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물/번역

[봇치더락SS] 호접지몽

카와즈 2023. 9. 17. 15:59

"시공이 비틀린 신기한 이야기.
고등학생 봇치와 어른 키타 짱 조합이 보고 싶어서 쓰고 있었는데, 결국 고등학생 키타 짱과 어른 봇치 이야기도 썼습니다. 어른인 키타 짱 분명히 엣찌할 테고, 고추잡채 같은 거 좋아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른 봇치는 키타 짱한테 반존대 정도로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더보기

 밖은 조금 밝아졌을 즈음일 것이다. 일어나기엔 아직 이른 시간. 잠이 얕았던 모양이다.
 눈이 뜨였을 때, 눈앞에 펼쳐진 붉은색에 나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아침에 일어나면 옆에 키타 짱이 있다.
 사귀기 시작하고 반 년.
 주말이 되면 이렇게 우리집으로 와 같은 이불에서 자는 게 정해진 흐름이 되었다.
 평소라면 끌어안거나, 손을 잡거나, 팔베개를 하거나 하면서 자지만 지금 키타 짱은 나에게 등을 보이고 있다.
 아마 어젯밤 자기 직전에 내가 키타 짱을 화나게 해서 그럴 것이다.
 커뮤증이고 친구 같은 건 한 명도 없었던 내가, 첫 애인 상대로 잘 행동하는 게 될리가 없다. 그런 인생을 보내 온 내가 잘못한 거다. 평범한 여고생으로서 살아왔으면 이렇게 키타 짱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키타 짱이 일어나면 제대로 사과하자.

 말려 있지 않은 생머리에 손을 뻗으려던 때, 키타 짱이 몸을 뒤척였다.

 어라……? 뭔가, 평소랑 다른데……?

 머리도 얼굴의 파츠도 내 애인인 키타 짱임은 틀림없다. 단지 어딘지 모르게 위화감이 있다.
 어디가 다른 거지?
 뻗으려던 손을 그대로 키타 짱의 뺨에 가져다 댄다.
 스킨 케어에 여념이 없는 매끄럽고 보드라운 피부.
 응. 틀림 없다. 키타 짱이다.

 "……으응, 히토리 짱…?"
 "아, 아, 안녕하세요…."

 깨워 버렸다는 데에 죄책감을 느끼면서, 눈을 비비는 비몽사몽한 키타 짱도 귀엽다느니 생각해 버린다.

 "뭔가…, 오늘 히토리 짱, 귀여워."

 후후 웃는 키타 짱. 말투는 막 일어나서 혀짧은 소리지만, 그 웃음엔, 좀 뭔가, 요염함 같은, 그런 게 있다.
 
 "히토리 짱, 자!"

 두 팔을 벌리는 키타 짱.
 에? 뭐지?
 모르겠어서, 일단 똑같이 팔을 벌려 본다.

 "후후. 히토리 짱, 부끄러워하는 거야?"

 키타 짱은 벌린 팔을 내 목에 두르고, 얼굴을 가까이 가져와 그대로 키스를 당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닿고 떨어지기를 반복한다.
 마지막에 쪽 하고 입술 소리를 내면서 키타 짱의 입술이 떨어졌다.

 "저, 저기, 키타 짱, 지, 지금 건……."
 "키타 짱이라니 그리운 호칭이네. 모닝 키스 쯤이야 매일 하고 있잖아. 잠이 덜 깬 거야?"
 "모, 모모모모…키, 키스…!?"
 "히토리 짱, 굳어선 뭔가 고등학교 때 같아."
 "………에."
 "에."

 으으음 하고 키타 짱이 미간을 찌푸리고, 내 방을 죽 둘러본다.

 "여기 히토리 짱네 본가 방이잖아! 잘 생각해 보니까 늘 자는 침대가 아니라 이불이네!"

 놀라고 있다기보단 어쩐지 기뻐 보이는 키타 짱. 지금이라도 스마트폰을 꺼내서 사진을 찍기 시작할 것 같은 분위기다. 머리맡을 뒤졌지만 자기 스마트폰은 찾지 못했는지, 키타 짱의 손은 내 얼굴로 뻗어와, 그대로 양 볼을 눌렀다.

 "히토리 짱!"
 "흐엑!?"
 "히토리 짱은 지금 몇 살?"
 "그, 그게, 열여섯 살…이요…."
 "열여섯 살!? 설마 고등학교 2학년?"
 "앗, 네……."

 키타 짱은 꺄아~라느니, 와~라느니, 좋겠다~라느니, 아무튼 엄청나게 들떠 있다.

 "저, 저기, 다, 당신은 키타 짱, 인 거죠…?"
 "맞아! 키타 이쿠요 스물일곱 살이랍니다~!"
 "스물…!!??"
 "그나저나 진짜 귀엽다! 열여섯 살 히토리 짱! 지금도 물론 비주얼 최고지만, 이 앳된 히토리 짱도 참을 수 없어!"
 "아, 에, 그, 키타 짱…키타 짱 씨도 그, 엄청 예쁘다고 할까…꽤 변했네요…."
 "정말!?"

 스물일곱 살이라는 키타 짱 씨는 정말로 예쁘다. 물론 지금 키타 짱도 무지막지하게 귀엽다. 하지만 이 키타 짱 씨는 미인이면서도 어른의 여유 같은 게 있어서, 그 모든 것이 자극적이라서 이 이상 얼굴을 직시하지 못할 정도다.
 참지 못하고 시선을 얼굴에서 조금 내린 곳에 있는 한 점에 못박혔다.
 ……내가 아는 키타 짱은 뭐랄까, 좀 더 그, 단정하다고 할까, 슬렌더한데, 눈앞에 있는 것은 그렇지 않다. 

 "히토리 짱도 참, 여기가 신경 쓰여?"
 "아앗! 죄, 죄송합니다, 절대로 야한 눈으로 보려던 건 아니고!"

 키타 짱 씨는 자신의 손가락으로 거기를 꾹 누른다. 부드러워 보이는 그곳은 말캉 하고 소리가 나는 게 아닐까……가 아니라!! 이, 이거 성희롱인 건가!? 성희롱이면 혹시 사형!? 아아아아, 하지만 마지막에 어른이 된 키타 짱의 모습을 감상했으니 후회는……없다!

 "만져 볼래?"
 "히익! 그, 그것만은 봐주세요…!!"

 이 이상 죄를 쌓을 순 없어!

 "히토리 짱이 키운 건데~."

 키, 키웠다고!? 키웠다니 무슨 소리야!?
 에, 땅을 갈고 이랑을 파서, 모종을 심고, 비료랑 물을 줬더니…이러저러해서 수확 시기가 돼서 키타 짱의 가슴둘레가 커지는 거야!? 올해는 풍작이네요!!

 "순진한 히토리 짱 귀여워."

 키타 짱 씨, 그 후후 하고 미소짓는 거 어떻게 안 되나요? 제 안에서 눈떠선 안 되는 뭔가가 눈뜰 것 같아서……. 머, 머리 쓰다듬지 마요……!

 "하지만 마침 잘 됐네. 요즘 히토리 짱, 아무리 유혹해도 여유롭게 흘려넘겨 버려서 분했단 말이지."
 "앗, 저, 저한텐 그런 여유 같은 거…."

 키타 짱 씨는 내 목에 팔을 두르고 작은 소리로 속삭이듯이 말했다.

 "언니가 이것저것 가르쳐 줄까?
 "여, 여여여여러가지라니 대체 뭔가요?!"
 "으응…? 글쎄. 어딜 어떻게 만지면 내가 좋아하는지, 라거나?"

 코 끝이 닿는 거리에서 달뜬 시선이 보내져 온다.

 "알고 싶어?"

 어리광 부리는 듯한 목소리의 키타 짱 씨는, 내 목 뒤를 더듬더듬 쓰다듬는다.

 "히토리 짱, 만져 줘……."

 아, 이제 한계다. 녹는다.

 "어머. 너무 괴롭혔네."

 열일곱 살 키타 짱 이상으로 손재주가 좋아서, 뚝딱뚝딱 수복해 주었다.




 "그, 그나저나, 왜 키타 짱이 십 년 후 모습으로……."
 "음…그건 모르겠지만 분명 자고 일어나면 원래대로 돌아갈 거야."
 "그,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어른이 되어도 적응 능력 발군인 듯하다.

 "맞아! 모처럼이니까, 사춘기 히토리 짱의 고민이라도 들어 줄까?"

 키타 짱 씨가 키타앙~하고 눈을 빛내며 내 말을 기다리고 있다.

 "자 자, 뭔가 있을 거 아냐?" 열일곱 살 나에 대한 클레임도 좋아!"
 "크, 클레임이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저 같은 게 키타 짱과 사귈 수 있는 것만으로 요행이라도 생각하고요, 아무런 불만도 없어요……."
 "에~? 뭔가 있을 거 아냐? 고등학교 때 나 꽤 귀찮았고. …아니, 그건 지금도 그런가."

 쓴웃음을 섞으며 키타 짱 씨가 말한다.

 "샴푸나 립 바꾸면 눈치채 줬으면 좋겠다든가, 잘 때까지 로인 어울려 달라든가, 아무튼 내가 뭘 하고 싶은 건지 알아채 달라든가, 지금 생각해 보면 히토리 짱에겐 상당히 허들 높은 걸 요구했었지."
 "앗, 그, 그건……."
 "게다가 히토리 짱은 싫다고 말도 못하고, 이소스타감성 장소들도 절대로 가기 싫을 텐데 끌고 다니고."

 뭐, 뭐어, 귀여운 여친의 부탁이고. 대미지를 회복하려고 구멍이란 구멍에 영양을 쑤셔넣으면 사람의 형상은 유지할 수 있게 됐고.

 "……히토리 짱은 언제나 상냥하니까 제대로 그걸 고맙게 여기고 더 소중히 했어야 했는데…."

 아까 전까지의 명랑함이 뒤집어져, 키타 짱 씨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에? 뭐야 이 분위기? 설마, 십 년 후의 나와 키타 짱은……. 최악의 미래를 상상하고 불안에 휩싸인다.

 "앗, 저, 키타 짱 씨…."
 "요즘 히토리 짱이 같이 목욕을 안 해 줘!"

 …………알고는 있었지만, 나는 평생 키타 짱을 못 이길 것 같아.

 "처음엔 있지, 내가 부탁하면 해 줬는데, 히토리 짱도 점점 같이 하고 싶어하게 됐거든. 그런데 요즘 들어서 목욕은 따로따로 하자고 그러는 거야! 어떻게 생각해?!"

 아, 에, 어떻게라고 말씀하셔도…….
 애초에 지금 나에겐 키타 짱과 같이 목욕하러 들어갈 배짱 같은 건 없고. 그야 할 수 있으면 하고 싶지만.

 "아! 미안해! 히토리 짱의 상담을 들어준다고 해 놓고 내 할 말만 했네. 히토리 짱은 뭔가 묻고 싶은 거 없어?"
 "저기, 그, 미래의 저는 키타 짱을 화나게 하거나 다투거나 안 하는 건가요?"

 같이 목욕 어쩌구에 대해서는 키타 짱 씨는 불만인 것 같지만, 싸움이랑은 조금 다른 느낌이 든다. 그보다도 지금 자신이 키타 짱을 위해 뭔가 할 수 있는 게 없는지 가르쳐 줬으면 한다. 구체적으론 키타 짱을 실망시키지 않는, 키타 짱에게 버림받지 않는 방법을 가르쳐 주십사!

 "으음…싸움은 지금이 더 많이 할지도. 싸움이라기 보단 불평? 잔소리일까?"
 "부, 불평…잔소리…?"
 "내 목욕이 오래 걸리니까 먼저 씻지 말라든가, 히토리 짱이 맨날 늦게 자니까 빨리 자라든가. 목욕은 같이 하면 되는데 말이지."

 목욕 꽤나 뒤끝 있는걸….

 "앗, 제가 키타 짱에게 그런 불평을 할 수 있을까요……? 게다가 역시 10년 후에도 키타 짱 화나게 만들고 있고……."

 키타 짱에겐 자주 '소녀심을 공부해라'란 말을 듣는데, 지금 나로는 키타 짱의 애인에 어울리지 않는 게 아닐까…….

 "어, 어제도 SNS에 자기 사진 올리는 걸 조금 자제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더니 키타 짱 기분이 안 좋아져서……. 키타 짱 귀여우니까, 별로 남들한테 보여 주고 싶지 않아서 억지를 부려 버려서…."
 "히토리 짱, 그거 전부 나한테 말했어?"
 "에……."
 "지금 나랑 히토리 짱은 있지, 불만이나 억지나 그런 걸 전부 참지 않고 말할 수 있는 관계지만, 그건 서로를 신뢰하고 있으니까 그런 거야."
 "신뢰……. 하지만 그건 역시 긴 시간을 같이 지냈으니까 그런 거죠…."
 "그것도 있지만, 열여섯 살 히토리 짱이라도 내 신뢰를 얻을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이 있어."
 "그, 그게 뭔데요?!"
 "좋아한다고 하는 거야."
 "좋아………한다고?"
 "나도 처음 하는 사랑, 처음 사귀는 애인이라 불안해질 때도 있었어. 히토리 짱이 무슨 생각 하는지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말수가 적으니까 정말로 좋아하는 걸까- 생각하거나."

 키타 짱 씨의 쓸쓸해 보이는 표정을 보고 무서워졌다. 나는 키타 짱에게 몇 번 좋아한다고 말했을까. 어쩌면 고백한 이후로 한 번도 말하지 않은 거 아닌가.

 "요 10년 사이에 여러 일이 있었지만 그래도 나는 내가 원해서 히토리 짱 옆에 있는 거야."

 키타 짱 씨가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는다.

 "서두르지 않아도 되지만 제대로 나한테 전해 줘야 해. 너는 정말로 사랑받고 있다고."

 열일곱 살 키타 짱이 돌아오면, 사과보다도 먼저 좋아한다고 말하자. 몇 번이고 몇십 번이고 몇백 번이고. 그야 몇 번 말해도 부족할 테니까. 이 감정을 전부 키타 짱에게 전할 수 있는 날이 오기는 할까.
 아니, 조급하게 굴지 말자. 인생은 기니까.

 "아, 그리고 물론…."

 최고로 아름다운 웃음으로 키타 짱은 말한다.

 "나도 히토리 짱을 사랑해."

 10년 후의 키타 짱, 겉모습도 생각도 성장해서 지금 키타 짱과는 다른 사람 같다.
 하지만 역시 키타 짱은 키타 짱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런 당연한 것을 깨닫자 갑자기 수마가 몰려왔다.

 "자, 이만 자자. 히토리 짱 졸리지?"

 익숙한 상냥한 목소리가 귀에 울린다. 부드럽게 끌어안긴 체온은 내가 잘 아는 따스함이었다.


---


 "이, 이쿠요 짱 가슴이 줄어들었어?! 무슨 일이야?!"

 짤싹.

 너무 심한 말에 입보다도 먼저 손이 나가 버렸다.




 "…과연. 즉 당신은 스물여섯 살인 히토리 짱이고, 아까 발언은 스물일곱 살인 나와 비교한 거였구나."
 "앗, 네, 죄, 죄송합니다……."

 침대 아래에서 도게자를 하고 있는 이 사람.
 조금 키가 커지고 머리도 꽤나 짧아졌지만, 아무래도 10년 후의 히토리 짱이란 것 같다.
 첫마디부터 실례되는 발언을 들어서 나도 모르게 뺨을 때려 버렸지만, 이 히토리 짱 얼굴 편차치 너무 높지 않아?
 평소엔 앞머리로 눈이 가려져 있지만 지금은 확실하게 예쁜 푸른색이 보인다. 피부는 변함없이 맑고 투명한 흰색. 왼뺨은 엷은 붉은색이 되어 버려서 면목 없지만….

 "저, 저기……왜 그렇게 날 보는 건가요…?"
 "아, 미안. 정말로 히토리 짱인가 싶어서. 머리 언제부터 잘랐어?"
 "그게, 고등학교 졸업했을 때 즈음이요…."
 "그렇구나."

 긴 머리 히토리 짱도 좋지만, 지금의 울프헤어 히토리 짱도 좋다. 이런 멋진 히토리 짱이 기타를 치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멋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헤어스타일을 제안한 사람은 천재가 틀림없어.

 "이쿠요 짱이 같이 미용실에 와서 점원하고 얘기해 줘서, 정신을 차려 보니 이 머리모양이 돼 있어서…."

 천재는 나였다.

 "또 하나 물어봐도 돼? 아까부터 그 이쿠요라는 호칭이 좀 근질근질한데…."
 "이, 이쿠요 짱이 그렇게 부르라고 그랬어요! 성은 언젠가 같아질 거라고……."

 나 바보 아냐?

 "…그, 우리들은 결혼한 거야?"
 "아, 안 했어요! 아직!"

 아직이란 건 히토리 짱한테 그럴 맘은 있단 거네. 흠 흠. 뭐어, 10년이나 같이 있는 모양이고 그야 그런가.

 "하지만 사이 좋아 보여서 다행이야. 10년이나 사귀고 있으니까."
 "앗, 아니……아, 네."
 "응?"

 지금 한 번 부정하지 않았어?

 "히토리 짱, 10년 같이 있는 거지?"
 "앗, 네. 그건…밴드도 있고."

 눈을 굴리면서 애매한 대답을 하는 히토리 짱.

 "10년 사귀고 있는 거야?"
 "그게, 저, 그건……그, 한 번 헤어진 적이 있어서…."

 ………간담이 서늘해진다는 건 이런 거겠지.
 막 사귀기 시작한, 밝은 미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나에게는 그런 슬픈 일은 상상조차 한 적이 없었다.

 "그…이유를 물어도 될까?"
 "그게, 약간의 엇갈림이 겹쳐져서, 랄지……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을 안 하고 참아서……그게 폭발해 버려서, 그래서……."

 히토리 짱이 쓴웃음을 지으면서 가르쳐 준다.
 짐작가는 부분이 너무 많아서 무섭다. 작은 불화가 쌓이고 쌓여서 히토리 짱과 헤어진다니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견딜 수 없다.

 "앗, 하, 하지만, 헤어졌기 때문에 이쿠요 짱이 소중하단 것도 다시금 생각하게 됐고, 지금 생각하면 그걸로 괜찮았던 게 아닐까 생각하고 있으니까, 안심하세요…!"
 "그건 위로가 안 돼……."
 "버, 벌써 몇 년이나 전 얘기고, 헤어져 있던 것도 잠깐뿐이었으니까 진짜로 신경 쓰지 마세요…!"

 ……뭐어, 결과적으로 같이 있으니까 괜찮은가? 아니, 그래도 역시 받아들이기 힘들어…! 애초에 일시적이라곤 하지만 이이이이이이렇게 예쁜 히토리 짱이 솔로가 되면 주변에서 내버려두지 않을 거다. 내가 모르는 사람과 웃으면서 걸어가는 히토리 짱의 뒷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뇌가 파괴될 것 같다.

 "역시 싫어--!!"
 "우왁! 이쿠요 짱 무슨 일이에요?! 울지 마요!! 앗, 기, 기타 칠게요! 들어 주세요 '이쿠요 짱 울음을 그쳐요의 테마 봇치 독주 버전'!"
 "그건 됐어요."
 "앗, 10년 차가 있어도 똑같은 말 하는군요……."

 눈물이 쏙 들어갔다.
 동시에 이 사람이 한없이 내가 아는 히토리 짱이란 걸 확신했다. 이런 부분은 안 변하는구나…….

 "히토리 짱은 떨어져 있는 동안 다른 사람과 사귀거나 했어……?"
 "그, 그런 짓 할 리가 없잖아요! 나는 계속 이쿠요 짱 일편단심이라고요!!"

 볼륨 조정에 실패한 큰 목소리로 선언한다. 아까부터 기분을 떨어뜨렸다가 올렸다가 롤러코스터에 탄 상태다. 히토리 짱의 볼륨 조정을 웃고 있을 수가 없다.

 "……나는 이쿠요 짱하고 같이 있을 수 있는 것만으로 행복하니까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구나.
 히토리 짱은 언제나 나랑 사귈 수 있다니 기적이라든가, 신이 내린 선물이라든가 말하지만,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들은 적이 없었다. 표정에 기쁨이 배어 나오긴 하지만.

 "앗, 물어본 적은 없는데요, 아마 이쿠요 짱도 다른 사람이랑 사귀거나 하진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말 안해도 뭐든지 아는 관계란 거 부럽네. 빨리 그렇게 되고 싶어."
 "……그런 관계는 없어요.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생각할 뿐이고, 중요한 건 말로 하지 않으면 전해지지 않는걸요. 우리들은 안 그래도 정반대니까."

 내가 아는 상냥한 푸른색이 이쪽을 바라본다.
 중요한 걸 말로……하고 있을까. 히토리 짱에겐 이렇게 해 저렇게 해 요구하는 주제에, 중요한 때엔 눈치채 달라고 하고 휘두르기만 하고……. 히토리 짱도 하고 싶은 말은 있을 텐데, 그걸 말하지 못하는 상황을 내가 만들고 있다.
 어젠 아마 처음으로 히토리 짱이 나에게 부탁을 했는데, 나는 그것을 밀쳐냈다. 난 전혀 좋은 여친이 아니다. 이러니까 눈앞의 히토리 짱은 멀어져 버린 것일까.

 "이쿠요 짱?"
 "나, 히토리 짱에게 심한 짓을 해 버려서…, 히토리 짱 나름대로 나를 걱정해 주는 거란 걸 아는데, 왜 그렇게 SNS에 셀카만 잔뜩 올리냐고, 인터넷 사용습관 괜찮은 거냐고 그래서, 나도 모르게 심하게 말해 버려서……."
 "……그건 내 말투에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히토리 짱이 인간관계가 서툴고 말이 적은 건 하루이틀 된 이야기도 아닌데.

 "…후후."
 "갑자기 왜 그래?"
 "아, 아니, 뭔가 이쿠요 짱 귀엽다 싶어서…. 저 때문에 그렇게 고민해 줬던 거군요."

 따뜻한 미소에 어른의 여유가 배어 나오는 히토리 짱. 뭔가 분한걸.

 "전부 이쿠요 짱이 나를 좋아하니까 고민하는 거고, 질투도 하고, 속박하기도 하는 거라고, 지금은 알아. 나는 정말 사랑받고 있는 거군요."

 히토리 짱이 부드럽게 머리를 쓰다듬는 바람에 낯부끄러워져서 삐친 목소리를 낸다.

 "좋아한다고 별로 말 안 해주는 것도 불만이거든요."
 "그, 그건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열심히 할 테니까……."

 기다리는 건 잘 못한다. 나는 결심하면 바로 행동에 옮겨 버리는 타입이니까 별로 기다려 주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젠가, 매일 일어났을 때 옆에 히토리 짱이 있어 주는 나날을 보낼 수 있다면, 조금만 참아 줘 볼까.

 "…그리고 아까 얘기인데요, 별로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거라고 생각해요."
 "아까 얘기?"
 "헤어졌다든가 그런 얘기요. ……이쿠요 짱은 패러렐 월드란 거 알고 있나요? 어쩌면 있었을 지도 모르는 세계 얘기인데요…. 우리들은 한번 헤어지는 선택을 했지만, 당신과 당신의 고토 히토리는 그러지 않을지도 몰라요……그래도, 그, 그렇…게 될지도 모르지만요…"
 "거긴 자신있게 말해 줘."
 "죄송합니다……."

 침대 옆에 장식된 사진, 거기에 비친 두 사람은 무척 행복해 보인다. 히토리 짱이 이렇게 웃고 있는 거 처음 봤을지도. 이런 얼굴을 시킬 수 있다니 미래의 내가 굉장하다고 생각하고, 조금 질투도 난다.
 조용히 사진을 보고 있던 나를 보고 히토리 짱이 내 손을 잡는다.

 "앗, 고등학생 이쿠요 짱도 귀여워요."
 "그런 걸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거, 역시 어른이라 그런 걸까."
 "이쿠요 짱한테 이것저것 강제주입당해서요……."
 "꽤나 길들여져 있구나. 뭔가 불만 없어?"
 "앗, 같이 목욕하자고 하는 건 자제해 줬으면 해요…."

 목욕? 에? 하고 있는 거야? 같이? 부러워라.

 "히토리 짱은 같이 하는 거 싫어?"

 미래를 위해 거긴 제대로 해 두고 싶다.

 "시, 싫다거나 그런 건 아닌데요, 전엔 더 자주 같이 했었고……."
 "왜 지금은 같이 안 하게 된 거야?"
 "그게…, 솔직히 저는 옷을 벗기는 공정도 즐기고 싶달지……."
 "에……무슨 얘길 하는 건가요 고토 씨."

 진지한 얼굴로 무슨 말을 하는가 했더니, 정말로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지 이 사람은.

 "앗, 그, 그게 아니라요! 이, 이쿠요 짱이 유혹하는 게 나쁜 거예요! 목욕탕은 좁기도 하고 더워서 어지러워지니까 그만두자고 약속했는데!"
 "헤, 헤에……."
 "아아아아아…나, 나는 미성년자인 이쿠요 짱한테 무슨 얘기를!! 잡힐 거야!! 미성년에게 성희롱한 죄로 사형이 될 거야!!!"

 순식간에 잘 정돈돼 있던 히토리 짱의 얼굴 파츠가 벗겨져서 떨어져 간다. 다행히 액자 옆에 접착제가 놓여 있어서 그걸 빌려서 착착 복원시킨다. 어른인 나는 준비성이 좋네.
 ……그나저나, 이건 큰 수확이다.

 "히토리 짱은 그런 거에 흥미 없는 게 아닐까 생각했었으니까 깜짝 놀랐어…."
 "앗, 원래 별로 흥미 없었는데요, 이쿠요 짱이 상대니까……."
 "바로 그런 말 하고. 어른인 히토리 짱은 날 놀리는 걸 좋아하는구나."
 "놀린 거 아니에요."

 히토리 짱은 익숙한 동작으로 거리를 좁혀, 나는 부드럽게 침대에 눕혀졌다.
 좋아하는 얼굴, 좋아하는 목소리, 좋아하는 냄새, 좋아하는 사람.
 오감이 좋아하는 사람에게 지배당한다.

 "…지금부터 증명해 볼까요?"
 "아, 에…히, 히토리 짱?"

 이렇게 가까이서 이 국보 같은 얼굴을 보는 건 건강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특히 심장 부근의.
 키스도 그렇게 해본 적 없으니까 이 거리로 다가올 때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고. 그보다 아직 히토리 짱한테서 받은 적 없고.
 에? 이거 바람에 들어가나? 이 사람은 분명히 히토리 짱이지만, 내가 모르는 10년분의 경험치를 가진 히토리 짱이다. 만약에 10년 후의 자신과 열여섯 살 히토리 짱이 키스를 한다면 어떻게 생각할까? 아, 바람이다 이거. 안 돼 안 돼. 그럴 리 없다곤 생각하지만, 만약 그런 일이 되면 히토리 짱의 뺨에 단풍잎이 늘어나게 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는 데에 0.5초. 나는 저항하기로 했다.

 "안, 돼요…."
 "앗, 안 된다는 말 듣는 것도 그건 그거대로 나쁘지 않네요."
 "하?"
 "죄송합니다."

 히토리 짱이 올라탄 자세를 무너뜨려서 옆에 드러눕는다.
 유감이에요, 라고 전혀 유감스럽지 않다는 듯이 웃는다. 그 웃음은 옆에 놓여 있는 사진과 같은 표정이었다. 행복해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한 얼굴이다.

 "대신 끌어안아도 되나요?"
 "이상한 짓 안 한다면…."
 "안 해."

 나는 히토리 짱의 품 안에 쏙 들어갔다. 마치 여기가 날 위해 있는 장소인 것 같다.
 편안함에 잠이 몰려온다.

 "이쿠요 짱 졸려?"
 "응……."
 "그럼 자 버릴까. 괜찮아. 금방 또 만날 거야."


 일어나면 히토리 짱한테 좋아한다고 말하자. 그리고 어제 있었던 일을 사과하자. 작은 불화도 하나 하나 해소해 가면, 눈 깜짝할 새에 스물여섯 살의 히토리 짱을 만날 수 있을 거다.

 사랑하는 냄새에 감싸여, 나는 의식을 놓았다.

 
---
원작: 카와우소(かわうそ) 님
원본 링크: 胡蝶の夢 | https://www.pixiv.net/novel/show.php?id=19767882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원본 소설도 북마크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관심은 창작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