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물/번역

[봇치더락SS] 그곳은 마치 괴수의 품 속 - 5

카와즈 2024. 3. 5.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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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먀노테선을 달리는 전철 안, 나는 아직 밝은 도쿄의 거리를 바라보면서 히토리 짱에 대한 걸 생각한다. 가끔 시야에 들어오는 나무들은 잎을 떨구고 거리는 겨울로 옮겨 가려 하고 있었다. 히토리 짱과 만나고 3개월. 나는 히토리 짱의 정체를 눈치채기 시작했다. 그렇다기보다, 이미 눈치챘다.
 기타를 칠 때 우연히 귀에 들어온 콧노래가 길가에 자주 흐르는 히트 메이커 목소리와 똑같았다. 그리고 요전에 서점 앞을 지나쳤을 때 시모키타자와 씨 얼굴이 보여서 나도 모르게 그 잡지를 손에 들었다. 야마다 료라고 적힌 그 옆에는 시모키타자와의 팝 스타라고 적혀 있었다. 이제는 확신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부풀어오른 추측은 히토리 짱을 머나먼 존재로 만들어 간다.
 시모키타자와 역 홈에서 전철을 내려서 나는 느릿느릿 걷는다. 약속 장소인 카페는 역에서 멀었지만 택시를 탈 기분은 들지 않아서 도보로 향한다. 발이 아파지기 시작했을 때쯤 보인 카페 창 안쪽, 야마다 료는 나를 보고 손을 들었다.
 아이스커피를 좋아하는 듯한 그녀를 따라서 나도 같은 것을 주문한다. 미미하게 풍기는 담배 냄새에 처음 만났을 때 히토리 짱도 그런 냄새가 났었던 것을 떠올렸다. 분명 가르친 건 눈앞의 사람이겠지.
 놓여진 아이스커피엔 입도 대지 않고 옆에 놓고는 료 씨는 나를 히죽거리며 바라보았다.

 "이쿠요가 나를 부르다니, 무슨 일 있었어?"
 "히토리 짱한테 기타를 준 건 료 씨죠?"

 료 씨는 갑자기 진심으로 즐겁다는 듯한 얼굴을 한다. 히토리 짱과는 정반대인 사람이라고 늘 생각한다. 인기를 얻는 것에서 그 이상 없을 쾌감을 느끼는 사람. 지금도 내 반응을 즐기며 검은 액체의 양을 줄이고 있다.

 "그래, 내가 줬어. 친절하게 현도 새걸로 갈아서."
 "왜 그런 짓을 한 거죠?"
 "그런 짓이라고 할 만큼 나쁜 일은 안 한 것 같은데?"
 "히토리 짱은 기타를 싫어한다고요."
 "기타를 싫어한다니, 이쿠요가 그렇게 생각하고 싶을 뿐이잖아?"

 정곡이다. 하지만 기타를 손에 쥐면 히토리 짱은 내게서 멀어져 가 버린다. 원래는 틀림없이 내게서 먼 존재인 사람이다. 내가 묶어 두고 있으면 재능이 썩고 만다. 나 때문에. 그건 싫다. 히토리 짱에겐 내 옆 말고 더 큰 무대가 있는데. 거기에 설 권리가 있는데.
 
 "히토리 짱은 정말로 그 Bocchi인 건가요?"

 료 씨는 더 깊게 웃음짓고는 아하하 소리를 냈다. 아이스커피를 옆에 놓고 나를 바라보는 료 씨는 테이블에 턱을 괴었다. 히죽 웃고는 "응, 맞아."하고 가볍게 긍정했다.

 "고토 히토리는 틀림없는 Bocchi야. 세계를 넘나들면서 활약하고, 곡을 만들면 날개돋친 듯 팔리지. 그런 아티스트."
 "히토리 짱이 없어지고 나서 벌써 3개월이 지났어요. 그걸 위쪽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요?"
 "계속 혈안이 돼 있어. 하지만 봇치가 집에서 안 나온다면 찾을 방도가 없잖아? 그야 계기가 없으니까."
 "……그런가요."

 시간 문제일지도 모른다. 기타를 잡고 만 히토리 짱은 분명 큰 무대에 설 것이다. 그런 운명인 사람이다. 내가 뭘 하든 그 애는 하늘 높이 날아갈 것이다. 히토리 짱이 바라지 않더라도.

 "그 후에 봇치는 기타 쳤어?"
 "……당신하곤 관계 없어요."
 "으후후, 치고 있구나. 뭐 그렇지. 봇치는 기타 말곤 할 줄 아는 게 없는걸."
 "히토리 짱을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세요."
 "실제로 그렇잖아. 봇치는 기타를 치는 걸로밖에 살 수 없어. 다른 모든 걸 배제당하고 단지 그것만을 위해 태어났지."

 쏘아보는 시선에 히죽거리는 입가. 마치 너는 이제부터 어떡할 거냐고 말하기라도 하는 듯한 그 동작은 시험받는 것 같아서 짜증이 난다. 나는 테이블 아래에서 주먹을 쥐고 입술을 물었다.

 "히토리 짱은 앞으로 어떻게 될 거라고 생각하세요?"
 "글쎄. 몰라. 하지만 이대론 있을 수 없어."
 "……저, 저는, 어떡하면 될까요."
 "그거야말로 난 몰라. 하고 싶은 대로 하지 그래?"

 손쓸 방도가 사라진 나는 고개를 떨구고만 싶어진다. 머릿속에 감당할 수 없다는 말이 떠올랐다. 그야말로 지금 히토리 짱은 새장 속 새다. 내가 문을 열어 주면 그대로 날아갈 듯한 그런 사람. 모르는 척을 하면 이대로 계속 같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걸 할 수 있을만큼 나는 강하지도 않고 각오도 없다. 나는 약하다.

 "일단 봇치 노래를 들어봐."
 "네?"
 "그 다음에라도 늦지 않아."

 안녕 하고 료 씨는 아이스커피 값을 테이블에 놓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살며시 나부끼는 가벼운 머리가 흔들리며 카페를 나가자 나는 들은 말을 곱씹는다. Bocchi의 노래. 그러고 보면 나는 제대로 들은 적이 없을지도 몰랐다. 내가 모르는 히토리 짱을 나는 알고 싶어졌다.
 카페를 나와서 편의점에 들어가 이어폰을 사고 점원의 김빠진 목소리와 함께 밖으로 나선다. 집으로 돌아가 듣기에는 히토리 짱에게 의심받을 테니까 가까운 카페로. 아이스커피만 주문하고 창가 카운터석에 앉아 이어폰을 스마트폰에 꽂고 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를 열었다. Bocchi라고 검색해서 히토리 짱 곡 중에서 가장 재생수가 많은 걸 탭한다. 재생수는 1억을 넘고 댓글창은 일본어와 외국어가 뒤섞여 있었다. 재생되어 들려온 목소리는 어딜 어떻게 들어도 히토리 짱 그 자체였고 나는 왜 좀 더 빨리 눈치채지 못했나 자신에게 어이가 없었다. 아주 좋은 곡이었다. 제대로 음악을 접해오지 않았던 나는 그런 말밖에 할 수 없었다. 다음 곡을 재생했다. 다음 곡도 1억 번 재생됐다. 그 다음도, 그 다음도.
 대단하다 생각해 버렸다. 히토리 짱을 괴롭히는 것인데, 나는 진심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해 버렸다. 하지만 이만한 곡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이렇게 많이 기대받는 사람이 이 세상에 얼마나 있단 말인가. 히토리 짱은 내가 독점해도 되는 사람일까. 하지만 같이 있고 싶다는 마음은 변함없다. 계속 같이 있고 싶다. 앞으로도, 그 앞으로도 계속. 히토리 짱 곁에서 떨어지고 싶지 않다. 하지만 히토리 짱은 날아가야 한다. 내 곁을 떠나, 높이 높이.
 코끝이 찡해서 테이블에 팔꿈치를 올리고 손깍지를 끼고는 이마를 올렸다. 입술을 꽉 깨물자 히토리 짱의 목소리가 내 고막을 진동시켰다. 히토리 짱이 좋다. 좋아하니까 더욱, 같이 있고 싶고, 날아갔으면 한다. 스마트폰에 톡 물방울이 떨어졌다. 이어서 몇 방울이 떨어져 작은 산을 만든다.
 히토리 짱, 난 어떡하면 좋을까.


 집 문을 열고 신발을 벗자 슬리퍼 끄는 소리와 함께 히토리 짱이 내 곁에 다가온다. 그렇게 가까이 온 히토리 짱을 끌어안고 다녀왔어의 키스를 한다. 히죽 웃는 히토리 짱을 다시 한 번 끌어안았다. 오늘 밥은 니쿠자가예요 하고 훌쩍 요리를 잘하게 되어서 요즘은 즐거워 보인다. 같이 밥을 먹고 목욕을 했다. 내가 나오고 나서 거실로 돌아가자 오늘은 어쿠스틱 기타를 울리고 있었다. 처음 보는 그것에 나는 놀랐고 동시에 무서워졌다. 마치 새가 날개를 펼친 것 같은, 그런 착각이 들어서.

 "히토리 짱, 그거……."
 "아아, 이거요. 인터넷으로 산 게 드디어 도착했어요. 어쿠스틱 기타란 건데 일렉 기타랑 다르게 앰프가 필요 없어요."
 "왜 그걸?"
 "일렉 기타는 앰프가 없으면 재미 없고, 그리고……."

 히토리 짱은 말끝을 흐리더니 잠깐동안 시선을 헤메이다, 각오를 굳히곤 똑바른 눈으로 나를 본다. 나는 소파에 앉아 히토리 짱을 보았다.

 "저, 저기. 제가 키타 짱을 만나기 전에 뭘 했는지 키타 짱은 아나요?"
 "……응."
 "그럼 제 이름도?"
 "……응."
 "그런가, 그랬군요."

 히토리 짱은 시선을 기타에 되돌린다. 번데기가 날개돋이해서 아름다운 나비로. 그 광경은 분명 기쁜 것이다. 그리고 나는 기뻐해야 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지금은 목이 마른다. 눈도 입도.

 "저, 저 곡을 만들고 있었어요. 그럭저럭 유명해서 꽤 벌었어요. 하지만 레이블 사람한테 이런저런 말을 듣는 사이에 뭐가 목표였는지 모르게 돼서. 그래서 이제 됐다고 생각해서, 그만뒀어요."

 히토리 짱은 기타 현을 짚고서 치지 않고 계속 바라보고 있다. 드디어 소중한 것을 손에 넣은 듯한 얼굴을 하고서.

 "하지만 키타 짱을 만났어요. 키타 짱은 제 전부를 받아들여 주고, 저한테 기타를 못 쳐도 된다고 말해 준 첫번째 사람이에요. 그래서 저는 다시 기타를 들 수 있었어요."

 들지 않아도 돼, 그런 거. 어딘가에 놓고, 아무것도 못하는 채로 있어줘. 기타 같은 걸 드니까 안 되는 거야. 기타가 있으니까. 그러니까 우리들은 함께 있을 수 없는 거야.

 "전부 키타 짱 덕분이에요. 키타 짱이 있어 줬으니까 이렇게 저는 다시 기타를 칠 수 있는 거예요. 키타 짱 덕분에 저는 다시 일어설 수 있었어요. 키타 짱 덕분에."

 치지 마, 그만둬. 치면 히토리 짱이 아니게 되어버려. 내가 좋아하는 건 Bocchi가 아니야. 그냥 고토 히토리야. 그러니까 그냥 히토리 짱으로 있어 줘. 내 곁에 있어 줘. 곡 같은 거 안 만들어도 돼. 또 괴로워질 바이에 내 곁에서 웃고 있어 줘. 아무것도 못 하는 히토리 짱을 사랑해 줄 테니까.

 "그래서, 무, 무슨 말이 하고 싶냐면……키타 짱을 위해 만든 곡, 들어 줬으면──"
 "안 돼, 절대로."
 "네?"

 나는 기타를 빼앗아 망가지지 않을 정도로 러그에 적당히 놓고는 당황하는 히토리 짱의 머리를 두 손으로 붙잡고 난폭하게 키스를 했다. 덮치듯이 몸을 누르고 숨을 빼앗아, 아예 죽일 수 있을 정도의 키스를 한다. 혀를 넣어 유린해, 말이 나오지 않도록 전부를 히토리 짱 안쪽에 쑤셔넣는다. 히토리 짱이 잘못한 거다. 히토리 짱이 나를 봐 주지 않고 그런 쓸데없는 걸 들려고 하니까. 아무것도 못하는 히토리 짱을 사랑해 줄 건데 왜 뭔가를 하려고 하는 거야. 필요 없잖아, 그런 건.

 "키, 키타 짱."
 "필요 없어, 전부 필요 없어. 히토리 짱의 기타도 곡도 전부. 그런 게 있으니까 히토리 짱이 내 곁에서 없어지는 거야."
 "아, 안 없어져……."
 "거짓말. 내가 원하는 건 그냥 고토 히토리야. Bocchi같은 게 아니라, 그냥, 아무것도 못하는 히토리 짱이야. 기타를 치는 히토리 짱 같은 건 몰라, 알고 싶지도 않아."
 "하지만 기타가 없으면……."
 "없어도 돼! 없어도 사랑해 줄게, 곁에 있을 테니까, 그런 거 그만둬……."

 히토리 짱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날아가기 직전의 나비를 번데기에 돌려 놓으려 꼭 끌어안는다. 등을 꼭 쥐어 품 안에 있는 히토리 짱을 느꼈다. 히토리 짱은 머뭇거리며 내 등에 팔을 둘러 주었다. 하지만 그 힘은 훨씬 가볍다.

 "키타 짱은 무서운가요?"
 "무서워, 무서워……."
 "제가 기타를 들면, 무서워요?"
 "무서워, 싫어……히토리 짱이 어디 가 버리니까, 나한테서 멀어져 버리니까……."
 "……알겠어요."

 히토리 짱은 내 뒤통수를 부드럽게 쓰다듬는다. 부드럽게, 부드럽게. 더 히토리 짱을 느끼고 싶어서 한층 더 힘을 주자 괜찮아요, 괜찮으니까요, 하고 나를 진정시키는 목소리가 들렸다.
 
 "키타 짱이 싫다면 저 기타 안 칠게요."

 히토리 짱은 톡톡 등을 부드럽게 두드려 주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안심해서 훌쩍 콧소리를 냈다. 눈물이 히토리 짱의 어깨에 스며들고 나는 몸을 떨었다.

 "기타를 치는 이유도 키타 짱이니까요. 그러니까 키타 짱이 싫다면 됐어요. 필요 없어요."
 "……미안해."
 "괜찮아요. 사과하지 마요."
 "……미안, 해."
 "좋아해요, 키타 짱."
 "……정말 좋아해, 정말로, 하지만 그건, 응원 못 하겠어."
 "정말 좋아해요, 키타 짱."
 "……계속 곁에 있어 줬으면 좋겠어, 하지만 그게 있으면, 곁에 못 있으니까."
 "사랑해요, 키타 짱."
 
 히토리 짱은 테이블 위에 있던 리모콘을 들고 전등을 끈다. 그리고 나를 밀어 넘어뜨려 위에 올라탔다. 히토리 짱의 아름다운 얼굴이 내려와 입술이 겹쳐진다. 그리고 몇 번이고 겹쳐져, 우리들은 하나가 된다. 떨어지고 싶지 않고, 떨어질 수 없다. 하지만 사실은 알고 있다. 이대로는 있을 수 없다는 걸, 이런 억지를 계속 밀고 나갈 순 없다는 걸. 이런 건 어린 애 고집이란 걸.
 하지만 히토리 짱이 없는 생활은 이제 상상할 수 없어. 히토리 짱은 하나밖에 못 하니까 기타를 들면 나 같은 건 시야에 안 들어올 거 아냐? 그럼 기타를 든 히토리 짱은 필요 없어.
 히토리 짱에게 만져진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사랑한단 속삭임을 들으며. 몇 번이고 몇 번이고 키스를 하고, 그러고도 겹쳐지지 않는 우리들에 슬퍼진다. 몸 같은 게 있으니까 히토리 짱과 있을 수 없는 거다. 둘이 하나가 되면 좋을 텐데. 그러면 이런 고민도 없어질 텐데.
 동틀녘의 거실, 잠든 히토리 짱을 침대에 두고 나는 그저 울었다. 몸을 웅크리고 얼굴을 덮고, 훌쩍거리며 조용히 울었다.

 

 휴일 부엌에서 점심을 먹은 뒤 설거지를 하는 히토리 짱 옆에서 나는 접시를 닦는다. 둘이 나란히 가사를 하고, 이게 우리들의 일상. 그로부터 히토리 짱은 기타를 치지 않게 되었다. 미니 기타조차. 히토리 짱은 변함없다. 나와 만났을 때 그대로 Bocchi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이걸로 괜찮은 걸까 나는 생각한다. 원한 건 나인데. 히토리 짱은 늘 웃어 준다. 집에 돌아가면 히토리 짱이 있고,  집에서 나가지 않고 오직 나를 위해서만 살고 있다. 마치 죽을 때까지 썩혀 두는 것처럼. 히토리 짱에게서 기타를 빼앗은 나는 천국에는 못 갈지 모른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 인터폰이 울렸다. 중앙현관이 아니라 집 현관 모니터 앞. 별일이네 하고 약간의 불신감을 느끼면서도 액정을 들여다보자 거기엔 집주인님이 계셨고 통화 버튼을 눌러 가볍게 말을 주고받은 뒤 현관을 향했다. 신발을 신고 문을 열자 거기엔 집주인 말고도 딱 맞는 양복을 입고 금발머리를 사이드테일로 묶은 키가 작은 여성이 서 있었다.
 집주인은 옆 사람을 내 손님이니까 얘기를 들어 줬으면 한다고 말하곤 돌아갔다. 손님? 하고 당황하고 있으려니 그 사람은 싱긋 웃으며 명함을 내밀었다. 그 기업명을 보고 나는 눈썹을 찌푸렸다.
 이지치 니지카. 대기업에 누구나가 다 아는 음악 레이블의 사원. 아마도 히토리 짱의 매니저.

 "안녕하세요, 갑자기 찾아와서 죄송해요. 스트레이비트 소속 Bocchi의 매니저를 맡고 있는 이지치 니지카라고 합니다."
 "…방 잘못 찾아오신 거 아니에요?"
 "아니요, 이 방 맞아요."

 이지치 씨는 확신에 찬 말투로 그렇게 말한다. 료 씨인가 생각했지만 말할 거였으면 진작에 말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뭔가 계기가 있어서 밖에 새어나간 걸까. 내 뇌리에는 병원이라는 한 단어가 떠올랐다. 히토리 짱의 단 한번의 외출로 매니저가 여기까지 오다니. 역시 완벽한 비밀이란 건 없다.

 "그래서 무슨 용건으로?"
 "이 집에 Bocchi가 있다는 걸 탐정의 조사로 확인해서요. 본인은 있나요?"
 "없어요. 전 혼자 살아요."
 "혼자 사는 것치곤 신발이 많네요."

 이지치 씨의 시선이 아래를 향하고 시선만으로 신발 수를 세었다. 나는 발로 신발을 안 보이게 하고는 헛기침을 했다.

 "어쨌든 저는 혼자 여기 살아요."
 "본인과의 계약도 있어서, 나와 주지 않으면 재판까지 갈 수도 있어요. 당신도 말려들지도 모르는데요?"
 "전 그냥 일반인이에요. 그거랑 무슨 상관이 있는데요?"
 "야마다 료도 여기 왔다고 하던데요."

 그 수엔 안 걸리겠노라 하는 의미를 담아 "그게 누군데요?"라고 모르는 척을 했다. 왔든지 말든지 상관 없다.

 "키타 짱? 무슨 일 있어요?"

 최악의 타이밍에 복도에서 히토리 짱이 나타난다. 내가 뒤돌아보자 히토리 짱 얼굴에서 색이 빠져나가는 게 보였다.

 "히토리 짱, 지금 안 돼……!"
 "봇치 짱, 오랜만이네."

 니지카 짱, 하고 히토리 짱 입에서 그녀의 이름이 흘러나온다. 그 순간 나는 투명인간이 되어서 둘의 시선만이 계속 교차했다.

 테이블을 끼고 우리들은 마주보고 의자에 앉는다. 히토리 짱과 나는 옆으로 나란히, 이지치 씨는 맞은편에. 서로의 눈앞에 놓인 차는 아직 김이 나고 있다.

 "봇치 짱, 이제 돌아가자. 다들 기다리고 있고 새 곡도 만들어야 하잖아."
 "안 돌아가요. 이제 계약은 끝내겠어요."
 "그렇게 간단히 계약 못 끊는다니까. 끊는대도 앞으로 몇 년인가는 힘써 줘야 해."
 "위약금이라면 낼게요."
 "그런 문제가 아니라, 왜 몰라줄까 참……."

 명확한 히토리 짱의 태도에 이지치 씨는 난처해 하고 있다. 이 사람이 히토리 짱의 매니저라면 히토리 짱을 상처입힌 사람 중 하나란 게 된다. 그렇다면 얘기해 보지 않아도 어떤 사람인지는 알 수 있다.

 "곡은 이제 안 만들어요. 기타도 안 쳐요."
 "그렇겐 안 돼. 팬 모두도 봇치 짱의 신곡을 기다리고 있어. 그런 애 같은 고집은 버리고──"
 "고집 아니에요!"
 "……고집 맞잖아, 그건."
 "계약을 끝내는 것 자체는 간단할 거잖아요. 저는 이제 음악은 안 해요. 키타 짱과 살아가기로 결정했어요."
 "불투명하네, 그런 관계를 위해 자기 아이덴티티까지 버리는 거야?"
 "지금 저는 키타 짱의 존재가 아이덴티티예요."

 히토리 짱의 등에서 날개가 찢겨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그 날개를 찢고 있는 건 틀림없이 나 자신이고, 찢겨나간 날개는 내 손 안에서 피와 함께 그로테스크하게 엉망이 되어 있다. 날개를 움직이는 근육도 깃털도 여기 있는데. 이제 히토리 짱은 날 수 없다. 내가 있으니까.

 "만나고 3개월인가 4개월이잖아? 그런 걸로 인생을 정하면 안 되지."
 "……언제나 니지카 짱은 제가 애라는 듯이 구는데, 책임을 밀어붙이고 있는 건 언제나 그쪽이잖아요."
 "사람을 그렇게 마녀처럼 말하고 참. 아무튼 곤란해, 봇치 짱하곤 아직 계약 기간 중이고. 계약 때 낸 돈 만큼은 일해 줘야지."
 "……료 씨도 니지카 짱도, 돈 얘기 뿐이군요."

 그 말을 들을 순간 이지치 씨는 눈을 조금 크게 떴다 곧장 가늘게 떴다. "……그게 사회인이란 거야." 하고 다시 웃는 얼굴을 붙인 그녀의 뺨은 굳어 있다.
 그야말로 실낙원이다. 자유의지를 가진 천사가 지옥에 떨어질 것은 알고 있었는데, 나는 알고도 부추겨 그녀를 천국에서 끌어내려 날개를 꺾었다. 내 욕구를 위해서. 내가 히토리 짱과 같이 있고 싶으니까.
 같이 있겠다고 자신의 피에 물든 히토리 짱이 천사 같은 웃음으로 나를 바라본다. 높이는 날 수 없는데, 이제 모두에게 사랑받지 못하는데.

 "키타 씨는 그걸로 괜찮나요? 봇치 짱이 곡을 만들고 활약해서 더 인기있어지는 거 보고 싶죠?"
 "잠깐, 니지카 짱."
 "에, 아……."
 "봇치 짱은 더 높은 곳에 갈 수 있어요. 그건 돈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명예와 꿈을 건 얘기라고요. 봇치 짱의 파트너인 당신이라면 알아 주시겠죠?"

 네가 있으니까 히토리 짱은 날갯짓할 수 없는 거라고 은연중에 말하고 있는 느낌이 들어서 말문이 막힌다. 조금이라도 현실도피를 하고 싶어서 좌우 귀에서 내 안의 선과 악이 떠들기 시작했다. 히토리 짱을 풀어줘! 저런 녀석 말 듣지 마, 날개를 꺾은 건 너야, 하고. 나는 어떡하면 좋을까. 히토리 짱과 같이 있고 싶다. 하지만 내가 하고 있는 짓도 히토리 짱을 죽이고 있는 것에 차이는 없다. 히토리 짱이 아무것도 못하게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아무것도 못하는 히토리 짱을 좋아한다. 나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히토리 짱을 좋아한다. 기타를 놓은 손으로 나를 사랑해 주는 히토리 짱을 좋아한다. 나만을 봐 주는 히토리 짱을 좋아한다. 내가 없으면 숨을 쉴 수 없다고 발버둥치는 히토리 짱을 좋아한다. 내가 옆에 없는 히토리 짱 같은 건 죽어 버리라지.
 아니, 그건 아니다. 히토리 짱은 행복해졌으면 한다. 나는 그 행복을 도와 주고 싶다. 히토리 짱은 나와 있는 게 행복이니까. 그러니까 둘이 있으면 행복해질 수 있다. 그렇지? 특별한 건 안 해도 돼, 그저 곁에 있으면, 그걸로 히토리 짱은 내 거다. 정말로 그건 좋은 선택인가?

 "저, 저는, 히토리 짱의 선택을, 존중해요."

 도망쳤다. 스스로 뭔가를 결정하는 건 괴로우니까. 실격이다, 내가 원해 놓고 도망치다니 최악이다. 모든 책임을 히토리 짱에게 밀어붙이고, 나는 눈앞의 사람을 더는 나쁘게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나는 히토리 짱 옆에 있을 자격이 있는 걸까. 게다가 날아가지도 못하게 하고 이 방에 가두어 날 위해 살게 하고, 애완동물을 귀여워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귀여워하고 귀여워하고 나만을 보게 하고 숨을 쉬게 하고, 그렇게 생각하니 소름이 끼쳤다. 나는 최악의 사람이다. 하지만 히토리 짱과 같이 있을 수 있다면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다. 정말로 최악인 사람.

 "……봇치 짱, 돌아가자."
 "싫어요, 안 돌아가요. 저는 키타 짱과 살아갈 거예요."
 "료도 쓸쓸해하고 있어."
 "안 쓸쓸해해요. 저한텐 키타 짱이 있으면 됐어요."
 "공의존이라고 하는 거야, 그건."
 "그래도 좋아요."

 옆에서 똑바로 이지치 씨의 눈을 보고 말하는 히토리 짱에게 약함 같은 건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거기에 있는 것은 나를 지키겠다는 각오를 굳힌 강함. 나에겐 없는 것.
 아아, 이제 인정할 수밖에 없다. 히토리 짱은 나보다 훨씬 강하고, 나는 지켜지는 입장이라는 것을. 처음 만났을 때는 그렇게 연약하게 내 방에 숨어 있었는데 이제 히토리 짱은 약하지 않다. 강하게 만든 건 나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히토리 짱은 나와는 다르다.

 "……오늘은 돌아갈게, 평행선인 모양이고. 하지만 히토리 짱을 데려갈 때까지 나는 올 테니까."
 "대답은 변하지 않아요. 저는 레이블을 그만둘 거예요."
 "누가 오래 버티나 보자. 볼 것도 없지만."

 그럼 안녕 하고 이지치 씨는 일어나서 거실을 나가서 복도를 빠져나가 현관에서 신발을 신는다. 다시 우리들을 본 그녀는 영업 스마일을 띄우고 "실례하겠습니다." 하고 방을 나갔다. 그리고 발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자 히토리 짱은 나를 끌어안았다. 무서워라, 하고 귓가에서 속삭이는 그녀를 끌어안고, 나도 하고 말했다.

 "죄송해요, 여기가 왜 들킨 거지. 이럴 생각이 아니었는데."
 "괜찮아, 괜찮아."
 "료 씨한테 니지카 짱은 분명히 절 발견할 거라고 듣고,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옆에 있어."
 "네, 키타 짱이 있으니까, 괜찮겠죠."

 미안해, 히토리 짱. 이런 고생을 시켜서. 내가 있으니까 히토리 짱은 숨어 지내야 한다. 내가 족쇄가 되어 히토리 짱을 가두었으니까.
 이지치 씨가 한 말은 정당하다. 개인의 명예와 꿈, 공의존. 우리들은 서로를 너무 사랑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놓아 줄 수 없고, 놓아 주고 싶다. 사랑이란 성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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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토라(虎) 님

원본 링크: そこはまるで怪獣の腕のなか | https://www.pixiv.net/novel/show.php?id=206409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