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물/번역

[봇치더락SS] 그곳은 마치 괴수의 품 속 - 1

카와즈 2024. 3. 4. 19:25

"의외로 마음은 편하네/그렇네요

 

키노코 테이코쿠  괴수의 품 속

https://youtu.be/W4eFAWRAPtY?si=zlyRSCHxFCLezD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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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곧 날짜도 바뀌어 버리는 금요일 밤, 불금이라고 들떠 있는 사원을 무시하고 지나쳐 시체처럼 걸으면서 회사를 나온다. 드디어 중대한 안건이 끝났다. 그 뒷풀이를 가자고 상사에게 권유를 받았지만 오늘은 이만 돌아가서 자고 싶다고 절실히 생각해서 그럴듯한 이유를 대고 거절했다. 도쿄의 하늘은 한참 옛날에 까맣게 물들어서 칠흑의 커튼을 드리우고 있다. 회사에서 아침해를 보는 날은 안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역까지 걸어가 전철을 탔다.
 나 키타 이쿠요 스물 여섯살은 평범한 회사원이다. 평범한 고등학교, 평범한 대학을 나와서 평범한 기업에 취직. 블랙인 건 아니다. 평소엔 정시에 돌아갈 수 있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이렇게 잔업이 계속되면 염증이 나는 것도 사실이라, 드디어 해방된 오늘 정도는 혼자서 흠뻑 술을 마시고 싶다. 냉장고에 넣어 둔 술 캔들을 뇌리에 떠올리면서 기쁨에 크으 하고 입술을 물자 내가 내리는 역에 도착했다. 홈에 내려서 코로 공기를 들이마시고 하아 내쉰다. 지친 발은 의외로 가볍게 움직여서 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자신의 집인 아파트를 향했다. 
 그러나, 우리 아파트의 쓰레기장에 파묻히듯이 누군가 있었다. 마치 침대 대신인 것처럼 자는 그 사람은 예쁜 얼굴을 하고 빛바랜 청바지에 까만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긴 분홍빛 머리와 튀어나온 가슴으로 보아 아마도 여성. 쓰레기 냄새에 섞인 담배 냄새. 귀찮은 일엔 휘말리고 싶지 않지만 이대로 여기 두는 것도 걱정되어서, 나는 어깨에 손을 올리고 흔들었다.

 "저, 저기……, 이봐요……."

 가볍게 눈을 뜬 그 사람의 눈동자는 맑은 파란색이라 예쁘다고 생각했다. 괜찮은 건가 들여다 보자 그녀의 눈동자에 내가 비친다.

 "귀여워라……."
 "흐엑!?"

 갑자기 그런 말을 들어서 나는 펄쩍 뛰었다. 귀엽다니 몇 년만인지. 두근두근 소리를 내는 심장을 진정시키면서 헛기침을 하자, 그 사람은 드디어 잠이 깼는지 허둥대면서 상반신을 일으켰다.

 "앗, 저기, 그게, 저……."
 "너, 너무 취하시면 안 돼요. 확실히 치안은 나쁘지 않지만요."
 "아뇨, 죄송합니다……."

 두리번 두리번 전후좌우를 보는 그녀는 수상해 보여서, 그런 쪽 약을 하고 있다거나 하면 무섭다고 생각했다. 일어나기도 했고 집에 돌아갈까 하고 "그러면 조심히 가세요."라 말하며 나는 그 장소를 벗어나려 한다. 하지만 "기, 기다려 주세요!" 하고 나는 손을 붙잡혀 멈춰섰다.

 "어, 뭐, 뭐야?"
 "……하, 하루만! 아니, 가사든 뭐든 할 테니 하숙시켜 주세요! 도, 돈은 있어요! 부탁드립니다!!"
 "으, 으응……? 아니, 무슨 일 있으면 경찰에……."
 "경찰은 안 돼요! 부탁드려요……평생의 부탁이에요……."

 두 손을 붙잡혀 몸이 앞으로 굽어서 내 취향인 얼굴이 가까이 다가온다. 버려진 강아지 같은 시선을 받자 귀여운걸 하고 마음이 기우뚱한다. 위험해 보이지는 않고 뭐 한 사람쯤 괜찮을까 하고 "어쩔 수 없네." 하며 끄덕이자 눈앞의 얼굴이 환하게 웃는 얼굴이 되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자세한 얘기는 안에서 들을 테니까, 일단 집에 들어와."
 "네, 네!"

 여자를 데리고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올라가자 그녀는 어딘가 안절부절 못해 보였다. 나는 왜 이런 생면부지인 사람을 집에 들이는 걸까 한숨이 나올 것 같았지만 목구멍 속에 집어 넣는다. 아까 발언으로 보고 꽤 밀고 들어오는 타입인가 했더니만 조심스러운 성격인 것 같고 갑자기 재워 달라니.  ……절대로 귀엽단 말을 들어서 기뻐서 허락해 준 건 아니다. 절대로.
 문의 센서에 카드키를 대서 잠금을 풀고 그녀를 안에 들인다.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조심조심 신발을 벗고는 슬금슬금 거실로 들어갔다.

 "적당한 곳에 앉아도 돼."
 "아, 네……."

 그녀가 편하게 앉는 걸 보고 나서 나는 차를 준비한다. "티비 켜도 돼." 하고 부엌에서 말을 걸어도 대답이 돌아올 뿐 실제로 티비가 켜지는 일은 없었다. 과묵한 애구나 생각하면서 차를 테이블에 놓자 그 사람은 머뭇머뭇 나를 본다.

 "그래서, 일단 너 이름은?"
 "그, 그게……히, 히토리, 예요."
 "히토리 씨? 성은?"
 "이, 잊어버렸어요……."
 "뭐?"
 "기, 기억상실이에요."

 기억상실인 주제에 이름은 기억하고 있고 돈은 있고, 얘 사실은 지명수배 같은 거 당한 위험한 애 아닌가……하고 억측해서 침을 삼키자 히토리 씨는 울 것 같은 얼굴을 했고 그 표정에 내 가슴이 두근거리고 만다.

 "뭐, 뭔가 신분을 증명할만한 건 없어?"
 "우, 그게, 그게……."
 "안 그럼 못 재워 줘."
 "앗, 우……."

 히토리 씨는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서 내게 내밀었다. "제 전부예요……."라고 말한 그 안에는 만 엔 지폐가 20장, 신분증 그리고 캐시 카드가 들어 있다. 먼저 많은 장수에 놀라고 신분증을 카드 포켓에서 꺼내어 찬찬히 살펴봤다.
 고토 히토리, 26세. 나랑 동갑. 일단 스마트폰으로 이름을 검색해 보자 부분적으로 다른 누군가의 기사가 히트할 뿐, 지명수배나 기타 등등 좋지 않은 기사는 나오지 않았다. 휴우 가슴을 쓸어내리곤 신분증을 지갑에 넣어서 히토리 짱에게 돌려 준다.

 "왜 이름 안 말한 거야?"
 "여, 여러 사정으로……."
 "기억은?"
 "이, 있어요……."
 "숨긴다는 건 역시 뭔가 구린 일 있는 거야? 아니면 그냥 단지 말 못할 일?"
 "죄, 죄송해요. 말 못할 일, 이, 있어서……."

 히토리 짱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조직에게 쫓기고 있다거나 누군가에게 시비가 걸려서 도망치고 있는 게 아니면 좋으련만.

 "하아, 그건 네가 여기 있어서 나한테 피해가 미칠 만한 거야? 어떤 사건에 휘말리거나 내가 노려지거나 하지 않아?"
 "아, 그, 그건 전혀요. 사건성 같은 건 전혀 없어요."
 "그래? 그건 진짜로?"
 "지, 진짜, 예요……!"

 히토리 짱은 내 눈을 바라보며 그렇게 확실히 말했다. 뭐어 이 태도를 보건대 평소엔 솔직한 애겠지. 그래서 무슨 일이 있어서 도망치고 있다고. 그래서 숨겨 줬으면 좋겠다고.
 그럼 가족간의 문제? 가정폭력이라든가? 그럼 나에게 피해가 미칠 거고 외상이 없는 걸 보면 그럴 가능성은 낮을지도 모른다. 그럼 회사에서 튀었나? 야반도주? 이 현금을 보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뭐어, 쓸데없이 지치기나 하고, 생각하지 않아도 상관 없나. 귀엽고.

 "아, 안 될까요……."

 고개 숙인 파란 눈동자는 분홍색 앞머리가 길게 내려와서 마치 커튼처럼 되어 있다. 아마 정말로 곤란한 거겠지. 만약 이 애가 엄청난 악당이고 나에게 피해가 미치면 어쩌나 생각했다가, 뭐 어차피 재미없는 인생이고 그것도 괜찮지 않을까 결론을 냈다. 회식에서 할 얘깃거리 정도는 된다.
 하아 하고 한숨을 토해내자 히토리 짱은 움찔 몸을 떨었다.

 "하숙을 한다면 집안일은 해 줘. 청소랑 요리랑 빨래. 그리고 물건을 훔치거나 일부러 부수거나 하지 말 것."
 "무, 물론이에요!"
 "뭔가 사정이 있는 걸 테고, 뭐, 좋아. 앞으로 잘 부탁해, 히토리 짱."
 "히, 히토!?"
 "어머, 안 돼?"

 뺨을 새빨갛게 물들인 히토리 짱은 도리도리 고개를 가로젓고 "아, 안 되지 않아요……."라고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얼굴도 성격도 취향인 그녀와 지루했던 지금까지의 나날. 조금쯤은 재밌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나는 배가 고팠던 것을 떠올렸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히토리 짱은 꽤나 요령이 없는 애였다. 빨래를 개는 건 삐뚤삐뚤하고 요리는 태우고 청소는 효율이 나쁘다. 그래도 배워 보려고 필사적인 모습이 귀엽고 기특해서 나는 용서해 버린다. 내가 과거에 좋아했던 남자도 얼굴만은 좋았지 하고 씁쓸한 표정으로 되돌아보고 전철에 탄다.
 히토리 짱과 생활하기 시작하고 1주일이 지났다. 인상은 처음 만났을 때에서 변함없이 소심하고 상냥한 좋은 애. 어딘가 문제가 있다곤 생각되지 않아서 왜 그렇게 초조해했는지 신기했다. 마치 무언가에서 도망치는 것 같은, 눈을 돌리는 것 같은.
 회사에서 튀어서 사원에게 들키지 않게 도망다니고 있다는 게 내 추측. 도망친 사원을 쫓아다닐만한 말도 안 되는 블랙 기업이었던 걸까 멍하니 생각하며 정장을 입고 연일 늦게까지 컴퓨터 앞에 있는 히토리 짱의 모습을 상상했다.

 "봐 봐! Bocchi님 신곡 나왔어!"
 "어, 진짜네! 진짜 쩔지, 항상 히트곡만 내고 기타도 엄청 잘 치고."
 "얼굴 궁금하다, 분명 귀엽겠지! 가사도 그렇고 멜로디도 그렇고 꽂힌다니까."

 가까이 있던 여고생의 대화가 귀에 들어와 그 이름을 곱씹었다.
 Bocchi란 사람은 요즘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 아티스트로 기타리스트로서도 활동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나는 별로 음악에 밝지 않아서 잘은 모르지만 거리를 걷고 있으면 그녀의 곡이 이곳저곳에서 흐르고 있다. 얼굴을 내보이지 않는 것도 유명해서 그 미스테리어스함으로도 인기를 떨치고 있었다. 
 이름은 알아도 별로 흥미는 없다. 예쁜 얼굴은 좋아하지만 화면속에 있는 사람에게 빠질 정도로 몽상가는 아니고, 그보다도 현실에는 해치워야 하는 문제가 한아름 있다. 거래처와의 관계 유지나 세금이나 저금이나. 문제랄만한 문제는 아니지만.
 하지만 곤란은 있었다. 히토리 짱과 같이 사는 데에 있어서 수건이나 일용품은 그렇다 치고 옷이나 속옷, 식기도 새것을 준비해야만 했다. 히토리 짱에게 그걸 조달하러 가자고 해도 완고하게 밖에 안 나가려고 해서 곤란했고. 결국 속옷 사이즈를 가르쳐 달라고 했고 옷은 편한 옷을 적당히 샀다. 사실은 같이 놀러 나가고 싶었지만, 뭐어 얼굴이 좋으니까 용서한다.
 이런 부분이 내 나쁜 부분이라고 고개를 푹 숙이자 역에 도착했다. 기합을 넣고 홈에 내리고는 회사를 향해 걷는다. 오늘은 맑음, 그리고 아무 일 없으면 정시에 돌아갈 수 있는 날. 성큼성큼 역을 나와서 오피스 캐주얼에 몸을 감싼 나는 전장을 향했다.

 업무도 일단락된 점심 시간, 책상에서 먹으면 기분이 다운되니까 밖에서 먹으려고 히토리 짱이 만들어 준 도시락을 들고 플로어를 나서자 나를 기다리고 있던 듯한 다른 층 동료 삿츠를 만났다. 삿츠는 오른손을 올리고는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래로 내려간다.

 "도시락? 별일이네."
 "그런가? 아, 확실히 그런가."
 "어? 어느 쪽이야."
 "아니, 뭐랄까, 응……."

 1층으로 내려와서 밖의 적당한 벤치에 앉는다. 가을 하늘은 아직 늦더위가 심해서 그늘에 들어가 있으니 열이 누그러졌다.
 가방에서 꺼낸 도시락 뚜껑을 열자 조금 비뚤어진 계란말이에 시금치 참깨무침과 햄버그가 들어 있었다. 가방 안에는 주먹밥도 들어 있다.

 "오오~, 직접 만든 거야?"
 "어, 그게……."
 "뭐야, 남친? 성실하네."
 "이, 있잖아, 길가를 헤메던 사람을 구해서 집에 들인다는 건, 그, 위험한 행위일까……?"
 "뭐?"

 삿츠는 진심으로 의미를 모르겠다는 듯이 눈썹을 찌푸리고 나를 본다. 나도 그건 그렇지 생각하면서 계란말이를 입에 넣었다. 설탕을 넣은 달콤한 계란말이. 요리를 시작하고 1주일째 치고는 잘 됐다.

 "그건, 그 뭐야. 그러니까, 그 길가를 헤메던 사람이 만들어 줬단 말이야?"
 "뭐, 뭐어, 그런 셈이지……."
 "키타 드디어 정신 나갔어?"
 "그, 그런 건! ……아닐 거야."
 "제대로 부정하라고."

 나는 신음하면서 히토리 짱을 생각한다. 히토리 짱과 생활하면서 고민 하나라도 생겼으면 좋았을걸. 술버릇이 나쁘다거나 금방 손찌검을 한다거나 코골이가 시끄럽다거나. 그런 게 있으면 확 깨서 금방 집에서 쫓아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혀 없단 말이다.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계속 집에 있었으면 좋겠다. 힘내세요라며 건네주는 도시락을 받아 집을 나오고 낮에 메시지로 오늘 저녁밥을 듣고 돌아가면 부드러운 웃음으로 어서오세요라고 말해 주고 따뜻한 저녁밥이 준비되어 있다. 잘 때는 같은 침대에서 자고 일어나서 회사에 갈 준비를 끝내면 아침밥을 같이 먹는다.
 거기에 더해서 세탁과 청소는 이제 트집 잡을 곳이 없다. 말하자면 완벽해서 무엇 하나 불만 없는 생활인 것이다. 행복마저 느끼고 있을 정도로.

 "경찰서 가는 편이 좋은 거 아냐?"
 "아, 안 돼! 그건 안 돼!"
 "에에……?"
 "반대야, 불만이 너무 없어……! 있어야 할 곳에 들어왔다고 할까, 아무튼 완벽하단 말이야……! 계속 집에 있어 줬으면 싶을 정도로……!"
 "그 사람 분명히 얼굴이 키타 타입이지."
 "제일 문제는 그거야!"
 "역시나."

 그럴 줄 알았다고 말하면서 삿츠는 물을 한 모금 마셨다. 햄버그를 입에 넣자 조금 타긴 했지만 쓴맛이 좋은 악센트가 되어 있었다. 열심히 노력하는 부분도 귀엽다. 오히려 고마워, 블랙 기업. 히토리 짱이 길가를 헤메게 해 줘서. 나와 히토리 짱을 만나게 해 줘서 고마워.

 "뭐 키타가 괜찮다면 괜찮지만. 위험해지면 제대로 경찰서 같은 데 가라고."
 "응. 그건 물론이지. 하지만 진짜로 좋은 애야."
 "나이는?"
 "나랑 동갑. 그러니까 삿츠랑도 동갑이야."
 "헤에. 여자애?"
 "응. 뭐 그러니까 엄청 위험한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해."

 반찬을 다 먹고 주먹밥의 랩을 벗기고는 덥썩 베어문다. 유카리 주먹밥은 담백해서 맛있다. 다음엔 조금 더 어려운 요리도 가르쳐 볼까 하고 머릿속의 레시피 책을 넘기자 삿츠는 "그보다 길가를 헤멨다니 무슨 말이야?" 라고 내게 말했다.

 "글쎄. 걔 자기 얘기는 전혀 안 하니까. 하지만 아마 꽤나 심플한 이유라고 생각해. 블랙 기업에서 튀었다든가."
 "그래서 필사적으로 도망친다고? 잘 모르겠는데 말이지."
 "나도 별로 안 물어보도록 하고 있거든. 괜히 자극해서 나가면 싫고."
 "그게 본심이냐."
 "당연하지. 지금껏 없을 정도로 행복하니까."

 주먹밥의 마지막 한 입을 입에 넣곤 씹으면서 손을 모았다. 삿츠는 끝까지 납득하지 못했단 얼굴을 하고 있다. 그야 그렇다. 나도 삿츠한테 같은 얘기를 들었으면 같은 얼굴을 했을 거다. 나는 도시락을 가방에 넣고 일어났고 삿츠도 따라왔다. 회사 안에 돌아가 엘리베이터에 타서 액정에 비치는 숫자가 늘어 가는 걸 바라본다.

 "진짜 괜찮아? 그 사람에 대한 거 몰라도."
 "괜찮아, 딱히 대단한 경력도 뭣도 없을 테고."
 "그건 모르지? 야쿠자 딸이라든가 뒷세계 돈의 내연녀라든가. 실수해서 쫓기다 발각되면 키타까지……같은 생각 안 해?"
 "아무리 그래도 그런 일이 있겠어? 그런 배짱 있는 사람으론 안 보이고, 게다가 그건 그거대로 재밌잖아."
 "언젠가 정체 밝혀졌을 때, 만약 그 사람이 자기가 감당할 수 없을만한 사람이면, 키타는 어떡할 건데."

 삿츠에게 그런 말을 듣고 나는 생각한다. 만약 히토리 짱이 그런 사람이었을 때를 생각한다. 도망치는 이유를 나는 모른다. 하지만 그녀의 정체를 알고 내가 감당할 수 없었다고 치고, 지금까지의 생활을 포기할 수 있을까. 고작 1주일 사이에 완전히 코가 꿰어 버린 나는 싫다고 대답한다. 게다가 그런 큰일은 분명 안 될 테고 삿츠의 기우에 불과하다.

 "……글쎄. 그 때가 되면 생각할래."

 엘리베이터를 내리고는 철상자에 남는 삿츠에게 "그럼 안녕."이라 말하고 헤어진다. 쓴 표정을 짓는 삿츠에게 마음속으로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책상에 앉아서 오후 업무를 개시했다.
 내가 모르는 히토리 짱이 어떤 사람인가. 그걸 알아서 히토리 짱이 내게서 떠날지도 모른다면 알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카드키를 센서에 갖다 대서 잠금을 풀고는 문을 열고 신발을 벗는다. 슬리퍼 끄는 소리가 들리고 히토리 짱이 문 저편에서 모습을 드러내 "어, 어서 오세요."하고 내게 말했다. 다녀왔다고 말하고 거실에 들어가 가방을 소파 위에 놓는다. 앞치마를 두른 히토리 짱을 가만히 바라본다. 머리를 하나로 묶은 모습은 어딘가 포용력이 있어서 어리광을 부리고 싶어졌다.

 "오늘 밥은 피망고기완자예요."
 "야호! 목욕하고 올게."
 "네. 준비해 놓을게요."
 "부탁해."

 나는 거실을 나와 세면장에 들어가서 옷을 벗고 욕실에 들어갔다. 머리를 적시고 머리와 몸을 씻고는 목욕물에 잠긴다. 요즘은 히토리 짱이 집에 있으니까 가능하면 예쁜 나로 있고 싶어서 싸구려였던 샴푸와 트리트먼트를 그럭저럭 비싼 걸로 바꿨다. 덕분에 머릿결도 윤기도 좋아졌고 클렌저도 좋은 걸로 바꿔서 피부 상태가 좋다. 거기에 밥은 히토리 짱이 만들어 주니까 몸 상태도 좋다.
 히토리 짱이 집에 오고 나서 좋은 일뿐이다. 히토리 짱은 내 천사, 아니 여신. 이런 나날이 계속되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하다 오늘 삿츠에게 들은 말을 곱씹었다.
 혹시 히토리 짱이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삿츠는 야쿠자 딸이라느니 뒷세계 돈의 내연녀라느니 말했지만, 만약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절대로 히토리 짱에게서 떨어지지 않을 거다. 그런 거라면 아예 해외로 도망가 버릴까 싶고, 몽상가가 아니었던 나는 대체 어디로 가 버린 걸까. 하지만 솔직히 그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계속 혼자였던 생활에 나타난 구세주의 손은 놓고 싶지 않다.
 목욕을 마치고 머리를 말리자 히토리 짱이 밥을 준비하고 기다려 주고 있었다. 나도 자리에 앉아 둘이서 저녁밥을 먹는다. 흰 접시에 놓인 피망고기완자는 잘 돼서 설익지도 않았다. 밥과 같이 먹자 육즙이 입에 넘쳐흘러 나도 모르게 뺨이 풀어졌다. 히토리 짱도 똑같아 보여서 기뻐졌다. 누군가와 같이 먹는 밥은 역시 맛있다. 위가 따뜻해져서 긴장으로 얽힌 마음이 풀어져 간다.

 "오, 오늘은 잘 됐다고 생각해요."
 "정말 맛있어! 역시 히토리 짱!"
 "에, 에헤헤……그 정도까진……."

 칭찬 받아서 부끄러워하는 부분도 귀엽다. 그런 히토리 짱을 바라보고 있자 뺨을 붉게 물들이고 "뭐, 뭔가 묻었나요……?" 라고 내게 물었다. "으응, 아무 것도 아니야." 하고 답하곤 피망고기완자를 젓가락으로 집었다. 된장국에는 무와 미역이 들어 있었다.

 "내일은 뭐 할 거야?"
 "그게, 사실은 재밌는 드라마를 발견해서, 같이 어떨까 하고……뭔가 예정 있나요?"
 "좋네! 내일은 아무 것도 없어. 나 술 따 버릴까?"
 "저, 적당히 해 주세요……."
 "히토리 짱은 전혀 안 마시지."
 "전 약해서……."

 즐거운 일이 생겼네 하고 기뻐진다. 웃음을 짓는 히토리 짱을 보고 후후 웃자 저녁밥은 아무 일 없이 흘러갔다.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기분 좋았다.


 싱글은 좁다고 진지하게 더블 침대의 구입을 시야에 넣으면서 둘이서 침대에 뒹군다. 뒤통수에 히토리 짱의 숨이 닿아서 곧바로 한동안 이대로도 괜찮겠다고 결론지었다. 머뭇거리며 배에 둘러진 손에 내 손바닥을 겹치곤 내 것과는 조금 다른 히토리 짱의 냄새를 살짝 들이마신다.

 "히토리 짱 뭔가 갖고 싶은 거 없어?"
 "어, 글쎄요, 특별히는."
 "정말로? 내가 사 줄게."
 "괘, 괜찮아요. 이래 봬도 돈은 있거든요."
 "히토리 짱 인터넷쇼핑 좋아하지……."
 "이 생활엔 편리하니까요……."

 곤란한 듯이 웃는 히토리 짱의 목소리가 귀를 간질인다. 밖을 두려워하는 히토리 짱은 인터넷쇼핑을 많이 쓰고 있었다. 과자부터 일용품까지 전부 인터넷쇼핑으로 조달하려고 하니까 접혀서 묶여 있는 두꺼운 골판지 상자가 현관에 기대어 있는 걸 보고 환경파괴의 일인자라며 마음속으로 놀리곤 한다.
 뭔가 선물을 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집안일도 해 주고 있고 이 집에 오래 있어 줬으면 좋겠고. 그렇다기보다 나가지 말았으면 좋겠고.

 "그럼 뭔가 선물을 하고 싶은데."
 "서, 선물이라뇨. 하숙시켜 주는 것만으로 고마운데, 필요 없어요."
 "그래? 으음, 뭔가 없을까."
 "마음만으로 충분해요."
 "히토리 짱은 소재가 좋으니까 분명 악세서리 같은 거 잘 어울릴거라 생각하는데."
 "하, 하지만 저 밖에 안 나가는데요……."
 "확실히. 으음, 유감이야."

 나는 몸을 돌려 히토리 짱을 끌어안고는 가슴팍에 얼굴을 묻는다. 히토리 짱은 아주 조금 몸을 움찔거린 다음 내 등에 팔을 둘렀다.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고 생각했거든."

 그러자 히토리 짱은 입을 다물어 버려서 나는 얼굴을 올려다본다. 커튼으로 새어 들어오는 달빛이 그녀의 얼굴을 비춰서 나는 히죽거렸다. 히토리 짱의 뺨이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으니까.

 "히토리 짱은 알기 쉽다니까."
 "아, 으, 우우……."
 "뭐어,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겠지."
 "네, 네……."

 나는 그대로 눈을 감는다. 내일은 토요일이고 일은 쉬는 날이다. 몸을 감싸는 따스함을 느끼면서 히토리 짱 하고 이름을 부르자 끌어안는 힘이 강해졌다. 내일 보게 될 히토리 짱이 좋아하는 드라마는 어떤 내용일까 생각하다 점점 졸음에 삼켜져 간다. 
 히토리 짱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으면 좋겠다. 잠에 빠지는 한중간에 문득 그런 것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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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토라(虎) 님

원본 링크: そこはまるで怪獣の腕のなか | https://www.pixiv.net/novel/show.php?id=206409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