.
 하지만 니지카 옆에 있고 싶다.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내가.

 "그러니까 찾아 보려고. 니지카 옆에 있기 위해서 내게 필요한 거."
 "조, 좋다고 생각해요."
 "그치?"
 "아, 네."

 응원을 바랐던 게 아니라 그냥 토로하고 싶었을 뿐이었으니까 봇치의 네란 말이 기뻐서 나는 웃었다.
 기합을 넣기 위해 여긴 내가 사겠다고 말하고 계산을 하기 위해 지갑을 열자 내 몫을 낼 돈밖에 없어서, 영 폼이 살지 않는 내 결의표명이 됐다.



 지키겠다고 해도 표면적인 걸론 안 된다, 하지만 내면을 지킨다는 게 무엇인가 등등 생각을 하는 사이에 밤이 되어서 시모키타자와의 밤거리를 빠른 걸음으로 누비고 있으려니 니지카에게서 연락이 왔다. 오늘 밥 필요 없어? 라는 물음에 음성 메시지로 필요해! 라고 답하고 귀갓길을 서두른다.
 두꺼운 고기는 먼저 표면을 바짝 구운 다음에 천천히 속을 익힌다. 목욕을 할 때도 속부터 따뜻해진다고 말은 하지만 따뜻해지는 건 겉부터다.
 하지만 만약 고문을 당한다면 백 번 맞는 것보다 효과적인 건 소중한 가족을 인질로 잡히는 것일 테다. 소중한 사람이 상처입는 모습을 보는 건 자신의 고통으로는 다 잴 수 없을 만큼 괴로운 일이다. 가끔 감정은 육체보다도 아픔을 발한다. 그럴 때 형식적으로 끌어안더라도 속까지 치유는 전해지지 않는다.

 "모르겠다……."

 뭘 하는 게 니지카에게 제일 잘 전해질까.
 전한다고 하면 물건이다. 동서고금 높으신 분들이 이 방법 저 방법을 써서 여성을 손에 넣을 땐 보통 물건을 보낸다. 맛있는 것이니 고급품이니 유일무이니. 하지만 아무리 고급인 보석이나 옷이나 차를 선물한대도 니지카를 구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기쁘다고 하더라도 그뿐이다. 니지카에겐 전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일상적인 일. 집안일이나 청소. 하지만 그런 걸 하면 병원에 끌려갈 테고 (한 번 있었다) 니지카는 할 일이 없으면 할 일을 만드는 타입의 사람이니까 효과는 미미할 것이다. 슬픔을 일로 얼버무리는 종류의 사람이니까.
 방도가 다 떨어졌을지도 모른다. 봇치에게 호언한 건 좋았지만 역시 아무 생각도 안 났다고는 말 못한다. 너무 한심해서 눈물이 나온다. 훌쩍훌쩍 집 문을 열고 안에 들어가자 니지카가 마중을 나와 주었다.

 "어서 와. 늦었네?"
 "봇치 가사 보고 있었어."
 "오! 어땠어, 봇치 짱 러브송!"
 "실연송이었어."
 "뭐어……?"

 당황한 니지카가 "뭐 실연송도 러브송 중 하나니까 괜찮을지도." 하고 거실로 돌아가려는 것을 나는 팔을 붙잡아 끌어당겨 가두었다.

 "으앗, 뭐야. 무슨 일이야."
 "나는 니지카를 지키고 싶어."
 "뭐?"
 "니지카는 담아 두는 성격이고 나는 의지가 안 되니까 전혀 기대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나도 니지카의 애인이니까."

 괜히 고민하게 된다면 전해 버리자.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 아무리 시간을 함께 보내도, 아무리 같이 있어도. 말하지 않으면 중요한 건 아무것도 전해지지 않는다.

 "나는 니지카를 소중히 생각하고 있어. 누구보다도 마음에 그리고 있어. 니지카는 날 안 지켜도 돼. 지켜지는 게 싫다면 나도 안 지킬게, 그러니까."

 우리가 우리로서 있기 위해.

 "서로를 지키자."

 기대는 것만으론 안 된다. 서로가 서로를 지켜야 하는 것이다.
 그런 건 알고 있어도 좀처럼 되지 않지만, 니지카가 조금씩이라도 좋으니 나를 의지하게 되면 된다. 니지카가 어디에도 가지 않도록, 내 옆에서 말고는 울지 않도록.

 "……후후, 뭐야, 왜 그래. 말하고 싶어졌어?"
 "아침에 니지카가 울었으니까."
 "그런 대단한 거 아니야. 미안, 걱정 끼쳐서."
 "걱정 같은 게 아니라 내가 의지가 안 되니까."
 "그렇게 생각하게 해서 미안해. 의지가 안 되는 거 아니야, 오히려 의지하고 있어."

 그런 생각 안 하고 있으면서.
 한숨을 쉬고 싶어지는 걸 참고, 엄마처럼 행동하는 니지카에게 조금 신경이 거슬려서 쇄골에 이마를 밀어붙여 부볐다. 어제오늘로 바뀌는 관계가 아니란 건 알고 있다.

 "오늘은 카레니까 같이 먹자, 응?"
 "……응."

 소중한 사람을 지키고 싶다고 바라는 건 그렇게 나쁜 일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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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토라(虎) 님

원본 링크: 愛される君に愛されたい僕の歌を | https://www.pixiv.net/novel/show.php?id=20455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