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물/번역

[봇치더락SS] 사랑받는 너에게 사랑받고 싶은 나의 노래를 - 9

카와즈 2024. 5. 19.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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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ARRY에서의 연습이 끝나고 반성회를 하고 있을 때, 봇치가 완성된 음원을 들려 주었다. 전체를 통틀어서 밝지는 않다. 하지만 애절하고 마음에 울리는 가사. 이건 팔리겠다 싶었다. 봇치다움이 있으면서 대중에게도 먹히는 딱 좋게 밸런스가 맞춰진 곡. 나는 좋다고 생각하며 눈앞에 있던 니지카를 봤을 때, 시선을 내리고 어딘가 슬퍼 보이는 그녀의 상태가 신경 쓰였다.

 "갑자기 떠올라서. 무사히 완성됐어요."
 "엄청 좋은데, 실연송이 아니네?"
 "확실히. 가사 봤을 땐 실연송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그건, 어어, 그게. 맘이 바뀌어서."
 "그렇구나."

 결국은 이쿠요를 향한 사랑 고백인가. 곡을 통해서 고백이라니 로맨틱한 짓을 한다 싶어서 봇치의 어깨를 툭툭 치자 헤헤헤 하고 웃었다. 역시 생기가 넘친다. 왜일까 멍하니 생각하고 있으려니 스튜디오 연습은 끝나고 니지카는 알바를 하기 위해 남았다. 도와 주겠다고 해도 니지카는 거절해서 나는 밖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STARRY 바로 앞 보도에 있는 화단에 주저앉아 담배를 입에 문다.

 "야, 우리집 앞에서 담배 피지 마."

 불을 붙이기 전에 세이카 씨는 지하 계단에서 내게 말했다. 용케도 보였네 생각하면서 어쩔 수 없이 케이스에 담배를 집어넣고는 색이 없는 한숨을 쉰다.

 "하아, 분명히 너 때문이지."
 "뭐가요?"
 "어엉? ……아아, 아니, 암것도 아냐."

 대체 뭐였던 건가 의문스럽게 생각하고 있자 세이카 씨는 내 옆에 앉는다. 할 일이 끝난 걸까 하고 옆을 향했던 시선을 앞으로 향해서 왕래하는 사람들의 인간관찰을 하고 있자 갑자기 그녀는 말을 걸었다.

 "너, 니지카랑 잘 되고 있냐."
 "아마도. 전 잘 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냐. 돈 빌리거나, 집에 안 들어가고 안 그러냐."
 "안 그래요. 그런 건 그만뒀어요."

 그러냐, 하고는 세이카 씨는 내게 커피를 건네 주었다. 마시라고 해서 캔뚜껑을 눌러 따고는 캔을 입술에 올려 기울인다. 향긋한 콩과 쓴맛이 기분 좋아서 후우 숨이 흘러나왔다.

 "니지카, 요즘 고민하고 있는 것 같거든. 너 때문에."
 "저 때문에?"
 "그래. 아까 말한 건 걔 얘기야. 요전에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길래 압수했어."
 "시스콤."
 "시끄러."

 고민. 막연히 그런 게 있다곤 알고 있었다. 요즘 대화도 어색하고 곡을 재촉하는 일도 없다. 러브송은 곡이 다 돼도 가사의 완성도가 좋지 않아서,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를 반복하고 있다. 그런 게 벌써 1개월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 뭐냐. 제대로 말하고 있냐."
 "뭘요?"
 "그러니까, 그."
 "뭐가요?"
 "너 알면서 그러는 거지."
 "몰라요."

 하고 싶은 말은 안다. 하지만 그걸 전하는 건 부끄러워서 싫다. 곡으로 전하려고 했다가, 이거 직접 전하는 것보다 부끄러운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니 이젠 글러서, 걸음은 거북이보다 느리다. 이런 걸 하고 있을 시간은 없는데, 봇치는 먼저 곡을 만들어 와서 초조함만이 쌓여 간다.
 아예 러브송 따위, 라고 생각했다가 그건 아니라고 사고를 지웠다.

 "니지카는 생각한 걸 말해 주지 않거든요. 뭘 원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 요즘은 더요. 전 말해 줬으면 하지만요."
 "걔는 쌓아 두는 주제에 상담도 안 하니까."
 "진짜요. 고민이라고 했나요, 알고 있어요. 요즘 니지카는 좀 이상한데, 하지만 왜 이상한지를 모르겠어요. 말을 안 해 주니까."
 "너 진짜……."

 세이카 씨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그렇게 말하곤 신음했다. 커피를 마시고 한 박자 뒤에 "아까도 말했지만." 하고 그녀는 말을 이었다.

 "걔는 쌓아 둔단 말이야. 그리고 쌓았다가 쌓았다가 폭발시켜. 폭발하면 무슨 짓 할지 모른다. 헤어지자고 할지도 몰라. 그럼 어떡할래?"
 "저, 저는 니지카가 그렇게 말한다면──"
 "진심으로 하는 말이냐, 너?"

 세이카 씨의 목소리 톤이 낮아진다. 그녀를 보니 눈을 가늘게 뜨고 화가 끓어오르는 게 보였다. 니지카가 헤어지자고 할 때, 나는 그걸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야 나는 어쩔 도리 없는 사람이니까. 니지카를 지탱해 줄 수 없는 사람이니까. 만약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필요 없다고 한다면, 그대로 할 수밖에 없다.

 "……너희들이 어떡할지는 너희들 문제니까 나는 아무 말도 안 해. 하지만 말이다."

 세이카 씨는 나를 날카로운 눈빛으로 노려보고 눈썹을 찌푸렸다.

 "니지카를 울리면 난 널 용서 안 할 거다."

 목에 나이프를 갖다댄 듯한 차가움이 퍼지고 그 분위기를 따뜻하게 하듯이 아래에서 "언니? 어딨어?" 하고 니지카 목소리가 들렸다. 아래 있는 니지카를 보고 "지금 갈게."라고 답한 세이카 씨는 마지막에 한 번 더 나를 노려보았다.

 "내 귀여운 동생을 너한테 준 거라고. 간단하게 그런 말 할 거면 도로 내놔."

 노려보는 눈이 돌려지고 계단을 내려간다. 저벅 저벅 발소리가 멀어져 가는 걸 들으면서 마음속으로 세이카 씨한테 니지카는 저로 괜찮았던 걸까요 하고 물었다. 자명하게 답은 없었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돌아올 뿐이었다.
 
 기다리는 사이에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사서 다시 화단에서 니지카를 기다린다. 담배는 피우지 말라고 그랬으니까 어쩔 수 없이 가만히 앉아 있었다.
 니지카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고 세이카 씨는 그랬지만 그렇게 만든 게 나라면 그건 터무니없는 일이란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니지카는 건강을 신경 써서 술을 마신다거나 담배를 피운다거나 그런 일은 안 할 텐데, 그런 니지카가 담배를 피운다면 일종의 자해 행위 같은 거다. 내가 고민의 원인이란 말을 들어도 내 무엇이 니지카를 그렇게 만들었는지를 모르겠다.
 눈앞의 보도를 사이 좋아 보이는 남녀가 지나간다. 그 둘은 애인일지도 모르고 결혼을 했을지도 모른다. 아이를 만들 수 없는 우리가 결혼을 해도 의미는 없을 테고 프로포즈를 하고 싶다곤 생각하지 않았는데, 니지카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고민되기 시작했다. 니지카는 나와의 관계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혹시 결혼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해서 역시 다른 사람이 좋다고 생각했나? 나랑 같이 있는 건 싫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나?
 프로포즈. 하지만 그런 건 이런 초조와 기세로 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좀 더 이렇게, 상대와 죽을 때까지 같이 있고 싶다든지 같은 무덤에 들어가고 싶단 무거운 각오가 필요한 걸 테고, 내게 그 각오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니지카가 없는 미래는 그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

 "……변명인 걸까, 전부."

 하아 하고 한숨을 쉬고 뒤통수를 긁고 있으려니 뒤에서 니지카가 "먼저 돌아가도 됐는데." 하면서 달려 올라온다. 솔직하게 니지카가 없는 집에 돌아가도 소용이 없다고 말하면 좋았겠지만 "할 일이 없었으니까."라고 거짓말을 했다.

 "자 이거."
 "뭔데? 아, 아이스크림이다."
 "걸으면서 먹자."
 "고마워. 얼마야?"
 "아니 됐어 그쯤이야."

 내가 같이 먹고 싶었을 뿐이고. 그런 말을 목 안쪽에 밀어 넣고 콘에 올려진 아이스크림 산의 정상을 베어문다.
 9월에 막 들어선 밤은 아직 덥다. 하지만 혼자서 보내기엔 춥다. 그건 1년 내내 그렇지만 니지카에게 더 가까이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요즘 베이스 상태가 안 좋아."
 "악기점 가서 수리 받을래? 그거 기업체에서 빌린 거였던가?"
 "아니. 마이 베이스. 금방 튜닝이 틀어져서 이상하다 생각 중이야."
 "그거 빨리 안 고치면 그 문화제 때 봇치 짱처럼 돼 버릴걸. 경비로 칠 테니까 수리 받고 와."
 "그럴게."

 아이스크림을 맛있게 먹는 니지카가 귀엽다 생각해서, 키스가 하고 싶다 생각해서. 걸으면서 어깨에 손을 대고는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몇 밀리 남은 거리에서, 거리가 멀어진다. 퍽 하고 어깨에 충격이 전해지자 나는 한동안 이해하지 못했다. 니지카에게 밀쳐졌단 것을.

 "……아, 아니, 그."
 "……싫었어?"
 "싫지는 않은데, 아, 아하하! 미안 급작스러워서."

 키스를 기뻐하지 않는 애인이 이 세상에 있다면, 그 사람에게 피어오르는 마음은 하나뿐. 씁쓸함이 입에 퍼져 가슴이 따끔따끔 아파 온다. 니지카는, 나를.

 "……니지카. 고민 같은 거 있어?"

 니지카는 눈을 크게 뜨고 놀란 후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낯가죽에 가짜 웃음을 붙였다. 그게 답이었다. 이제 이어지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뻔히 아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아서, 하지만 들어야만 해서, 나는 눈썹을 찌푸렸다. 노골적으로, 니지카도 알도록.

 "아무것도 없어."

 가자, 하고 니지카는 내 앞을 걷는다. 니지카의 뒷모습은 평소와 다르지 않다. 다르지 않은데, 어쩐지 차갑게 느껴졌다.
 말해 주지 않으면 모른다. 하지만 알려고도 하지 않는 나는 앞으로 니지카의 뭘 이해할 수 있을까. 니지카에게 있어서 나는 대체 뭘까.


   
 니지카에게 말 없이 술집에 왔다. 연이어서 나오는 레몬 사워를 들이붓듯이 마셔서 봇치를 당황하게 만든다. 못 해 먹겠다. 뭐가 됐든. 이제 모든 게 아무래도 좋다.

 "자, 잠깐만요 료 씨! 너무 마시는 거 아녜요?"
 "몰라. 아무래도 좋아. 전부 아무래도 좋아."
 "대,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우주 대폭발, 괴수 대전쟁, 아마게돈"
 "네에……?"

 실제로 그렇다. 그렇게 평화와 행복에 차 있던 내 세계는 황폐해질대로 황폐해져 세기말이 되어 있다. 휘몰아치는 모래폭풍처럼 마음이 진정되지 않고 슬픔에 차 있다.
 나는 자각했다. 어쩔 도리 없이 흐트러져 있는 것을. 소꿉친구이고 애인인 이지치 니지카에게 휘둘려, 마음대로 되지 않아 분풀이도 하지 못하고, 대신 술에 빠져 있다. 소심한 나는 그런 일 정도밖에 못 하니까.

 "나 역시 안 됐어. 니지카가 기어이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게 됐어. 니지카는 이제 날 안 좋아하는 거야."
 "네, 네에!?"
 "말도 안 닿게 되고 하고 싶은 말도 못 하게 되면 끝장이지. 여명 선고란 느낌. 이거 죽는 것보다 힘드네. 아예 죽어 버릴까."
 "료, 료 씨!"
 "뭔가 이제 전부 아무래도 좋아. 나 왜 살아 있는 거지. 밴드도, 이미 니지카 꿈은 이루어졌는데. 결속밴드가 아니라 있잖아, 결속안됐어요밴드로 할래? 아하하, 생각해 보면 우리들 이쿠요가 나갔을 때부터 이미 결속밴드가 아니었지. 멤버 탈퇴라니 결속 못했다고 우리가 먼저 말하고 있는 셈이고."

 평소와 다르게 말이 많은 나는 네거티브한 말을 봇치에게 부딪히며 그녀를 곤란하게 하고 있었다. 니지카와 헤어지고 같이 음악을 만들 정도로 나는 뻔뻔하지 않고 강하지도 않다. 어차피 이제 끝이다. 맘대로 말해도 상관 없겠지. 밴드는 해산할 테니까.

 "처음부터 알고 있긴 했는데. 이렇게 될 거란 것쯤."

 레몬 사워 잔을 비우고 다음 것에 손을 대려다가 봇치의 눈을 보았다. 나와는 대조적으로 눈동자에 이글거리는 불꽃이 타오르고 있다. 분명 이쿠요다. 이쿠요가 봇치를 그렇게 만들고 있다. 지킬 게 생긴 봇치는 앞으로 더욱 강해질 것이다. 우리보다 훨씬 그 관계를 나타내는 말이 어울리는 두 사람이 될 것이다. 뭔가, 부러웠다.

 "무슨 말이라도 해 봐, 봇치."
 "에, 아, 죄, 죄송해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뭐어, 뭔가 말해 줬으면 했던 건 아니고. 됐어."
 "그러고 보면 곡은 완성됐어요?"
 "이럴 때 곡 얘기야? 하아, 완성 안 됐어. 전혀, 1밀리도, 한 글자도 못 썼어."
 "그거, 아마 부끄러워서가 아니죠……?"

 부끄러워서라고 전에 봇치에겐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헤어질 걸 뻔히 알고 있는데 러브송을 쓴대도 허무하니까. 1개월 전의 자신이 곧바로 곡을 완성시켰다 치고, 그 곡을 나는 두 번 다시 듣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들떠 있는 자신의 모습을 가사에서 읽어내고 비참하게 울고 싶지 않았으니까.

 "……봇치는 몰라. 이쿠요랑 잘 되고 있는 봇치가 알 리가 없지."
 
 어린애 같다. 몸은 어른인데 속은 언제까지고 애인 채로. 나는 기어코 후배에게 화풀이를 해서 최악의 극치를 달리고 있다. 이런 어린애인 나를 대체 누가 사랑해 준단 말인가. 다른 누군가가 나를 사랑한대도 니지카가 나를 사랑해 주지 않으면 의미 따위 없는데. 좋아하는데 왜 이 마음이 안 닿는 걸까. 우리는 어디부터 잘못된 걸까.

 "……아무것도 모르지만요, 사이 좋게 지내 주세요."
 "야! 그런 말 들어도──"
 "저, 료 씨랑 니지카 짱을 좋아해요. 정말 좋아하는 두 사람 사이가 나쁜 건 싫어요."

 단번에 부풀어오른 분노가 그 말을 받아 급격하게 쪼그라든다. 아직 봇치는 그런 말을 해 준다. 한심하다. 역시 나는 한심하다. 후배가 이런 말을 하게 만들다니, 정말 한심하다. 이런 한심한 나인 채로 괜찮은가. 한심하니까 끝나 버리는 게 아닌가.
 아예 비위 맞추기든 뭐든 해 볼까. 이유도 듣고 싶고 여기서 풀죽어 있으면 놓아주고 싶지 않은 것까지 놓아주고 말 것 같다. 아직 할 수 있는 건 있다. 그야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니까. 니지카의 말을 기다리는 건 그만두자. 기다리고 있다간 진짜로 끝나 버린다.

 걸음도 휘청휘청한 상태로 술값을 내가 내고 귀갓길에 오른다. 봇치는 역과는 반대 방향으로 갔으니까 오늘도 이쿠요네 집에서 묵는 거겠지. 한없이 부러울 뿐이다. 우리들도 막 사귀기 시작했을 시절엔 저만큼 사이가 좋았었던가 생각하며 편의점에서 산 레몬 사워의 큰 캔을 기울인다. 시각은 7시. 4시쯤부터 마시기 시작해서 그렇게 시간도 지나지 않았다.
 스마트폰으로 지도 앱을 열고 검색을 했다. 취한 기세란 걸로 해 두고 싶다. 이보다 더 한심한 말이 있나 싶지만 취한 기세라면 살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언제 건네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사 둬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그래도 한 손에 술을 들고 들어갈 수는 없으니 캔 내용물을 다 마시고는 조금 쉬었다가 걷기 시작했다. 취한 걸음으로 당당하게. 하지만 옆에서 보기엔 휘청거리며. 기타를 몇 개 살 수 있을지 모를 물건을 산다. 엄청나게 비싼 물건이다. 그 가게에서 제일 비싼 걸 사자. 아빠가 엄마한테 준 것보다 비싼 걸 주는 거다. 사랑은 돈으론 잴 수 없지만 결의는 보여 줄 수 있다. 그렇게 생각했다.
 긴자에 있는 그 가게에 취한 발음으로 전화를 걸어 폐점 직전에 예약을 한다. 아무리 그래도 무리일까 생각했지만 판매원은 친절하게 대응해 주었다. 그 길로 전철을 타곤 게이오 이노카시라선으로 시부야에 내려 한조몬선으로 갈아탄다. 또 갈아타 긴자잇초메 역의 홈에 내려서 출구를 나와 몇 분 걷자 금방 그 건물은 보이기 시작했다. 새빨간 얼굴로 문을 통과하자 판매원은 내 성을 말하며 확인한다. "여기서 제일 비싼 약혼 반지를 주세요." 주정꾼의 장난으로밖에 안 보이는 그 말에 판매원은 놀란 얼굴을 했지만 금방 나는 안쪽 자리에 앉혀져 눈앞에 놓인 엄중한 상자가 열린다. 보여준 것은 다이어몬드가 잔뜩 박힌 반지. 고등학교 시절 쓰던 기타를 아마 4백 개 정도 살 수 있는 가격이었다. 하지만 많은 인세를 받고 있는 나는 그 정도는 살 수 있다. 사 내 버린다. "살게요."라고 난 말했다. 사이즈는 기적적으로 똑같았다. 니지카가 카드는 만들지 말라고 했었어서 은행에 전화해서 현금을 가지러 갔다. 대금이었으니까 두랄루민 케이스를 빌려서 판매원에게 그 돈을 보여 준다. 28세의 젊은 여자가 이런 반지를 사다니, 더군다나 건넬 상대와의 관계는 파국 직전이라니 대체 누가 생각할까. 아무도 생각하지 않아도 좋다. 나만이 알고 있으면 된다. 이전에도 이후에도 내 옆은 니지카 전용이니까. 차였을 때 일은 차였을 때나 생각하자.
 무거운 종이가방 속에는 몇 억이나 되는 가치가 있다. 그걸 가지고 나는 전철을 탔다. 깜깜한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은 변함없이 새빨개서 이히히 웃었다.
 집에 돌아가자 니지카는 아직 안 돌아와 있었다. 반지를 옷장 속에 숨기고 소파에 앉아 눈을 감는다. 반지를 건넬 최고의 로케이션을 준비하자. 그리고 시청에 혼인신고서를 받으러 가자. 내 부분은 미리 적어 놓고, 미디어가 시끄러워 지겠군 하고 히죽거렸다.
 빨리 안 돌아오려나, 니지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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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토라(虎) 님

원본 링크: 愛される君に愛されたい僕の歌を | https://www.pixiv.net/novel/show.php?id=20455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