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물/번역

[봇치더락SS] 사랑받는 너에게 사랑받고 싶은 나의 노래를 - 10

카와즈 2024. 5. 24.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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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절은 9월도 끝나간다. 결국 료가 곡을 써내는 일은 없었다. 본인한테서 만드는 걸 그만뒀단 말은 듣지 못했지만 나는 그렇게 받아들였다. 료는 얼굴색 하나 바꾸지 않고 나와 함께 있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너한테 호의는 없다고 전해올 줄은 몰랐다. 요즘은 이제 우리들 사이도 식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가까이 있는데 마음의 거리만은 지구 반대편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드니까.
 저녁밥 재료를 슈퍼에 사러 가려고 현관에서 신발을 신고 있자 베이스를 치고 있던 듯한 료가 내 등에 "어디 가?"라고 말을 걸었다. 장 보러 가는 거라고 얼굴도 보지 않고 말하자 발소리가 다가온다.

 "나도 갈래."
 "아니 괜찮아. 바로 앞이고."
 "바로 앞이면 같이 가면 안 되는 거야?"

 료도 나와 있는 탓에 짜증이 난 것 같았다. 나는 그런 료의 얼굴을 보고 작게 한숨을 쉬고는 "그럼 같이 가자."라고 고한다. 내심 혼자서 슈퍼에 가고 싶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 말할 수는 없으니 노을진 시모키타자와의 거리를 걷는다. 우리들 사이에 대화는 없다. 그저 걸어서 슈퍼를 향했다.
 옆에 있는데 멀다. 한참 멀다. 앞으로 우리들은 더 멀어질 것이다. 왜? 이미 계기도 잊어버렸다. 열쇠를 잃어버렸는데 어떻게 문을 열겠는가? 열지 못한다. 이제 평생 열리지 않을 거다. 그렇다면 이제 됐잖아. 애인에서 친구로 돌아가도. 음악으로 우리들은 이어져 있으니까.
 나는 발을 멈췄다. 료는 몇 걸음 걷다 그걸 깨닫고 뒤에 있는 나를 돌아본다.

 "니지카?"
 "이제 있잖아, 끝내자."

 료의 눈이 크게 뜨인다. 놀라지도 않은 주제에, 알고 있던 주제에, 눈치가 좋은 주제에 모르는 척을 하는 게 늘 싫었다.

 "무, 무슨 말을."
 "알고 있으면서. 료는 나 안 좋아하지? 내가 사귀자고 그래서 사귀어 주고 있는 것뿐이잖아? 나를 친구로서밖에 생각 안 하고 있잖아, 미안해, 싫은 일에 어울리게 해서."
 "그런 거──"
 "맞지, 맞잖아. 료가 나한테 먼저 좋아한다고 말한 적 있어? 내가 말해 달라고 부탁했을 때도 매번 조금 얼버무리잖아. 그거 안 좋아하니까 그런 거지? 이제 됐어 이런 거, 지긋지긋해."
 "조, 좋아해 니지카."
 "그럼 왜 곡 안 만들어 주는 건데!"

 나는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료를 본다. 료는 내게 걸 말을 찾는 시늉을 하면서 아무 말도 해 주지 않는다. 헤어지기 싫다고 얼굴에 써 있는 주제에 그건 표면적이고 언제나 알맹이가 안 들어 있다. 그게 얼마나 상대를 상처입히는지 모르는 거다. 눈물을 소매로 슥슥 닦고 떨리는 입술을 문다. 일방적인 호의는 너무나 괴롭다. 바보 취급 받고 있다고 생각될 정도로.

 "료는, 료는 상냥해. 그건 알아. 하지만 그 상냥함은 아니야. 상냥한 거짓말 같은 건 없어. 료가 나를 좋아한다고 할 때마다 나는 상처받고, 나는 더 료를 좋아하게 되는데 료는 좋아하게 되지 않고. 얼마나 비참한지, 모르잖아."
 "니지카, 들어 봐. 나는 니지카를 좋아하고 앞으로도 계속 같이 있고 싶어. 헤어지기 싫어."
 "여기까지 와서도 료는 나쁘구나, 아니, 역시 상냥하네, 하지만 듣기 싫었어. 미안해, 거짓말 하게 만들어서."
 "거짓말 아니야. 있잖아 니지카, 들어 봐."
 "이제 됐어."

 파들거리는 입술을 억지로 말을 듣게 만들고는 료를 향해서 웃음을 지었다. 료는 굳어 버렸다.

 "잘 있어, 료."

 나는 달렸다. 달리고 달리고 달려서 숨을 쉴 수 없게 되어도 달렸다. 어디인지 모르게 되어도 달렸다. 달리는 것밖에 나는 할 수 없다. 무릎에 손을 짚고 몸을 말고 숨을 쉬었다. 큰길을 달리는 차가 좌우로 달려 나간다. 본넷과 앞유리가 오렌지색을 띠고 있었다. 분할 만큼 예뻐서 눈물이 또 흘러넘쳤다. 뒤를 돌아 보았다. 파랑은 없다. 아무도 없다. 그 안쪽에도.
 
 "쫓아 오라고, 바보……."

 결국 그 녀석은 겉모양뿐이다. 나만 좋아하고 나만 헤어나올 수 없게 된다. 료에 대한 고민만이 늘어 가는데 정작 료는 나를 쳐다봐 주지도 않는다. 료에게 있어서 나는 그냥 돌보미다. 같이 있는 건 친구라도 할 수 있다.
 폐의 공기를 쥐어짜내고 다시 달린다. 내 사고를 떨쳐내기 위해, 아픔으로 료를 잊기 위해. 달리다 달리다 오른쪽으로 갔다 왼쪽으로 갔다 신호를 기다리는 게 싫어서 큰길에서 멀어지려 골목에 발을 들이민 순간, 누군가와 부딪혔다. 넘어져서 아스팔트에 쓰러진 내게 상대는 "죄송해요! 괜찮으세요!?" 하고 손을 뻗어 준다. 그 목소리는 들은 적이 있었다.
 특징적인, 노을 같은 붉은 머리카락. 나와 눈이 마주친 페리도트 눈동자는 틀림없이 결속밴드에 있던 그 아이라, 나는 숨 쉬는 법을 잊어버렸다.

 "키타, 짱."

 내 얼굴을 보고 굳은 키타 짱은 "이지치, 선배."라고 이름을 부르고 입을 다문다. 눈은 공포로 흔들려 한 걸음분 거리가 떨어졌다.

 "니, 니지카 짱!? 그, 그게……!"

 옆에는 봇치 짱도 있었다. 평소와 달리 멋을 부려서 한눈에 데이트에서 돌아오는 길이란 걸 알아차렸다. 천천히 스스로 일어서자 가슴속에 검은 감정이 하나 생겨나 퍼져 나간다. 어렸을 때부터 품고 있었던 추한 감정. 절대로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그것이 전신을 타고 뇌를 거치지 않고 입에서 흘러나왔다.

 "사이좋게 데이트? 우리들한테는 얼굴도 안 보여 주면서 봇치 짱하고는 잘 지내는구나. 밴드 그만둔 주제에 응? 봇치 짱하곤 애인 놀이 하는구나. 팔자도 좋아."

 하지 마, 그만둬. 하지만 멈추지 않는다, 멈출 수 없다. 키타 짱의 표정은 어두워져서 눈물을 띄우기 시작한다. 봇치 짱은 우리들을 보고 어떡하면 좋을지 모르게 되어 있다.
 부럽다. 어쩔 도리 없이 부럽다. 봇치 짱과 키타 짱은 사이가 좋아지고, 반대로 료와 내 사이는 나빠졌다. 데이트를 하고 분명 미래 얘기도 할 것이다. 료와 나에게 미래 같은 건 없는데, 이제 끝인데. 키타 짱은 노래하는 걸 그만뒀는데 행복을 손에 넣었다. 록을, 우리들을 버린 주제에. 자기만 모든 것을 손에 넣다니 치사해, 용서 못 해. 왜 모든 걸 짊어진 내가 이렇게 불행하고 모든 걸 버린 키타 짱이 그렇게 행복해 보이는데. 내가 뭘 잘못했단 말이야. 왜 내가 이런 일을 겪어야 하냔 말이야.
 질투 따위, 하고 싶지 않은데.

 "키타 짱이 없어지고 이쪽은 큰일이었다고. 한때는 밴드 해산까지 얘기가 진행돼서 뿔뿔이 흩어져 버릴 뻔 했다고! 그런데 키타 짱은 이소스타에서 재밌어 보이고 말야, 일 재밌다며? 우리들을 버린 주제에!"
 "니, 니지카 짱, 진정해요."
 "어떻게 진정하란 말이야! 키타 짱은 봇치 짱을 버렸잖아!? 그걸로 괜찮아!? 라이브에도 안 와, STARRY에도! 우리는 계속 기다렸는데! 계속 키타 짱을 기다렸는데! 키타 짱은 패배자야! 록도 못하는 패배──"
 "그만!!"

 내 귀를 큰 목소리가 찔렀다. 소리를 낸 건 다름아닌 봇치 짱이었고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키타 짱은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나는 자신이 저지른 일을 자각하고 뒷걸음질을 친다.

 "……저희는 확실히 상처받았고 괴로워했어요. 하지만 그게 키타 짱을 상처입혀도 되는 이유가 되진 않아요."
 
 딱 잘라 확실하게, 봇치 짱은 나를 향해 말한다. 훤히 드러난 분노가 내게 쏟아진다.

 "키타 짱은 패배자 같은 게 아니에요. 그런 말 하지 말아 주세요."

 나는 미안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도망쳤다. 죄책감에 짓눌리면서 달려 발이 아파졌을 즈음엔 이제 자신이 어디 있는 건지도 모르게 되어 있었다.
 어두운 골목 구석에 주저앉아 무릎을 끌어안고 얼굴을 묻는다. 눈물은 멈추지 않았고 오열은 새어나왔다.
 뭐가 패배자야. 나는 패배자 이하면서. 결속밴드의 록은 누군가를 웃게 만들기 위해 있는데 나는 자신의 삶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키타 짱에게 분풀이를 하고, 더군다나 상처입혔다. 그게 패배자 이하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리더인 내가 멤버를 휘두르면 어떡하라고. 잘 됐구나, 나야. 료랑 내 사이가 나쁘다고 키타 짱한테 분풀이를 하면 둘 사이까지 나빠질 텐데. 분명 지금쯤 키타 짱은 방에 틀어박혀서 몸을 말고 있겠지. 나처럼. 잘 됐네, 같은 처지가 돼서. 이걸로 보기 좋게 최악인 사람 동료가 됐네. 축하해.
 죽어 버리고 싶다. 이런 나를 누가 사랑해 준단 말인가. 이제 죽어 버리는 편이 낫다. 밴드도 료도 뭣도 전부 버려 버리면 아무것도 곤란할 일이 없다.
 그래, 강으로 가자. 바다는 멀지만 강이라면 이곳저곳에 잔뜩 있다. 물에 빠져 버리면 되돌이킬 수 없다, 구하러 오는 사람도 없고 그게 좋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는 걷기 시작했다. 느릿느릿, 느릿느릿. 도로 표지를 의지해 걸으며 머릿속을 텅 비웠다. 죽을 거니까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다.
 몇십분이나 걸어서 메구로가와 강에 도착했다. 난간에 다가가 넘어간다. 콘크리트 절벽 몇 미터 앞은 강이다. 난간을 붙잡는다. 바로 아래를 물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잠시 그곳에 있었다. 푸른 머리칼이 뇌리에 나부낀다. 기다린다. 나는 기다리고 있다.
 료, 나 뛰어들어 버린다? 괜찮아? 내가 없어져도 괜찮아? 응? 대답해 줘. 데리러 와 줘. 지금 바로 쫓아와서 나를 구해 줘. 멍이 들 정도로 팔을 붙잡아서 난간 안쪽으로 끌어당겨 줘. 료, 나를 원해 줘. 나를 구해 줘.
 아무도 오지 않는다. 아무도 끌어당기지 않는다. 나는 혼자다. 강 수면에 흐트러진 내가 비치고 있다. 아무도 없다. 나 말고는.

 "료, 날 좋아한다면 지금 바로 구하러 와……."

 대답은 없다. 료는 없다. 아무도. 봇치 짱이나 키타 짱조차도. 아무도 없다.

 "으아아아아!"

 나는 소리를 지르고는 난간 안쪽으로 돌아왔다. 지면에 주저앉아 운다. 소리치면서 운다.
 료는 오지 않는다. 내가 뛰어내리면 내가 죽을 뿐이다. 한 방 먹여 주고 싶어서 그런 짓을 해도 언니를 슬프게 만들 뿐이고 아무런 이득이 없다. 나는 이렇게 괴로운데 아무도 구해 주지 않는다. 나는 혼자다. 외톨이다.
 여기엔 아무도 없다. 료도 봇치 짱도 키타 짱도 언니도. 있는 건 나 오직 한 사람.
 결국 나를 구할 수 있는 건 나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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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은 해피엔딩입니다 진짜예요 믿어주세요

 

원작: 토라(虎) 님

원본 링크: 愛される君に愛されたい僕の歌を | https://www.pixiv.net/novel/show.php?id=20455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