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물/번역

[봇치더락SS] 그곳은 마치 괴수의 품 속 - 2

카와즈 2024. 3. 4.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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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망친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싫증이 났으니까. 레이블과의 의견 결렬이라든가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든가 대단한 이유가 있으면 나도 조금은 가슴을 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건 없고 이젠 힘낼 수 없다고 생각한 나는 아무 말도 없이 사라져, 스마트폰의 위치정보를 끄고 전화도 메시지도 뭣도 전부 무시하길 계속하고 있다.
 통장 정도는 가져오는 편이 좋았을까 생각해도 현금카드와 신용카드가 있고, 애초에 키타 짱 집에 살면서 돈을 쓸 기회는 적다. 원래부터 집에서 안 나가는 나에게 있어 이 생활은 체질에 잘 맞고, 무엇보다 키타 짱은 나 자신을 봐 준다.
 
 "이 주인공 어떻게 되는 걸까………역시 죽어 버리나……?"
 "글쎄요. 하지만 아마 안 죽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럼 좋겠지만, 뭔가 안 좋은 예감이 든단 말이지……."

 키타 짱은 날 주워 준 은인이다. 보통은 신분도 정체도 밝히려 하지 않는 사람을 집에 들이거나 하지 않을 텐데, 키타 짱은 나를 아무것도 묻지 않고 숨겨 주고 있다. 상냥하고 귀엽고, 좋은 사람. 내가 하는 일 하나하나를 칭찬해 주거나, 실패해도 화내거나 하지 않는 사람. 매니저도 처음엔 그랬는데 하고 그 시절이 문득 떠올라서 사고를 지웠다.

 "꺅! 가, 갑자기 오네."
 "키타 짱은 무서운 거 잘 못 보나요?"
 "으응, 그런 건 아니야."
 "다행이다."

 텔레비전에는 스트리밍 서비스에 있는 좀비물 드라마가 흐르고 있다. 소파에서 키타 짱을 뒤에서 끌어안아 둘이서 감상하고, 가끔 무서운 신이 화면에 나타났다. 품 속에서 화들짝 튀어오르는 키타 짱을 느끼고 있으려니 주인공의 동료가 좀비에게 죽고 말았다. 그렇게 동료가 좀비가 되는 걸 보고, 미라를 파내러 간 사람이 미라가 된다는 속담이 문득 머리에 떠올랐다.
 키타 짱은 어리광부리는 걸 좋아하는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내 몸을 만지거나 끌어안거나 한다. 분명 학생 때는 인싸고 반 모두에게 사랑받는 사람이었던 거겠지. 아마 그건 지금도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하지만 이런 아싸고 어쩔 도리도 없는 나를 키타 짱은 만져 준다. 그게 기뻐서 계속 여기 있고 싶다고 생각했다.

 "히토리 짱, 점심은 오므라이스가 좋아."
 "네, 알겠어요. 닭고기가 없으니까 대신 소세지라도 괜찮아요?"
 "물론이지. 부탁할게."

 키타 짱은 내가 한 일에 대해서 반드시 무언가를 말해 준다. 고맙다거나, 부탁한다거나, 평소에 잊어버리곤 하는 것을 반드시 말해 주니까 그게 기쁘기도 하다. 키타 짱의 어깨에 가볍게 턱을 올리자 배에 두른 손가락에 손이 닿았다.

 "어라, 히토리 짱의 왼손 끝, 조금 단단하네."

 그 말을 듣고 나는 무심코 왼손을 기세 좋게 키타 짱에게서 멀리해 버렸다. 키타 짱은 갑자기 미안하단 얼굴을 하고 "싫었어? 미안해."라고 사과했다. 그것에 심장이 꽉 조여서 천천히 손을 배에 되돌렸다.

 "죄, 죄송해요. 보기 흉하니까."
 "응? 손이?"
 "네. 키타 짱 손은 보드라운데, 제 손가락은 이래서."
 "안 그런 것 같은데……. 히토리 짱 손, 난 좋아해."

 키타 짱의 발언에 가슴이 술렁였다. 그런가요 하고 왼손을 벌려 본다. 기타 현을 짚길 계속해서 단단해진 손끝. 그렇게 좋아했던 기타가 싫어져 버린 지금, 이 손가락의 두께는 나에게 방해물에 지나지 않는다.

 "뭔가 했었어?"
 "그게, 악기를, 조금……."
 "그렇구나, 뭘 했는데?"
 "그게……."

 말할까 망설였다. 만약 그게 계기가 돼서 나를 알게 되면, 키타 짱도 변해 버리는 게 아닐까 두려웠으니까. 키타 짱은 키타 짱 그대로 있어 줬으면 한다. Bocchi로서의 내가 아니라 그냥 고토 히토리로서 나를 취급해 줬으면 한다. 그러니까 나는 어물거린다.

 "……우리 할아버지는 있지, 목수셨어."

 키타 짱은 내가 고민하는 사이 말하기 시작한다. 왼손을 붙잡고는 천천히 펼쳐 손끝을 쓰다듬었다.

 "그분은 손끝만이 아니라 손바닥 전체가 딱딱했어. 놀러 가면 자주 그 손으로 쓰다듬어 주셨지. 단단하고 튼실한 손이었어. 할머니 손도 쭈글쭈글하고 힘줄이 툭 튀어나왔었지만, 그래도 밥을 만들거나 취미로 농사일을 하셨어."

 손바닥으로 전해지는 온기가 내 왼손의 단단한 손끝에 스며들어 간다. 부드럽게 꼭 손을 쥐고 키타 짱은 나를 상냥한 눈길로 올려다 보았다.

 "그 손은 본인이 보기엔 볼품없고 보기 흉할지 몰라. 그래도 뭔가를 열심히 하거나, 소중한 사람을 지키거나 하는 거야. 그러니까 굳은살이나 갈라진 건 훈장이라고 나는 생각해."

 키타 짱이 내게 웃어 보였다. 왼손은 두 손에 감싸이고 키타 짱이 살며시 끌어안았다.

 "그러니까 이 손도 무척 예뻐. 히토리 짱이 열심히 해 온 손이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은 좋아질 것 같지 않아?"

 나는 감싸인 왼손과 오른손으로 뒤에서 끌어안고는 어깨에 이마를 묻었다. 이렇게 기쁜 마음이 든 건 처음이라 어떡하면 좋을지 몰라서 나는 그저 키타 짱을 가둔다.

 "……키타 짱이, 그렇게 말한다면."

 기타를 계속 쳐 온 자신. 지금도 좋아지지 않는다. 우직하게 시키는 대로 곡을 만들고 영상을 올리고, 덧글로 칭찬받는 일은 있어도 그 이상은 없다. 곡을 만드는 기계처럼 되어서 돈만이 은행 계좌에 늘어가고, 나는 결국 아무것도 모르게 되고 말았다. 매니저조차도 봇치 짱이라면 할 수 있다느니, 힘내라느니 하는 말밖에 해 주지 않게 됐다. 이제 여기엔 못 있겠다고 생각해서 나는 기타를 두고 집을 나와, 여기에 있다.
 키타 짱은 무언가를 강제하지도, 못하는 나에게 화를 내지도 않는다. 내가 해낸 일에 대해서 칭찬해 주고, 실패한 일에는 위로의 말을 건네 주는 상냥한 사람이다.
 그러니까 그런 키타 짱이 말한다면 이 손도 좋아해 주고 싶다. 이런 손이라도 조금쯤은 예쁠 거다.

 "나는 이 손이 정말 좋아, 히토리 짱 손인걸."
 "아, 알았으니까요……."
 "점심에 오므라이스 만들어 줄 손이고."
 "그, 그야 물론이죠."
 "그러니까 히토리 짱도 언젠가 좋아하게 됐으면 좋겠네."

 키타 짱이 너무나도 내 왼손을 보고 사랑스럽다는 듯이 미소지으니까 어쩐지 자신의 왼손인데 질투해 버릴 것 같았다. 다시금 꼭 끌어안자 "어리광쟁이네." 하고 키타 짱이 후후 웃길래 더 힘을 주었다.
 과거를 버릴 수 있다면 난 망설임 없이 버려 버릴 것이다. 그 과거는 지금 나에겐 족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과거가 있으니까 키타 짱과 놀러 나갈 수도 없고, 언제나 떠올리고는 괴로워진다.
 이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키타 짱에 관한 것 말고는. 아무것도 눈에 담고 싶지 않고, 아무데도 가고 싶지 않다.

 회사에 가는 키타 짱을 배웅하고 익숙해지기 시작한 집안일을 해치운다. 설거지에 빨래 청소. 이 방 크기라면 3시간쯤 있으면 끝난다. 그러니 할일이 끝나면 스트리밍 서비스로 드라마를 보거나 영화를 보거나 하고 있다. 오늘은 뭘 볼까 현실에서 도망치듯이 리모콘을 손에 들자, 스마트폰이 길게 진동했다. 키타 짱인가 화면을 보니 료 씨란 글자가 떠 있었다. 받을지 말지 고민하다 통화 버튼을 누르고 귀에 갖다 댔다.

 "……네."
 "안 받을 줄 알았어."
 "안 받아도 되지 않을까 생각하긴 했어요."

 수화기 너머, 료 씨의 태도는 평소와 다르지 않다. 분명 언제나의 무표정을 갖추고 있는 거겠지 생각하면서 무슨 말을 할까 생각하고 있으려니 "니지카가 기다려, 빨리 돌아와 줘." 하고 매니저의 이름을 꺼냈다.
 료 씨도 나와 같은 아티스트. 내 편곡을 서포트해 주거나 가끔 한잔하러 가는 정도의 사람. 즉, 얼마 없는 내 은인이자 친구. 그러니까 전화도 받았고, 대화에도 응했다.

 "안 돌아가요."
 "왜."
 "이제 곡을 만들기 싫으니까요."
 "그럼 그 말을 니지카한테 해야지."
 "이제 만나기도 싫어요. 누구와도. 료 씨랑도."
 "애도 아니고."
 "애라도 좋아요."

 지금까지 열심히 이익을 회사에 남겨줬으니까, 그 정도는 용서해 줬으면 한다. 내 덕분에 상당히 벌었을 터이다. 그럼 약간의 억지 정도는 들어 줬으면 한다. 인세로 여생을 보낼 거니까. 키타 짱과 함께.
 거기에 료 씨나 니지카 짱은 필요 없다. 나와 키타 짱만 있으면 된다. 그거 말곤 아무것도 필요 없다. 음악도, 기타도.

 "……기타는 치고 있어?"
 "안 쳐요. 칠 생각도 없어요."
 "그래. 하지만 니지카는 만나서 말하지 않으면 납득해 주지 않을 거야. 언제까지고 뒤끝 남기는 타입이니까. 알잖아."
 "……몰라요. 이제 저한텐 상관 없는 일이에요."
 "고집 부려도 소용 없어."
 "고집 같은 거, 아니에요."
 "그래. 뭐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해. 언제든."

 그렇게 말하고 료 씨는 전화를 끊었다. 확 지친 피로감을 달래기 위해 오른다리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어 뒤져 보지만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다. 하아 한숨을 하나 쉬고 과자 선반에서 막대 달린 사탕을 꺼내 포장지를 벗기고 입에 물었다. 담배는 인터넷으론 못 사고, 애초에 키타 짱 앞에서 피울 생각은 없다. 들어 버린 버릇은 좀처럼 고쳐지지 않아서 사탕 표면을 혀로 쓸자 달콤한 우유맛이 미뢰에 올랐다. 피고 싶어질 때마다 사탕을 먹다간 당뇨가 생길 것 같다고 피워온 개피수를 저주한다. 키타 짱이 담배를 피는 모습을 상상하곤 어울리긴 하지만 말도 안 된다고 지워 버리고 드라마를 재생했다.
 기타의 감각은 잊어버리진 않았다. 오히려 강박관념처럼 계속 현의 감각이 손끝에 달라붙어 있다. 쳐야 한다 쳐야 한다 다그치는 듯한 마음을 진정시키듯이 드라마에 집중했다.
 오늘 저녁밥은 돈가스로 할까 하고 냉장고에 있는 식재를 머리에 떠올리면서 생각한다. 빵가루와 밀가루는 상비하고 있고 기름도 요전번에 쓴 게 아직 산화되지 않았다. 계란은 분명 얼마 안 남았었지 하고 튀김옷에 쓸 걸 생각하고는, 사러 가 주는 건 키타 짱이니까 별로 수고를 끼치고 싶지 않아서 오늘은 물에 푼 밀가루를 쓸까 생각했다. 자취는 하고 있었지만 직접 요리는 하지 않고 언제나 배달시키고 있었으니까 처음엔 요리도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익숙해지자 재밌단 생각이 들기 시작해서 지금은 낮을 지나면 메뉴를 자주 생각한다.
 키타 짱은 일 열심히 하고 있을까 하고 5와 12를 가리키고 있는 바늘을 바라보자 드라마를 틀어 놓은 텔레비전에서 기타 소리가 들려 왔다. 조연이 일렉기타를 치고 있는 신이었다. 앰프에 연결된 기타는 뒤틀려, 방을 울린다. 플래시백했다. 기타를 치던 나날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프레이즈를 연습해서, 칠 수 있게 되면 기뻐했다. 곡도, 노래도. 조연의 방문을 열고 누군가가 들어온다, 여자였다. "잘 치네!" 라고 했다. 이가 딱딱 부딪혀 떨림이 멈추지 않는다. 니지카 짱의 얼굴이 뇌리에 나타난다. 니지카 짱은 날 응원했을 뿐, 알고 있다. 의욕을 내게 해서 곡을 만들어 줬으면 했을 뿐. 하지만 곡을 만든 그 다음엔? 또 곡을 만든다. 그 반복. 힘내서, 힘내서, 그래서 뭐가 있단 말인가. 아무것도 없었다. 뭔가 있을 줄 알았다. 기타를 계속 친 왼손가락의 거죽만이 두꺼워진다. 돈만 늘어나도 공허하고, 거기엔 아무것도 없어서. 깨닫고 보니 나는 혼자였다.
 어떡하면 됐는가. 그밖에 뭐가 있었는가. 내게 뭘 할 수 있었는가, 니지카 짱은. 기타 히어로는 히어로가 된 기분이 들었을 뿐 진짜 히어로가 아니다. Bocchi로 이름을 바꾼 뒤로도 히어로는 되지 못했다. 그래서 도망쳤다. 나 자신을 누구도 구해 주지 않았으니까. 괴로워지는 자신의 방이 싫어져서 숨도 못 쉬게 되어, 지금 여기에 있다.
 무서워져서 침실에 들어가서 침대의 모포를 두르고 몸을 웅크렸다. 몸의 떨림이 멈추지 않아서 필사적으로 끌어안아 키타 짱의 냄새를 빨아들인다. 눈꺼풀을 꼭 닫고 나를 밖으로부터 격리하려고 한다.
 음악으로 사람 같은 건 구할 수 없다. 록 따위론 누구도 구할 수 없다. 나를 구해 주는 건, 내 존재를 인정해 주는 건 키타 짱뿐. 나에겐 이제 키타 짱밖에 없다. 키타 짱만 있어 주면 된다. 키타 짱이 곁에 있어 준다면, 나는──

 "다녀왔어~ 엑, 어두워라! 히토리 짱~? 집에 있어~?"

 그 목소리가 현관에서 들린 순간 나는 튀어오르듯이 침대에서 뛰어내려 현관으로 이어지는 문을 기세 좋게 열고 복도를 달려 키타 짱에게 달려들었다. 키타 짱은 "꺄악!"하고 소리를 내곤 이어서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대답할 수 없어서 그저 끌어안는다.

 "무슨 일이야? 무서운 꿈이라도 꿨어?"

 나는 고개를 옆으로 흔든다. 그리고 엄마에게 보채는 애처럼 끌어안는 힘을 세게 한다. 키타 짱은 내 등에 손을 둘러 주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괜찮아, 여기엔 나밖에 없어."

 그렇게 말해 주니 더 달라붙고 싶어져서 등을 꼭 쥐고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뒤통수의 머리카락이 결을 따라 키타 짱의 손바닥에 정리되어 간다. 쓰다듬 받는 게 이렇게 기쁜 거였던가.

 "무서운 일이 있었구나."
 "……응."
 "아직 무서워?"
 "……응."
 "그래, 그럼 일단 불을 켜자. 그럼 히토리 짱 얼굴도 볼 수 있고. 어때?"

 작게 끄덕이자 키타 짱은 현관 벽에 있는 스위치에 손을 뻗어 복도의 불을 켰다. 끌어안고 있던 몸을 조금 떨어뜨려 키타 짱의 얼굴을 머뭇머뭇 본다. 분노나 슬픔은 없다. 걱정과 미소만이 그곳에 있었다. 키타 짱은 내 양손을 잡고는 부드럽게 쥐었다.

 "얘기하기 싫어?"

 고개를 옆으로 흔들었다. 나는 키타 짱의 눈을 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면서 천천히 말해 나간다.

 "드, 드라마를 보고 있었는데, 근데, 안 좋은 기억이 떠올라서……."
 "응."
 "무서워서, 다시 그런 일은 겪고 싶지 않다고, 생각해서……. 하지만, 들키면, 도로 끌려갈지도, 모르니까……."
 "응."
 "이, 이제, 거기론 돌아가기 싫어……. 쓸쓸하고, 괴롭고, 외톨이는, 이제 싫어……, 키타 짱하고 계속 같이 있을래……떨어지기 싫어……."

 가슴이 먹먹해서 말이 걸린다. 그래도 전해졌으면 해서 말을 입밖에 냈다. 히토리 짱 하고 내 이름이 불린다. 고개를 들고, 나는 키타 짱의 눈을 매달리는 듯한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뺨을 손이 감쌌다. 키타 짱이 눈을 감고, 나도 감았다. 그리고 한동안 입술이 겹쳐진다. 천천히 키타 짱이 떨어지고, 나는 눈을 떴다. 조금 상기된 키타 짱의 뺨을 바라보고, 키타 짱이 품은 마음과 내가 품은 마음이 똑같다는 걸 확신하자 불안이 누그러졌다.

 "원하는 만큼 여기 있어도 되니까. 나도, 히토리 짱이 안 나갔으면 좋겠거든."
 "그건, 왜죠……?"
 "무드 없긴, 안 들어도 알잖아."

 키타 짱은 삐친 것처럼 그렇게 말하곤 신발을 벗고 집에 들어온다. 오늘 저녁밥은? 이란 말을 듣고 아, 하고 내 입에서 떨어진 것은 지금까지 잊고 있던 일.
 저녁밥, 안 만들었다.

 "죄, 죄죄죄죄송해요! 안 만들었어요!"
 "뭐, 그럴 것 같았어."
 "죄송해요! 지금 바로 만들게요! 목욕 오래 해 주세요 죄송해요!"
 "아냐, 괜찮아. 가끔은 배달 시키자! 피자, 규동, 중화요리~."
 "아니, 그래도!"
 "아까 한 거 벌써 잊어버렸어? 화 내지도 않고 낼 수도 없어."

 아, 우우 하고 입술의 부드러움을 떠올리고 얼굴이 뜨거워지자 키타 짱에게 불렸다. 거실에 들어가 둘이서 스마트폰을 보면서 배달 항목을 들여다봤다. 하지만 키타 짱이 쓰는 앱의 회원 랭크는 내 것보다 낮아서, 저렴해지니까 제 걸 쓰죠 하고 스마트폰 화면을 열자 료 씨한테서 "마주봐야만 할 날이 올 거야."란 메시지가 와 있었다. 그걸 무시하고 메뉴 화면을 열고는 뭐가 좋을까요 하고 둘이서 얘기한다. 키타 짱도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었으니까 보였을 거라 생각하지만 특별히 반응은 없이 둘이서 주문을 했다. 키타 짱은 피자, 나는 햄버거. 배달도 오랜만이네 하고 키타 짱과 만나기 전의 식생활을 떠올린다. 지금은 정말로 건강한 삶이다.
 주문을 하고 씻으러 가는 키타 짱을 배웅하고 료 씨의 메시지에 읽음을 찍었다. 답장은 하지 않고.
 입술을 만지면 키타 짱과 키스했을 때의 감촉이 되살아난다. 부드럽고 촉촉했던 입술. 괜히 가슴속이 소란스럽고 심장이 시끄러워서, 이게 사랑인가 하고 묘하게 납득했다.
 키타 짱은 나에 대한 걸 아무것도 모른다. 아무것도 모르는데, 나와 같은 마음을 보내 준다. 기쁜데 어딘가 떳떳하지 못한 느낌이라, 그런 자신이 싫어졌다.

 평소와 같은 아침, 일어나서 이를 닦고 키타 짱을 깨우곤 밥을 준비한다. 오늘은 계란말이와 소시지와 샐러드. 거기에 미트볼과 우엉볶음을 더해서 도시락에 넣고, 주먹밥과 같이 도시락 가방에 넣으면 아침 일은 그걸로 끝. 밥과 된장국을 나란히 테이블에 놓고 커튼에서 흘러넘치는 아침해를 마루바닥에 앉아서 받았다. 키타 짱과 함께라면 그렇게 무서웠던 햇빛도 무섭지 않다. 거기에 키타 짱이 화장할 때 들려오는 물소리나 가끔 들리는 콧노래도 좋았다. 소중한 누군가가 같은 방에 있다는 사실. 마음 편한 이 공간에는 우리들 말고는 존재하지 않는다. 기타 히어로도 Bocchi도 여기엔 없다.
 준비를 마친 키타 짱이 테이블에 앉아 같이 아침밥을 먹는다. 맛있다는 듯이 먹어 주는 걸 보고 기뻐서, 새삼 남을 위해 뭔가를 하는 기쁨을 느꼈다. 맛있어요? 하고 물으면 "맛있어."라고 대답해 주는 사람이 있다. 계속 이대로 이 생활이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나는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다. 언젠가 모두가 나를 잊더라도 이 일상만은 바뀌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잘 먹었습니다 인사를 하고 키타 짱을 배웅하기 위해 현관을 향한다. 벌써 가 버리는 건가 하고 조금 아쉬운 기분이 들자 키타 짱이 그걸 눈치채 준 건지 신발을 신은 다음 날 보고 말했다.

 "있잖아, 잘 다녀오란 키스는?"
 "에, 에!?"
 "안 해 줄 거야?"
 "아, 에, 아니!?"
 "후후, 너무 당황하잖아."

 키타 짱은 눈웃음을 짓는다. 그걸 신호로 나는 양손을 조용히 키타 짱의 어깨에 놓았다. 완전히 닫힌 눈꺼풀이 나를 끌어당겨 입술에 키스를 하고는, 금방 떨어졌다. 얼굴이 불을 뿜을 것처럼 뜨겁다.

 "얼굴 새빨개."
 "아,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이제 가 봐야겠다."
 "아, 네, 네. 다, 다녀오세요!"
 "후후, 다녀올게."

 키타 짱은 위아래 자물쇠를 수평으로 하고 문손잡이를 내려 문을 열었다. 틈새로 키타 짱이 나가서 닫히기 직전에 한 번 더 다녀오겠습니다라고 했다.
 방에 혼자 남겨진다. 오늘은 설거지와 청소뿐. 둘이 살면서 쌓이는 빨래는 그렇게 많지 않다. 일단 아침밥 식기를 씻고 식기선반에 세워 놓고는 다음에 청소기를 바닥 전체에 돌린다. 그 다음 선반 위나 테이블 위를 닦고, 부엌과 욕실 청소. 그걸로 끝. 깨끗해진 방을 보고 기분이 밝아진다. 혼자라면 절대로 안 하지만 키타 짱을 위해서.
 드라마를 볼까 생각했지만, 옷장 정리도 한가할 때 해 달라고 말했던 것을 떠올려서 나는 소파에서 일어났다. 침실 문을 열고 키타 짱의 옷장에 손을 대 잡아당겼다. 안은 뒤죽박죽인데 기본적으로 키타 짱 옷이 행거에 걸려 있었다. 그 아래엔 수납 케이스가 있어서 계절 지난 옷 등이 수납되어 있다. 문제인 건 그 위, 대기하고 있는 가방이니 패션잡화 등으로 케이스 위는 넘쳐나고 있었다. 그렇다고 버릴 수도 없으니 일단 전체를 발굴해 보자 하고 행거에 걸린 옷을 젖혔을 때, 작아진 익숙한 모양이 보였다. 무의식중에 손이 뻗어서 넥을 붙잡곤 꺼내든다.
 미니 기타. 아니, 우쿨렐레? 백엔샵에서 산 건지 값싸 보이는 만듦새라 도저히 본격적이라곤 말할 수 없는 그런 물건. 현은 4줄에 비닐 같은 그것은 정말로 소리가 나는 건지 걱정이 됐지만 제대로 소리가 났다. 그대로 바닥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고는 코드를 짚는다. 세면장에서 똑딱핀을 가져와서 그걸 피크 대신으로 다운 스트로크. 몇 번인가 반복해서 하나의 곡이 된다. 그것도 칠 수 있을까 하고 또 현을 쥔다. 정신없이 현을 튕겨서 머릿속의 멜로디를 모양잡아 간다.
 그저 의미도 없이, 튕기길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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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토라(虎) 님

원본 링크: そこはまるで怪獣の腕のなか | https://www.pixiv.net/novel/show.php?id=206409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