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물/번역

[Steins;Gate SS]연가원앙의 밀키웨이-2

카와즈 2014. 3. 27. 23:45

연가원앙의 밀키웨이


제2장 재귀성의 리파티션 (전)




 2-1:2011/02/14 21:35 아키하바라, 미래 가젯 연구소

 "하아……뭘 하고 있는 거야, 나는……!"

 부스스한 머리를 긁으면서, 오카베 린타로는 심하게 의기소침해 있었다.
 이 정도로 낙담한 것은 대체 얼마만일까.
 반년 전의, 그 시이나 마유리를 구하기 위해 분주하던 날들 이후일까.

 하지만 그렇더라도 이 의기소침한 모습은 심하다.
 마치 이 세계의 모든 것에 절망했다는 듯한 체관과 초췌함이 보인다.
 과거 몇 개인가의 세계선을 넘어다니며, 미래의 역사마저 자신의 의지로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바꾸어 써 버린 남자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
 만약 그가 그 정도로 의기소침한다면…….
 가까운 사람의, 랩멤들의 일대사에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무력함에 망연자실해 있는 상황일까.
 하지만 만약 그런 상황이라고 해서, 그가 이렇게까지 체관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도움을 바라는 동료가 있다면, 오카베 린타로라는 남자는 그야말로 귀신과 같이 곤란에 맞서는 남자일 것이다.
 그런 그가 대체 왜 이렇게나 꼴사납게 엎어져 있는 것일까.

 확실히 큰 일은 있었다.
 그것도 극히 중대한 대사건이.
 랩멤의 한사람으로서, 그야말로 인생에 관계된 것이라 해도 좋을 중대한 사건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오카베 린타로는 그 사건의 당사자이고…….

 그리고, 패잔병이기도 했다.

 "실패했다 실패했다 실패했다 실패했다 실패했다 실패했다 실패했다 실패했다 실패했다 실패했다 실패했다 실패했다 실패했다 실패했다 실패했다 실패했다 실패했다 실패했다 실패했다 실패했다 실패했다."

 아까 전부터 과거 다른 세계선에서 본, 절망을 상기시키는 편지의 문장이 그의 머릿속에 떠올라서는 사라져 간다.
 이 세계선으로 이끌어 준 그 건강함 넘치는, 친우의 미래의 사랑하는 딸의 웃는 얼굴에, 그리고 그녀가 다른 세계선에서 보여 준 노력과 각오에 보일 면목이 없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희생해가면서까지 자신은 이 세계선에 도달했는데도, 이래선 대체 무슨 꼴인가.

 하지만……동시에 그녀가 그 편지를 쓴 심경을 지금이라면 알 것 같았다.

 그렇다, 세계선의 수속마저 이용하며, 세계의 인식마저 속여넘겨 자신을 관철한 오카베 린타로……. 아니, 광기의 매드 사이언티스트 호오인 쿄마라 하더라도, 그것은 완수할 수 없는 미션이었던 것이다.

 "젠장, 다른 방법은 없는 건가……. 생각해라, 생각하는 거다, 오카베 린타로!"

 테이블에 엎드린 채 고민에 찬 신음을 낸다.
 하지만 아무리 자신을 질타하고 고무하려 해도, 마음속에서 기력이 솟아나질 않는다.
 그의 정신은 확연히, 그리고 확실히 꺾여 있었다.

 "크리스……!"

 그가 조용히 중얼거린 말에는 집착이라는 이름의 열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그의 얼굴에 떠오르는 번민은 그녀에 관련된 무언가가 이상이 있음을 명확히 고하고 있었다.

 하지만……그를 여기까지 철저하게 박살낸 사건이란 대체 무엇일까.
 마키세 크리스의 위기를 두고, 그가 포기할 수밖에 없는 일이란 대체 무엇일까.
 그가 어찌할 수 없었던 일이란……대체 무엇일까.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조금 시간을 되돌릴 필요가 있다.




2-2:2011/02/14 21:40 회상1

 마키세 크리스는 9월 하순에 재회하고 나서 3일정도 후에 미국으로의 귀로에 올랐다.
 황급한 이야기이긴 했지만, 어떤 의미로는 당연하다고도 말할 수 있다.
 그녀는 마음 편한 대학생이 아니다.
 미국의 대학은 일본에 비해 훨씬 수가 많아, 들어가는 것이 쉬운 반면에 졸업의 문틈은 좁고, 성실히 대학을 졸업하고 싶다면 마음 편하다든가 말할 여유는 없지만, 그건 그거다.
 그녀는 오카베 린타로보다 연하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대학을 학년을 건너뛰어 졸업하고, 연구소의 연구원이 된 재원……그것도 평가 노ㅠ은 논문을 발표한, 소위 말하는 천재라고 불리는 타입의 엘리트인 것이다.
 그런 그녀가 2개월이나 귀국을 미루고 있던 것이다. 해외에서는 일본에 비해서 장기 휴가가 흔하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너무 길다.
 반쯤 영락한 중년 연구자라면 아직 간과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평가나 사정적으로는 간과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젊다. 아직 18세인 젊은이다.
 스런 그녀가 자기 멋대로 그런 장기 휴가를 낸다면 재미없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최악의 경우엔 연구직을 박탈당할 위험마저 있다.
 그러니 흘러넘치는 마음을 필사적으로 감추고, 오히려 오카베 린타로 쪽에서 그녀의 귀국을 재촉한 것이다.

 "흐응, 즉 나는 이 랩에는 필요없다, 고. 그렇게 말하고 싶은 거지."

 마키세 크리스는 기분 상한 듯 가는 눈으로 오카베 린타로를 바라보았다.
 아니, 형용적으로는 오히려 째려보았다고 말하는 편이 정확할까.
 그것은 확연히 그녀가 바랐던 말이 아니었다.
 그렇다, 그녀는 실제로 오카베 린타로가 잡아 주었으면 했던 것이다.

 "그렇지 않다! 하지만 넌 저쪽 연구소의 정식 연구원이잖나. 너무 오래 비워두고 있으면……그, 여러가지로 안 좋은 게 아닌가."
 "……의외네. 오카베가 나를 그렇게 걱정해 주다니."

 한 순간 깜짝 놀란 표정을 띄운 마키세 크리스는, 팔짱을 끼고 한쪽 눈을 감고 그렇게 중얼거렸다. 뺨이 조금 빨갛게 물들어 있다. 어찌됐건 오카베 린타로가 마음 써 준 것이 기쁜 것이다.

 정말 잠깐 사이에……그녀는 오카베 린타로를 '오카베'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전과 같이.

 "의외라니, 네 재능은 내가 보증한다. 그걸 발휘할 장소를 잃어선 안 돼."
 "그건 고맙네. 하지만 딱히 오카베한테 보장받을 필요는 없는데 말야."
 "한마디 많다, 조수여. 아니, 크리스티나여!"
 "그러니까 조수도 크리스티나도 아니라고 하잖아!"
 "훗, 그랬지."
 "뭐, 뭐야. 갑자기 솔직해지지 마. 기분 나빠."

 언제나와 같이……아니, 재회하고 며칠만으로 언제나와 같이라고 말하는 건 묘한 이야기이지만.
 하지만 그렇다, 마치 과거의 날들과 같은 회화.
 마키세 크리스도, 시이나 마유리도, 하시다 이타루도, 그리고 다른 랩멤들도 모두 잊고 만 그 꺼림칙한, 그러나 멋진 날들.
 단 3주가 채 되지 않는, 이 세상에서 단 한사람 오카베 린타로만이 기억하고 있는 황금의 날들.
 그것이 문득 생각나, 오카베 린타로는 무심결에 자조가 담긴, 그러나 상냥한 웃음을 띄웠다.

 "……오카베는, 치사해."

 갑자기, 그런 말을 들었다.

 "뭐~가 치사하다는 것이냐, 조수여."
 "그치만, 그런 얼굴로 보면, 나……."

 마키세 크리스가 뺨을 붉히고 시선을 돌린다.
 상황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오카베 린타로는, 그녀의 등을 미는 말을 계속한다.

 "네 마음에 걸리는 건 내 안부였지 않나? 하지만 그것은 이미 확인되었다. 그렇다면 더이상 미련은 없겠지. 걱정하지 마라, 설령 어디에 있더라도 너는 우리 미래 가젯 연구소의 영광스런 랩멤 NO.4, 크리스티나인 것에 변함은 없으니까! 후우하하하하하하!"
 "그ー러ー니ー까ー 크리스티나 부분은 바꿔!"

 가는 말에 오는 말, 무심코 큰 소리로 소리친 뒤……마키세 크리스는 크게 숨을 뱉으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얼굴을 붉히고 오카베 린타로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곤란한 듯한 얼굴로 웃었다.

 "걱정해 줘서 고마워. 그렇지, 빨리 돌아가지 않으면 내 의자가 없어져버릴 지도 모르고."
 그녀의 웃음이 괜히 눈부셔서, 오카베 린타로는 목소리가 달아올라 버렸다.

 "오, 오오. 그렇게 하도록 해라. 그러나 잊지 마라, 너는 우리 랩의 일원이기도 하다. 네가 돌아올 곳은 여기에도 있으니까!"
 "……응."

 볼을 물들이고 쓸쓸한 듯이, 하지만 동시에 기쁜 듯이 마키세 크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또 일본에 올 일이 있으면 연락하도록 해라. 우리 랩은 언제나 너를 환영할 테니."
 "응, 그렇게 할게."

 그녀의 쓸쓸한 웃음이 너무도 사랑스러워서.
 하나하나 솔직히 대답하는 얌전한 모습이 너무도 사랑스러워서…….
 당황해서 그 분위기를 견디지 못한 오카베 린타로는, 무심코 이런 말을 내뱉고 말았다.

 "……이상하게 솔직하구나, 조수여. 기분 나쁘다. 뭔가의 함정인가?"
 "뭐, 뭐ー라ー고ー! 말했겠다! 오카베가 그걸 말했겠다! 내가 솔직한 게 뭐가 나빠! 에에이, 모처럼 오카베도 가끔은 좋은 소리 하는구나ー하고 조금 다시 본 내 감동을 돌려줘! 지금 당장 돌려줘!"
 "그, 그건 별로 돌려주지 않아도 괜찮은 거 아닌가?!"
 "아니, 안 돼! 이자 붙여서 돌려받을 거야! 십에 일이야, 십에 일! 10초에 1할이야!"
 "나, 남쪽의 황제* 이상의 폭리라고, 그건!?"

 그렇게 한바탕 하고 난 뒤……그녀는 귀국했다.
 그것은 9월도 슬슬 끝나가는 듯한 무렵…….

 햇살은 아직 강했지만……바람은, 이미 가을이었다.




2-3:2011/02/14 21:52 회상2

 마키세 크리스가 미국으로 돌아간 뒤에도 그들의 교류는 이어졌다.
 설령 서로의 거리가 아무리 떨어져 있더라도, 지금 시대엔 일본에서도 미국에서도 대부분의 사람이 휴대 전화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전화며 메일이며 주고받을 수 있는 수단은 얼마든지 있다.
 그렇다곤 해도 오카베 린타로나 하시다 이타루는 여름방학이 끝나고 대학이 시작되어 그 나름대로 바쁘게 보내는 날이 많아졌다.
 고교생인 시이나 마유리 등은 진작에 여름방학이 끝나고, 공부가 어렵다느니 수업에 따라갈 수 없다느니 푸념을 메일로 보내 온다.
 하지만 바쁘다고 한다면 마키세 크리스 쪽이 훨씬 더할 것이다. 아무튼 그녀는 연구직이고, 그것도 2개월이나 연구소를 비우고 말았다. 지금쯤 늦은 것을 되돌리려고 필사적으로 서류나 논문을 읽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즉……결과적으로, 마키세 크리스와의 연락은 막히기 일쑤였다.

 그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일지도, 하고 오카베 린타로는 생각하고 있었다.
 원래 이 세계선에서는 그녀와의 접점은 없었을 것이었다. 두번 다시 만나지 못할 것이라 각오하고 있지 않았던가.
 그것이 요행을 만나 재회할 수 있었다.
 짧은 동안이라고는 하나, 과거의 날들과 같은 교류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걸로 충분하지 않은가. 그 이상을 바라는 것은 억지를 부리는 것이겠지.

 그러니까 오카베 린타로는 반쯤 포기하는 심정으로 그런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외롭지 않다고 말한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모든 것은 처음부터 알고 있던 것.
 마키세 크리스가 이 세상 어딘가에서 살고 있다……그리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단지 그것만으로, 그는 어딘가 용서받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지만, 한번은 그녀를 죽이고 말았던 것이다.
 스스로의 손으로 그녀를 찔러 죽이고 말았던 것이다.
 과거의 자신을 속이고, 세계를 속여 그 세계선은 결과적으로는 없었던 일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그는 기억하고 있다. 그 광경을, 그녀의 마지막 목소리를, 흘러 떨어지는 피의 따뜻함을, 그리고……그녀의 몸을, 살을 꿰뚫은 칼의 감촉을.
 리딩 슈타이너의 힘을 가진다는 것은……즉 그런 것이다.

 오카베 린타로는 잊지 않는다.
 가장 사랑하는 여성을 스스로의 손으로 죽이고 말았다는 절망을, 절대로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가 살아있는 것만으로……무언가, 채워진 듯한 기분이 되는 것이다.

 오카베 린타로는……가끔, 문득 생각하는 것이 있다.
 자신의 힘……리딩 슈타이너는, 혹시 우수한 것이 아닌, 열등한 힘인 것은 아닌가, 하고.
 보통 사람은, 세계선을 이동한 결과, 새로운 세계의 기억이 재구축된다.
 그리고 리딩 슈타이너의 힘이 발현했을 경우, 그들은 재구축 후의 세계선의 기억을 잃지 않는다.

 계기가 있었다곤 해도, 원래 세계선의 기억을 완전히 떠올린 페이리스.
 머리 한구석에 원래 세계선의 기억을 함께 가지고 있던 루카코.
 자신의 죽음을 몇번이나 꿈에서 보았다는 마유리.
 오카베 린타로와 말을 주고받는 도중 문득 생각난 듯 과거의, 다른 세계선에서의 반응을 하는 마키세 크리스.

 발동 정도에 강약은 있지만, 그녀들(루카코는 남자지만, 당시에는 여성이었으니 그녀들로 문제는 없을 것이다)의 공통점은, 재구축된 기억과 함께 원래 새계선의 기억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재구축된 기억이 굳건하기 때문에 그것들 원래 세계선의 기억은 (페이리스를 빼고) 꿈이나 기시감, 혹은 기분 탓이라고 정리되기는 하지만, 어쨌든 양쪽 모두의 기억을 가지고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오카베 린타로는 다르다.
 새로운 세계선에 도착했을 때, 그 세계선의 기억을 받지 못한다.
 그것은 그 이외의 사람을 '정상'이라고 정의한다면, 말하자면 세계선이동적응부전이라고도 할 수 있을 적응질환의 일종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에게 적응질환이 있고, 이동후의 세계의 기억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이전 세계선의 기억이 덮어쓰기 되지 않고 남아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의 리딩 슈타이너의 능력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새로운 세계선의 기억의 덮어쓰기를 거절해 버리는 것인지, 그것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아무튼 세계의 운명을 자기 맘대로 바꿔 써 버리겠다고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는 인물이 아니고서는, 지금까지 그 세계에서 살아왔다는 기억을 가지고 있을 수 없다는 것은 아무래도 불편한 일이다.

 하지만……만약 그런 불편함이, 질환이, 결과로서 다른 사람은 흉내낼 수 없는 선택지를 고를 수 있게 하고, 그 결과 시이나 마유리와 마키세 크리스 두 사람을 구할 수 있던 거라면……오카베 린타로는 자신이 열등하다는 것을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싶었다.




2-4:2011/02/14 22:51 회상3

 그 뒤, 몇개인가의 사건이 일어났지만 결과적으로는 별 일 없이 시간은 흘러, 날짜는 지나 2011년이 되었다.
 완전히 평화에 젖어 그것을 만끽하고 있던 오카베 린타로는……
하지만, 어떤 날 즈음에, 다시 그 몸을 격동의 소용돌이에 던지지 않으면 안 되게 된다.

 "어이, 오카베!"

 등 뒤의 문이 노크도 없이 갑자기 열리며 그곳에서 울려 퍼진 큰 소리에, 오카베 린타로는 펄쩍 뛰며 당황하면서 뒤돌아보았다.
 그 날은 잊을 수도 없는 2월 1일.
 밖은 찬 바람이 심했고, 오카베 린타로는 랩에서 모포를 두르고 공부하고 있었다.
 그 시기는 그가 다니는 대학의 학기말 수험기간이었던 것이다.

 "미, 미스터 브라운?! 저, 저번달 집세는 냈을 텐데!"

 그곳에 있던 것은 같은 건물의 브라운관 공방 점주이자 이 빌딩의 오너, 미스터 브라운, 즉 텐노지 유고였다.

 "이번 달은 아직 아니냐!"
 "아니, 그건 예의노력중이라고 할까……죄송합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월말까지는 반드시 낼게요 부탁드립니다."
 "아니, 딱히 오늘은 집세를 독촉하러 온 게 아니야."

 미스터 브라운의 말에 어깨에서 힘이 빠진다.

 "뭐, 뭐야……놀래키지 말아 주실까, 미스터 브라운."
 "알 게 뭐야. 네가 멋대로 놀란 것 뿐이잖아."

 그때, 텐노지 유고의 등 뒤에서 쏙 얼굴을 내미는 여성이 있었다.

 "오카베 군……."
 "오오, 잘 보니 지압사도 함께인가. 대체 무슨 일이지?"

 섬광의 시압사, 키류 모에카는 휴대전화를 꺼내서 그 이명의 유래대로 굉장한 속도로 문자를 입력해 간다.
 그리고 아주 잠시의 타임 랙 후, 오카베 린타로의 휴대전화의 착신음이 울렸다.

 '별로 아무런 일도 아냐! 그냥 점장이 오카베 군을 만나러 간다고 해서 따라온 거야ー. 에헤헤 ><'
 "……여전하구나, 지압사여. 그보다 둘 다 가게를 비우면 누가 가게를 보는 거지."
 "걱정하지 마. 어차피 손님같은거 안 오니까."
 "아니, 그건 그거대로 걱정되는데."

 오카베 린타로가 그렇게 답하자, 몇순 후에 다시 그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날 걱정해 주는 거야? 오카베 군 상냥해ー! 꺄아ー! 어쩜 어떡해 누나 두근두근 해버려! ><'

 메일 내용과 눈앞의 아가씨의 무표정한 용모의 갭에, 오히려 안심한 듯이 오카베 린타로는 어깨를 으쓱하고 질린 듯 웃었다.
 이 세계선에서(그의 감각적으로는) 처음 만났을 때는 휴대전화를 쓰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의존증까지는 아니지만 아직 휴대전화를 놓을 수 없는 것 같다.

 키류 모에카는 텐노지 유고와 이전 라운더라고 불리는 위험한 비밀부대의 구성원으로, 오카베 린타로를 몇번이나 절망으로 내몬 인물이다……아니, 이었다.
 그들이 이 세계선에서도 라운더인지 어떤지는 모른다. 다만 확인하는 것도 무섭고, 확인할 필요도 없다고 오카베 린타로는 생각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타임머신에 관련된 증거를 일절 은폐한 이 연구소는 그들의 조사대상이 아닐 것이고, 즉 이대로 입다물고만 있으면 평화롭게 지낼 수 있는 상대일 것이기 때문이다.

 키류 모에카는 원래 세계선과는 달리 아래층 브라운관 공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텐노지 유고의 성내는 소리에도 지지 않고, 매일 성실하게 일하고 있는 것 같다.

 과거 다른 세계선에서 그녀의 죽음을 눈앞에서 본 오카베 린타로는, 그녀가 길을 잘못 든 요인이 그 고독과 쓸쓸함에 있었던 것을 알고 있다.
 그러니 이 세계선에서는 그런 사태에 빠지지 않도록, 한가한 때에 그녀를 챙겨 주었다.
 어쨌건 키류 모에카에게는 랩멤 배지를 건네 주었고, 정식 랩멤의 일원이다.
 그리고 랩멤을 위해서라면 발벗고 나서겠다는 것이 오카베 린타로라는 남자이다.
 게다가 그에게는 그 나름의 타산이나 사혹이 있었다.
 그녀를 챙겨 주며 신경써 주는 것으로 키류 모에카의 마음속 어둠이 조금이라도 메워진다면, 그것은 그녀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고, 나아가서는 미래 가젯 연구소의 잠재적 위협의 싹을 잘라내는 것에도 이어지는 것이다.

 키류 모에카와 적극적으로 얽히게 되고 나서, 그녀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이 있다.
 먼저 정리정돈을 못한다. 방 안은 남자인 오카베 린타로의 방보다도 더욱 어질러져 있고, 소위 말하는 '정리 못하는 여자'라는 것.
 생활도 대충이고 칠칠치 못하다. 식사는 컵라면 뿐이고, 또 자주 술을 마신다. 그리고 마시다 말았거나 다 마신 술병같은 것이 방 안에 굴러다니고 있다. 만약 남자친구 등이 (있다고 치고) 본다면 5초만에 경멸하게 될 것이 틀림없다.
 다만 일에 대해서는 굉장히 열심이고 성실하다. 아니, 오히려 주어진 일에 대해 과할 정도로 열심히 하는 타입이라고 하는 편이 옳을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면 라운더로서 그녀의 일솜씨도, 그런 면 때문인지도 모른다.

 특히 메일로 단련되어 있는 것인지, 문장관계는 랩의 모두가 놀랄 정도의 고수이다. 몇번인가 일을 도와 주었던 때에는 그녀의 리포트의 완성도에 질릴 정도였다.
 그 재능이 너무도 아까워, 오카베 린타로는 그녀를 다시 (그의 입장에서는) 예의 편집 프로덕션 아크 리라이트에 소개하기도 했다.
 임시로 하는 일이면서도 그 일솜씨가 그쪽의 여성 편집자의 맘에 들어, 여러가지로 귀여움받고 있다고 한다.
 생활은 대충이면서 일에는 우수한 그녀는, 혹시 가사 취사를 하는 주부라도 있다면 꽤 유능한 캐리어 우먼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오카베 린타로가 그런 회상에 젖어 있는 동안에 키류 모에카는 옆걸음으로 스스스, 하고 소리도 없이 이동해, 그의 약간 뒤에 있는 벽에 기댔다.
 그리고 양손으로 든 휴대전화로 자신의 입 근처를 가리면서, 그의 뒤통수에서 등, 백의를 바라보고, 약간 뺨을 붉히며 눈을 가늘게 떴다.

 "뭐야, 너희들 언제 그런 사이가 된 거냐."

 어깨를 떨구는 오카베 린타로.

 "오, 오해하지 마라, 미스터 브라운! 나, 나와 지압사는 그런 관계가……!"

 힐끔힐끔 주변을 둘러보며, 오카베 린타로는 이제와서 그녀가 등 뒤로 이동해 있는 것을 눈치챘다.

 "……."
 "어이 지압사, 왜 거기서 얼굴이 빨개지냐."

 무심코 높은 목소리로 지적해버린다.
 키류 모에카는 텐노지 유고의 말에 점점 볼을 붉히고, 어깨를 움츠려 조그맣게 되어 있었다.

 "호오, 뭐야 뭐야, 오카베도 얕볼 수 없겠구만!"
 "그, 그러니까 오해라고……에에이 미스터 브라운이여, 그런데 요건이라는 건 무엇인가!"

 이것은 무슨 말을 해도 놀림받을 흐름이란 걸 이해한 오카베 린타로는, 화제를 바꾸어 이 상황에서 도망치려 했다.
 도망이 아니다, 이것은 전략적 후퇴이다 하고 자신에게 말하면서.

 "아아, 그랬다 그랬다. 너한테 편지가 왔었어."
 "편지……?"

 텐노지 유고가 품에서 꺼낸 편지를 받아든다.
 하늘색 봉투다. 보내는 사람의 이롬도 주소도 없고, 단지 '오카베 린타로 님께'라고만 적혀 있다.
 주소도 없고 우표도 없고 소인도 없다면, 직접 1층의 우편함에 투하한 것이라 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오카베 린타로에게는 이런 편지를 보낼 사람이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요즘 시대에 메일도 아니고 편지라니, 이건 또 고풍스런……."
 그렇게 중얼거리며 봉투를 뜯고, 아무런 생각 없이 내용물을 확인하고……오카베 린타로의 눈이 경악으로 커졌다.
 접혀진 종이에는 짧게, 단지 이렇게 적혀 있었다.


 'TLM'
 '필요'
 '기한은 2월 14일'


편지를 든 손이 떨리고 있다. 등줄기에 소름이 끼치고, 전신이 차가워져, 식은땀이 손에 배어났다.

 "어이, 오카베, 뭐라고 적혀 있던 거냐?"

 오카베 린타로의 상태에 이상한 듯 눈썹을 찌푸리며 텐노지가 물었다.

 "아, 아니, 이건……!"
 "TLM이……뭐야?"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 오카베 린타로는 깜짝 놀라 움찔했다.
 어느새인가 키류 모에카가 그의 어깨 너머로 편지를 훔쳐 보고 있었다.

 "지, 지압사?! 나, 남의 편지를 멋대로 훔쳐보지 마!"
 "미안……."

 어딘가 곤란한 듯한 표정으로 스스스, 하고 떨어진 키류 모에카는, 휴대전화를 꺼내 굉장한 속도로 문자를 입력해 간다.

 '있잖아 있잖아ー, TLM이 뭐야ー? 신경쓰여ー. 있지, 오카베 군, 가르쳐 줘! ><'

그런 메일을 받고 오카베 린타로는 머리를 감쌌다.
 좋지 않다. 이 상황은 아주 좋지 않다.
 이 편지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불명이지만, 아마도 TLM이라는 것은 타임 리프 머신을 뜻하는 것이라 생각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대체 누가? 이 세계선에서는 애초에 개발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하지만 언제가 됐든 그들에게 말할 수는 없다.
 키류 모에카와 텐노지 유고는 α세계선에서 SERN의 라운더였다.
 그들의 임무는 SERN에게 있어 방해가 되는 IBN5100의 수색과 회수, 그리고 타임 머신 개발에 관련된 인물의 조사와 납치 등. 경우에 따라서는 처분……즉 살해조차 불사한다.
 이 세계선에서 그들이 라운더라는 확증은 어디에도 없지만, 이 세계의 세계선변동률……즉 다이버전스는 β세계선에 근사해 있고, 지금까지의 역사적인 흐름도 그가 기억하고 있는 세계에 가깝다.
 더욱 말하자면 키류 모에카는 이 세계선에서도 IBN5100을 찾아다니고 있던 사실이 있다.
 즉 그들이 라운더일 위험은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만약 이 편지가 나타내고 있는 것이 타임 리프 머신이라고 알려지면, 그들은 그 본성을 드러내고, 과거 α세계선처럼 습격해 올 지도 모른다.
 오카베 린타로는 그것만큼은 어떻게 해서도 회피하고 싶었다.
 물론 시이나 마유리나 하시다 이타루와 같은 이 랩에 상주하고 있는 랩멤들의 안전도 신경쓰였지만, 그것과 같을 정도로 그들……텐노지 유고와 키류 모에카 자신도 오카베 린타로는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
 오카베 린타로는 몇번이나 세계선을 넘는 과정에서 키류 모에카의, 그리고 텐노지 유고의 과거나 은연을 알고 말았다.
 그들은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이기도 한 것이다. 이 이상 불항하게 하고싶지는 않다.
 무엇보다 키류 모에카는 지금은 어엿한 랩멤의 한 사람이기도 하니까다.

 "아ー, 이건 말이지ー, 에ー, 그, 그래! 우리 랩의 위대한 미래 가젯 '초콜! 릿! 메이커!'의 약칭이다! 봐, 봐라, 2월 14일이라고 하면 세간에서 그거다, 발렌타인 데이라든가 하는 녀석이잖아!
 매드 사이언티스트 호오인 쿄마로서는 그러한 세계의 잡다한 일들엔 본래 엮이고 싶지 않지만, 아무래도 속인들은 내버려 두질 않을 것 같아서 말이다! 이렇게 편지로 재촉이 오고 있는 것이다, 후우하하하하하하!"
 스스로 했지만 멋진 대답이라고 자화자찬하며 높게 웃는 오카베 린타로.

 '왜 초콜릿을 도중에서 끊는거야! 이상하지 않아?! ><'
 "애초에 초코라면 T가 아니라 C겠지. 너 정말로 대학생이냐? 그래서 시험은 괜찮은거야?"
 "오오, 그랬지! 호오인 쿄마쯤 되는 자가 이런 걸 깜빡하다니. 후하하하하하!"
 "정말이지, 적당적당한 녀석이구만. 됐어, 어쨌던 편지는 전해 줬으니까!"

 아무래도 텐노지 유고는 질려서 흥미를 잃은 것 같다.

 "아아, 일부러 찾아오게 해서 미안했군, 미스터 브라운."
 "그럼, 나도……."
 "아아, 지압사도 일부러 와 주어서 감사한다. 또 한가한 때에는 오도록. 언제라도 환영하지."

 저벅저벅 계단을 내려가는 텐노지 유고.
 말 없이, 오카베 린타로에게 손을 흔들고 그 뒤를 쫓아가는 키류 모에카.
 어떻게든 속여넘겼다고 안도의 한숨을 쉬던 차에……갑자기 메일의 착신음이 울려, 오카베 린타로는 튀어 오르며 필요 이상으로 당황했다.

 메일을 보낸 사람은……조금 전에 계단을 내려간 키류 모에카였다.

 '좀 전에 오카베 군 얼굴 새파랬어! 걱정이야ー! ><
 편지 내용도 엄청 신경쓰이지만, 나한텐 말하기 어려운 일일지도 모르니까 안 물어볼게.
 그래도 혹시 말할 생각이 들면 언제라도 메일해!
 누나는 한밤중이라도 상담해 줄 테니까ー! 가젯 개발같은 건 못하지만, 나도 랩멤의 한사람이니까! ><   모에카'

 상상하고 있던 것과는 정반대인 내용의 메일에 크게 숨을 내쉬고, 턱의 땀을 훔친다.
 그리고 랩의 일원으로서 동료를 걱정하게까지 된 키류 모에카의 내심의 변화에 놀라며, 오카베 린타로는 역시 그녀를 말려들게 할 수는 없다고 굳게 결의했다.




 그리고……뒤에는, 난문만이 남겨졌다.




tips : 남쪽의 황제 : 금융만화. 법이 정한 이상의 이자로 돈을 빌려주는 오사카의 고리대금업자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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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베의 대사는 중2병일 때와 아닐 때가 있어서 참 곤란합니다.
남쪽의 황제가 무슨 패러디인지 아시는 분은 가르쳐주세요. 그런데, 오사카면 서쪽 아닌가...?
변이공간의 옥텟을 최근에 읽었는데, 꽤 재밌더군요. 게임은 게임대로, 소설은 소설대로. 

 3/3 추가 : 폐시곡선의 에피그래프를 읽고, 중2병이 아닌 오카베에 대한 기준이 바뀌어서 오카베 말투 수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