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물/번역

[봇치더락SS] 아찔함과 괴수 - 2

카와즈 2023. 4. 11. 21:52

2. 목소리를 주세요 side : 고토 히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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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레이즈의 단편을 적고는 퇴짜를 놓는다.
 그런 걸 몇번이나 반복하고 있다.
 벽장을 가득 채운 루즈리프는, 얄팍한 말들의 쓰레기장――.
 이런 네거티브한 가사라면 얼마든지 떠오르는데 말이야.

 내가 하고 싶다고 말을 꺼내긴 했지만, 생각 이상으로 힘들다.
 평소와 다른 테이스트의 가사라서 그런 것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나 자신의 마음의 형태가 쫓아오지 못하는 느낌이 든다.
 그 미숙함을 뛰어넘기 위해 하고 있는 일이니까, 어쩔 수 없긴 하지만.

 "그렇다곤 해도, 내 머리만 쥐어 짜 봤자 막다른 길이네……."

 스마트폰의 채팅 화면을 바라본다.
 상담을 들어 달라는 그런 억지는 부리지 않는다.
 단지, 조금이라도 좋으니까, 목소리를 듣고 싶다.
 통화 버튼을 누를까 망설이고 있는 것만으로 밤은 점점 깊어가 버린다.

 벌써 늦은 시간이기도 하고, 자고 있을까.
 애초에 나 같은 게 갑자기 전화를 걸면 기분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같은 고민을 하고 있던 차에, 갑자기 스마트폰이 울렸다.

 "우와!?"

 깜짝이야! 나도 모르게 스마트폰을 내던질 뻔 했잖아!
 게다가 걸어온 사람은 키타 씨!? 빨리 받아야지!

 "여보세요……?"
 ''다행이다! 히토리 짱, 아직 깨 있었구나!''
 "아, 네. 무슨 일 있나요?"
 ''이렇다 할 일은 없는데……히토리 짱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아아……정말 눈부신 사람이구나, 생각한다.
 내가 내딛지 못하는 한 걸음을, 키타 씨는 이토록 간단히 넘어 버린다.
 나는 언제나 키타 씨 행동력에 어리광을 부리고만 있다.

 그렇게 반성에 잠겨 있으려니, 키타 씨가 면목 없다는 듯이 물었다.

 ''혹시 민폐였어? 방해한 거면 바로 끊을게…….''
 "그그그, 그런 거 아니에요! 저도 마침 한가했던 참이라……!"

 또 신경 쓰게 해 버렸다!
 나는 왜 금방 입을 다물어 버리지!?
 대화란 어려워! 좋은 대답을 생각하는 사이에 계속 전개가 진행돼!
 비디오처럼 일시정지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러고 보니 들어 봐. 오늘 료 선배가 있지……''

 키타 씨가 꺼낸 것은, 료 씨의 분실물 찾기에 끌려다녔다는 이야기.
 확실히 료 씨 답네, 하고 웃으면서, 나는 맞장구를 쳤다.
 오늘 있었던 일로 수다를 떨 수 있는 건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커뮤니케이션에서 계속 도망쳐 온 아싸에겐 그런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를 만드는 게 제일 어렵다고.

 ''그래도, 인스피레이션을 위해 거리를 돌아다닌다니, 아티스트스러워서 멋있지.''
 "료 씨는 혼자서도 여러 곳에 갈 수 있는 사람이니까요……."
 ''그렇지! 나는 흉내 못 내. 분명히 친구를 데리고 갈 거라구.''
 "같이 놀러나갈 수 있는 친구……없네요……."
 ''내가 있잖아! 히토리 짱, 궁금한 데 없어? 다음번 휴일에 둘이서 데이트 하자.''
 "그, 그래도 돼요? 사실은 영상에서 슬로 로리스를 볼 수 있는 카페가 있다는 걸 봐서, 궁금한데요……"
 ''히토리 짱, 동물 좋아하는구나! 영상에서 봤단 건……혹시 이소스타 시작했어?''
 "아, 니〇니코……가 아니라, 튜브에서 본 느낌이에요……."
 ''그렇구나! 분명히 슬로 로리스면 그거지, 눈이 동그란 원숭이였지?''
 "맞아요. 움직임이 느긋해서 귀여워요. 나무늘보 같은 느낌이라……"

 신기하다. 키타 씨 상대로는 어쩐지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다…….
 내가 한 말에 잘 맞춰 주니까, 무척 말하기 쉽다.
 아아 위험해, 아무것도 아닌 얘기를 하고 있을 뿐인데, 입가가 풀어져 버려.
 수다를 떨 수 있는 상대가 있다는 거, 이렇게 즐겁구나…….

 스피커 너머에서 뭔가 병 뚜껑을 여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에헤헤, 이런 거 좋다. 키타 씨가 생활하는 냄새가 나.

 "뭔가 마시고 있어요?"
 ''이거? 음료수가 아니라 스킨이야. 피부는 예쁘게 유지하고 싶잖아?''
 "대단해라……키타 씨가 늘 반짝거려 보이는 건 저랑 다르게 뒤에서 그런 노력을 하고 있어서 그런 거군요……."
 ''반짝거려? 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고마워! 히토리 짱이 칭찬해 주면 정말 자신감이 생겨!''

 반응도 산뜻하고……나무랄 데가 없다…….
 새삼스럽지만, 이런 멋진 여자애가 왜 나 같은 애랑 수다를 떨어 주는 걸까.

 역시 기타일까. 기타 연습을 계속 봐 달라고, 대접 삼아 신경써 주는 걸까.
 분명 그럴 거야. 기타가 없으면 나한텐 아무런 가치도 없고.
 여긴 슬쩍 한 곡 쳐서, 다시금 실력 어필을 해 둬야지……!
 기타 소환! 나와라, 뭔가 은근한 느낌의 은근한 즉흥 리프!

 ''아, 기타 소리 들린다. 후후……뒤에서 노력하고 있다는 의미론, 히토리 짱이 훨씬 스토익하다고 생각해. 내가 이러고 있는 사이에도 제대로 기타를 만지고 있는걸.''
 "에? 아, 그게……."
 ''친구들이랑 놀다 보면, 자기 시간은 금방 없어져 버리잖아. 나도 기타 시작하고 나서, 혼자서 묵묵히 노력하는 시간이 의외로 만들기 어렵단 걸 통감했어.''

 노력가 어필처럼 돼 버렸잖아!?
 아니 어쩌면 "이쪽은 기타 만지고 싶은데 전화 길게 하지 말라고" 같은 메시지로 해석될지도!
 기타밖에 할 일이 없는 것뿐인데! 나는 어느 쪽이냐 하면 키타 씨랑 수다 떨고 싶은데!
 에이 기타 그만두자! 이런 거 언제든지 만질 수 있잖어!

 ''어라? 그만두는 거야? 좀 더 듣고 싶었는데.''
 "그런가요?"

 아아 역시 대화란 어려워! 키타 씨가 생각하는 걸 전혀 모르겠어!
 어쩌지. 한번 멈춰 버렸으니 또 기타 치기 시작하는 것도 이상한가~……
 하고 고민하는 사이에, 키타 씨는 성큼성큼 앞으로 가 버린다.

 ''뭐어 그치만, 어쩔 수 없지. 히토리 짱, 지금은 작사 하고 있다며?''
 "아……네. 혹시 료 씨한테서?"
 ''응, 하지만 내용은 비밀이라고 얼버무리더라. 어떤 노래가 될 예정이야? 엄청 신경 쓰여.''

 안돼안돼안돼! 키타 씨한테만큼은 절대로 말 못해!
 그럴듯하게 뭉뚱그려서 대답하자.

 "지금까지랑은 다른 느낌의 가사로 하고 싶어서. 저 보다도, 키타 씨한테 어울릴 만한 걸로……."
 ''혹시 신경써 주는 거야? 무리하지 않아도 괜찮아. 오히려 나는 있는 그대로의, 히토리 짱의 말이 좋아.''

 키타 씨는 정말 상냥한걸.
 이런 내가 자아내는 비뚤어진 가사라도, 불만 하나 말하지 않고 노래해 준다.
 하지만 거기에 계속 어리광 부리고만 있고 싶지 않다.

 "키타 씨를 위해서이기도 한데요……저 자신의 형편이 제일 클지도 몰라요."
 ''무슨 말이야?''
 "키타 씨가 여러 곳에서 등을 밀어준 덕에, 저도 꽤나 변했다고 생각하거든요. 지금이라면 긍정적이고 밝은 노래도 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싶어서."
 ''……그렇구나.''
 "역시 키타 씨도 반대하나요?"
 '''도'라는 건, 료 선배는 반대했구나.''
 "뭐어, 그렇죠."
 ''하지만 그럼에도 히토리 짱은 해 보고 싶은 거잖아? 그렇다면 난 응원할게.''

 다행이다. 키타 씨에게까지 반대당했다면, 아무리 그래도 결의가 흔들렸을지도 모른다.

 "감사합니다. 꼭 기대에 보답할만한 걸로 할게요."
 ''그렇게 무리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나저나, 정말 기합이 들어가 있구나.''
 "저에게 있어서 사상 최고로 중요한 곡이 될 것 같아서……."
 ''그런 중요한 가사를 맡겨 준다니, 보컬로서 행복해. 뭐든 써 줘. 전부 받아들여서, 내가 모두에게 전해줄 테니까.''

 ……대단해라. 밴드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런 식으로 등을 맡길 수 있는 동료가 생기다니, 중학교 시절엔 생각도 해보지 못했다.
 다 드러난 청춘이 내 이성을 박박 긁어 대는 것 같아서, 안절부절 못하게 된다.

 이 이상 마주 보면, 이상하게 취해 버릴 것 같다. 얘기를 돌리자.

 "그런데 키타 씨, 좋아하는 영화나 드라마 있어요?"
 ''물론 있는데……설마 포교해도 돼?''
 "온라인으로 대여할까 해서요. 뭘 볼까 고민하고 있거든요."

 알고 싶다. 키타 씨가 좋아하는 걸.
 그리고 지금 막혀 있는 작사도, 진도가 나갈 지도 모른다…….

 그렇게 얘기에 집중하는 사이에 창밖이 밝아져 있었다.
 어쩌다 보니 오래 얘기해 버렸네요, 하고 키타 씨와 같이 웃는다.

 나는 욕심쟁이다. 이런 시간이 되어도, 아직 헤어지기 싫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대로 계속, 키타 씨와 이어져 있고 싶다.
 하지만 학교 준비도 해야 하고……아쉬움을 뿌리치고 통화를 끝냈다.

 그러자, 갑자기 여러가지가 북받쳐 올라서…….
 안 돼, 참을 수 없다. 눈물이 나왔다.

 사람과 엮인다는 건 이렇게 즐거운 거구나.
 나 같은 아싸 외톨이라도, 이렇게 사람과 이어질 수 있구나.
 거창한 말일지도 모르지만, 처음으로 제대로 인간이 된 기분이 들었다.
 중요한 것을 남들보다 몇배는 늦게 되찾은 느낌이 들어서, 혼자서 멋대로 감동하고 있는 거다.

 아아, 나 정말 기분 나쁘다.
 친구랑 오래 전화한 거에 감동해서 뒤에서 울고 있다니, 키타 씨가 알았으면 분명히 미움받을 거야.
 그런데 눈물이 멈추질 않네.

 미안해 키타 씨.
 나, 더 제대로 된 인간이 될 테니까.
 이 가사를 끝까지 써 내면 조금은 가까워질 거라고 생각해.
 키타 씨 곁에 어울리는, 올곧고 반짝이는 사람에.

 

원작: 제노의 사람(ジェノの人) 님

원본 링크: https://www.pixiv.net/novel/show.php?id=1936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