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물/번역

[봇치더락SS] 그곳은 마치 괴수의 품 속 - 9

카와즈 2024. 3. 5.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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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쿄 스카이트리 밑, 소라마치 건물 안을 위로 나아가 에스컬레이터를 타면 수족관이 있다. 평일은 사람이 적어서 티켓을 산 다음 바로 안에 들어갈 수 있었다. 키타 짱의 손을 잡으면서 어두운 관내를 나아가 수조 안을 유유히 헤엄치는 작은 물고기들을 바라본다. 투명하게 흔들리는 흰 빛이 키타 짱의 얼굴을 비추어서 그걸 예쁘다고 생각했다.
 금요일 밤에 우리들이 사랑을 나눈 뒤, 키타 짱이 보여 준 스마트폰 속에는 다음날 데이트 플랜이 드글거렸다. 이 집에 살기 전부터 별로 밖에 나가지 않는 나는 그 눈부심에 불탔지만 키타 짱의 부탁을 거절하지도 못하고 여기에 있다. 오피스 캐주얼에 몸을 감싼 평소와는 달리 오늘 키타 짱은 귀엽게 멋을 내서 나는 두근거렸다. 그에 반해 나는 청바지에 까만 티셔츠. 옆에 서도 괜찮은 걸까 생각했지만 잡은 손은 꼭 쥐여 있었다.

 "이 물고기 귀엽다, 구피래."
 "귀엽네요, 특히 꼬리가."
 "응. 나풀나풀하고 화려해서 예쁘다."
 
 헤엄치는 구피 무리 속 빨간 개체를 발견해서 나는 곧장 키타 짱 같다고 생각했다. 예쁘고 귀엽고 애교 있는 키타 짱은, 그래도 구피보다 훨씬 귀엽지만, 그 외모나 동작이 많이 닮았다.

 "이 구피 키타 짱 닮았네요. 예쁘고 반짝거리고."
 "어, 아, 그, 그래?"
 "네. 그래도 키타 짱은 못 이기지만요."

 키타 짱은 내가 그렇게 말하자 고개를 숙여 버렸다. 키타 짱? 하고 말을 걸어도 반응은 없다. 그 대신 손을 세게 잡고 떨고 있다.

 "히토리 짱에겐 내가 이렇게 보이는구나."
 "뭐어, 조금은. 키타 짱은 더 귀엽지만요."
 "그런 걸 태연하게 말한다니까……."
 "아, 안 됐나요?"
 "……으응. 기뻐. 다음으로 가자."

 키타 짱이 손을 끌어서 나도 옆을 걷는다. 다음에 멈춰선 곳은 해파리 수조. 그도 그럴 것이 이 수족관은 해파리가 많이 전시되고 있고 사육에도 힘을 쏟고 있는 듯했다.
 흔들리듯이 헤엄치는 해파리. 그러고 보면 어제 조사한 것 중에 해파리를 보면 스트레스가 줄어든다는 게 있었지. 키타 짱의 스트레스가 줄어들도록 계속 바라보고 있으니 옆에서 "그렇게 해파리가 마음에 들었어?"하고 키타 짱이 키득키득 웃었다.

 "해파리, 키타 짱은 좋아해요?"
 "그냥저냥. 하지만 독이 있다고도 하고 조금 무서울지도."
 "이 탱글탱글한 거라든가 어때요?"
 "보름달물해파리? 자주 영화 같은 데 나오지. 이 정도라면 안 무서울지도."

 그렇게 말하고 둘이서 잠시 해파리를 바라본다. 흔들흔들 헤엄치는 모습은 조금 동경한다. 조급해지는 도쿄에서 해파리들만이 진정한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어두운 관내를 나아가 커다란 수조가 보이기 시작했다. 안에는 상어가 있거나 혹돔이 있거나 했다. 어슴푸레한 물 속을 헤엄치는 물고기들은 모두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헤엄치고 있다. 그래도 이 물고기들은 죽을 때까지 이 수조에서 나갈 일은 없겠지 생각하니 친근감이 일었다. 내 경우엔 스스로 갇혀 있지만 바깥 세계보다 훨씬 마음이 편하다. 키타 짱은 따뜻하고 제대로 따스함이 있다. 이 물고기들은 자신들이 갇혀 있다는 걸 알고 있을까.

 "상어 멋있네요."
 "응. 히토리 짱 같아."
 "저는 우무문어 같은 거랑 더 닮았어요. 약하고."
 "그것도 귀엽네."
 "키타 짱은 역시 구피일지도."
 "먹으면 안 돼?"
 "키타 짱을 위해서라면 상어가 돼서 지킬 거예요."

 키타 짱은 수조 깊은 곳, 굴절로 일그러진 상어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 대신 손을 꼭 잡혔다.
 더 안쪽으로 나아가자 펭귄의 대수조가 나타난다. 최애 펭귄이란 걸 찾는 사람도 있을 정도로 펭귄은 인기라는 듯했다. 다리를 건너 수조를 위에서 내려다보고 둘이서 작은 조류들을 바라본다. 털은 젖어 있었지만 눈이 똘망똘망해서 귀여웠다.

 "귀여워라, 눈이 똥그래."
 "귀엽네요. 엄청 많아요."
 "펭귄이란 건 이렇게 작은 거구나, 좀 더 클 줄 알았어."
 "들어 보면 크지 않을까요?"
 "멀리서 봐서 그런가?"

 손을 잡은 키타 짱이 넘어지지 않도록 천천히 다리에서 내려온다. 아크릴을 사이에 둔 펭귄은 그래도 작아서 여전히 귀여웠다.
 파닥파닥 헤엄치거나 바위에 오르거나, 먹이를 조르거나 울거나. 아마 사람 아이와 행동은 그리 다르지 않다. 키타 짱의 아이를 상상했다. 붉은 머리에 눈매가 또렷하고 애교 있는 그야말로 귀여운 아이. 나하고는 이만큼도 안 닮았겠지 생각하니 가슴이 아파졌다. 키타 짱의 아이라면 한없이 사랑해 버릴 것 같다.

 "히토리 짱 펭귄 좋아하는구나."
 "네?"
 "그치만 계속 보니까. 좋아하는 건가 하고."

 계속 보고 있던 건 펭귄을 통해 보는 키타 짱 아이야, 라고 하면 분명 싫어하겠지.

 "……네, 좋아해요. 귀엽고 저보다 애교가 있잖아요."
 "난 히토리 짱의 그런 부분 좋아해."
 "키타 짱이 좋아한다고 말해 준다면 괜찮으려나."

 두꺼운 아크릴판 앞에서 서로 웃고는 금붕어 코너로 나아갔다. 동그란 수조를 헤엄치는 금붕어들은 가지각색으로 다양한 모양과 색이 있었다. 뺨이 부풀어오른 것, 홀쭉한 것, 큰 것, 작은 것. 한마디로 금붕어라고 하기엔 종류가 너무 많아서 처음부터 끝까지 키타 짱과 천천히 둘러봤다. LED에 반짝이는 비늘을 쫓아 꼬리가 좌로 우로 움직이며 구불거린다. 키타 짱은 예쁘다며 한동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집에서 키울까요? 제가 돌볼게요."
 "……으응, 여기보다 좁은 곳은 좀 마음이 아파."

 그렇게 말하고 상처받은 얼굴을 하고 있는 건 금붕어가 아닌 무언가를 떠올리는 듯해서 나도 가슴이 아파진다. 키타 짱 곁에 있다고 몇천 몇만 번 말하더라도 분명 키타 짱에겐 닿지 않는다. 그런 건 계속 같이 있으면서 이미 알고 있었다.
 키타 짱은 너무 상냥하다. 그러니 항상 걱정된다. 자신의 상냥함에 짓눌리지 않을까, 항상.

 "키타 짱이 구피라도 금붕어라도, 역시 저는 상어가 될래요."
 "상냥한 상냥한 히토리 짱 상어는 물고기를 못 잡아먹어서 아사할 것 같아."
 "그래도 좋아요. 지켜 줄 거예요."
 "그럼 나도 고래상어가 되고 싶어."
 "그럼 저는 백상아리가 될래요."
 "먹어버린다!"

 에잇 하고 내 어깨를 찌르곤 키타 짱은 후후 웃는다. 나는 진심인데 생각하면서 웃고는 둘이서 작은 금붕어 두 마리를 바라보았다. 수조 속 세상에 둘뿐이라면 분명 행복하겠지. 구피라도 금붕어라도 뭐라도, 키타 짱과 함께라면 어디라도 갈 수 있다.
 그걸 위해서 아사 정도는 간단한 일이다.

 "하지만 이렇게 수조 속에서 유유히 헤엄치는 건 부럽네. 세금도 장래 걱정도 안 해도 되고."
 "그게 문제인 거군요……."
 "당연하지. 정말 부럽다니까."

 두 마리의 금붕어는 서로를 따라가며 헤엄치고 있다. 작고 작은 세계에서 둘이서 살아가고 있었다.

 수족관을 나와서 전철을 갈아타고 영화관에 도착한다. 보고 싶은 영화가 있다고 했는데, 영화관 같은 건 어렸을 때 이후로 처음이었다. 티켓 사는 법도 잘 모르는 채 키타 짱이 사 주었고 10분 후에 상영되는 영화를 위해 팝콘과 음료수를 샀다. 캐러멜과 소금맛이 반반인 큰 통에 든 걸. 내가 아니라 키타 짱이 고른 커다란 그걸 끌어안고 "어렸을 때부터 꿈이었거든."이라고 말하는 그녀는 어린애 같은 웃음을 띄워서 나도 기뻐졌다.
 관내는 어두워서 넘어지지 않도록 걸으면서 한가운데보다 조금 윗자리에 앉았다. 키타 짱은 커다란 종이통을 끌어안고 와작와작 상영전에 먹고 있다. 나도 양 줄이기 요원으로서 분투하자 아직 시작하기 전인데 꽤 양이 줄고 말았다.

 "너무 많이 먹었네."
 "나머지는 키타 짱이 드세요."
 "으응, 이렇게는 못 먹는걸."

 통을 내게 기울여 주면서 둘이 우걱우걱 먹고 있으려니 상영이 시작되었다. 남녀가 만나 사랑에 빠져 동거까지 하게 되지만 두 사람의 마음이 멀어져 버리는 이야기. 실은 나는 내용을 미리 조사해 뒀었다. 키타 짱 앞에서 엉엉 우는 건 보이기 싫고 어느정도 사전정보가 있는 편이 안심할 수 있으니까. 게다가 이 영화에는 내가 좋아하는 밴드 곡이 많이 쓰여서 기대하고 있었다.
 사람 마음의 기민함이란 어떡하면 알 수 있는 걸까 계속 생각하고 있다. 키타 짱에 대한 건 전부 알고 싶다.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아까 일을 예로 들자면 왜 나를 상어로 비유했을까라거나. 키타 짱에 대한 건 남김없이 알고 싶은데 우리들은 다른 사람이니까 알 수가 없다. 우리들은 금붕어다. 인간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주제에 각자는 전혀 다르다. 크기도 피부색도 얼굴도 발 크기조차도.
 어쩌면 모든 걸 알게 되더라도 불안을 전부 끌어안아 주지는 못할지도 모른다. 내 슬픔이 나만의 것인 것처럼, 그걸 안다고 해서 나는 아무것도 못할지도 모른다. 부상을 입고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포기해 버린 영화 속 남자처럼. 부상의 아픔을 안다 해도 마음의 상처는 고칠 수 없다.
 료 씨는 내게 더 욕심을 부려 보라고 했다. 원하는 걸 전부 손에 넣으라는 뜻일지도 모른다. 키타 짱도 음악도 기타도 전부. 하지만 나는 모든 걸 손에 넣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좋아함을 분산시키면 하나하나에 품는 애정이 작아져 버린다. 키타 짱은 내 가장 큰 애정을 받아 줬으면 한다. 무겁다고 무릎을 꿇을 정도를 안겨 주고 나는 옆에 앉고 싶다.
 영화 속, 두 사람의 마음이 멀어져 버렸다. 그래도 이야기는 이어진다. 남자는 여자를 잊지 못하는 것 같았다. 받은 바레트로 머리를 고정해서 여자를 몸의 일부로 만들었다. 여자는 어떤가 하면 가끔 떠올리는 정도로 매일을 살고 있었다. 행복했던 둘은 점점 서로의 싫었던 부분을 잊어버리고 좋아했던 부분만을 추억으로 남겨 간다. 소중한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만이 인생에 새겨져 지금은 과거가 되어 간다. 옆에서 코를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손수건으로 눈가를 누르는 키타 짱은 눈에서 커다란 눈물방울을 흘리며 울고 있었다. 스크린에서 반사된 빛이 키타 짱을 비춰서, 우는 얼굴마저도 예쁘네. 키타 짱의 팝콘 통을 빼서 오른손으로 들고는 키타 짱의 오른손에 내 왼손을 겹쳤다. 우리들 한가운데, 팔걸이 위에서 우리들은 이어졌다. 눈물을 흘리는 키타 짱은 나를 보고 입술을 떨면서 더 울고 말았다. 떠받치고 있는 팝콘 양은 앞으로 세 줌 정도. 아마도 이제 먹지 못할 키타 짱을 위해 내가 나머지를 위에 집어넣었다.
 영화관을 나오자 키타 짱의 귀여운 눈은 눈물로 빨갛게 부어 있었다. 그런 얼굴도 좋아서 계속 잡고 있던 내 손은 뜨거워진다. 울보란 말이지, 그것도 좋아하지만.
 
 "헤어져 버렸네."
 "네. 하지만 행복한 사랑이었다고 생각해요."
 "전부 과거가 될 거야."
 "그건 모르지만요."
 "그래도 좋은 영화였어. 정말 좋은 영화였어."

 몇 번이고 끄덕이곤 또 왈칵 눈물짓는 키타 짱에게 쓴웃음을 짓고 우리들은 목적도 없이 걷는다. 키타 짱은 내 손을 잡은 채 걸으며 겨울 바람에 눈꺼풀을 식히고 있었다.
 키타 짱은 그 영화가 그런 결말이란 걸 알고 있었을까. 모르고 본 걸까. 그렇다면 타이밍이 나쁘네. 우리들은 이제부터인데. 그 영화가 키타 짱의 부담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별은 평등하게 찾아오지만 지금은 아직 그 때가 아니다. 한참 한참 나중 얘기다.
 걷고 있으니 악기점이 눈에 들어왔다. 이건 큰일이다 싶어서 모르는 척 지나치려고 한다. 하지만 키타 짱의 걸음이 딱 가게 앞에서 멈추어서 간판을 올려다보았다. 키타 짱? 하고 말을 걸자 빤히 쳐다보다 나를 데리고 가게 안으로 들어간다.

 "키타 짱, 여기 악기점이에요……!"
 "그래. 한 번 들어와 보고 싶었어, 히토리 짱하고."
 "저, 저랑……!?"

 키타 짱은 그렇게 말하고 쑥쑥 안쪽으로 나아가 계단을 오른다. 당황하면서 키타 짱을 따라가자 오랜만에 보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시야 한가득 기타 기타 기타. 어쿠스틱도 일렉도 베이스도 전부 갖춰져 있다. 악기점이라면 당연한 광경이지만 묘하게 마음이 들떴다.
 하지만 옆의 사랑하는 사람은 분명 싫어할 광경. 슬쩍 옆얼굴을 훔쳐 보아도 아무런 감정도 얻을 수 없었다.

 "히토리 짱, 어떤 기타를 좋아해?"
 "에, 기, 기타요? 무, 무리하지 않아도."
 "괜찮아, 듣고 싶어서."

 그런 말을 듣고 우리들은 일렉 기타 앞에 섰다. 검은 레스폴. 내가 가진 기타의 신품. 그건 아빠 거니까 제법 손때가 탔지만 그래도 아직 한참 현역이었다.
 
 "히토리 짱 기타?"
 "의 새거예요. 제 건 꽤 오래 된 거라. 아빠 걸 물려받았거든요."
 "그렇구나, 히토리 짱 물건 깨끗하게 쓰는구나."
 "소중한 거라서요."

 무슨 설명을 하면 좋을까 생각하다 성능이나 메이커보다도 나와 걸어온 역사를 알아줬으면 싶어졌다. 내가 Bocchi가 되기 전, 기타 히어로 시절의 얘기를.

 "곡을 만들기 전에는 기타 히어로라는 이름으로 기타 커버를 사이트에 올렸었어요. 그럭저럭 팬이 생기고 코멘트도 달리고, 재생수도 올라가는 게 즐거웠어요."
 "히어로. 히토리 짱 답네."
 "그런가요? 매니저나 료 씨는 촌스럽다고 매번 그랬는데요."

 기타 옆에는 베이스가 있었서 여러 종류를 바라보았다. 키타 짱은 가만히 검은 6현 베이스를 바라보더니 신음했다.

 "전혀 차이를 모르겠어……. 내가 기타를 한다면 실수로 이걸 살 것 같아."
 "그럴리가요, 꽤 다른걸요. 봐요, 현도 굵고 픽업도 전혀 다르잖아요."
 "그래? 으음, 이것저것 있는 거구나."

 언짢은 얼굴을 하는 키타 짱을 보고 낭비가인 아티스트를 떠올렸다. 사실은 마이너한 곡을 좋아하는 주제에 팝만 만드는 사람. 시모키타자와의 팝스타라니, 가끔 떠올리고는 웃기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료 씨는 키타 짱도 만난 적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그 사람 원래는 베이시스트였어요."
 "그렇구나, 하지만 이전에 조사해 봤는데 요즘은 그다지 안 치는 것 같던걸."
 "네. 베이시스트는 돈을 못 번다고 요즘은 팝만 만들고 있어요. 번 돈으로 새 베이스를 사서 장식만 해 두고, 그 사람도 사실은 베이스를 치고 싶을 텐데."

 어려운 문제라고 늘 생각한다. 진심으로 음악을 좋아하는 료 씨는 언제나 자신의 음악으로부터 도망치고 있으니까. 그런데 자기가 좋아하는 건 놓지 못하고 보물상자에 조심히 넣어 두고 있다. 가끔 뚜껑을 열고는 틈새에서 새어나오는 빛을 쬐고, 그래도 그 무표정을 관철한다.
 어쿠스틱 기타 코너에 가자 이전에 샀다가 지금은 옷장에 들어간 기타가 매달려 있었다. 나뭇결이 아름다운 가격도 높은 편인 기타. 울림이 좋은 무척 좋은 기타.

 "……히토리 짱이 샀던 건 저 기타야?"
 "잘 알아보셨네요. 맞아요."

 올려다본 기타는 내 손이 닿는 위치에는 없다. 닿더라도 만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시간을 들여서 익혔다곤 해도 이만큼 공백이 있으면 왼손은 현을 정확히 누를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게다가 지금은 기타보다 소중한 게 있다. 그러니까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버려야만 한다. 원래 꿈은 이루어졌다. 나는 인세로 남은 생애동안 생활에 불편할 일은 없다. 키타 짱에게 집중해서 뭐가 나쁜가.

 "나도 기회가 있으면 기타 쳐 보고 싶었어."
 "키타 짱은 노력가니까 금방 칠 수 있을 거예요. 저보다 잘 치게 될지도."
 "그건 아닐걸. 칠 이유가 없는걸."

 키타 짱은 하늘색 레스폴에 발을 멈췄다. 더블 컷어웨이인 드문 형태의 기타. 눈동자를 흔들흔들 흔들면서 그 기타를 올려다보고 눈을 가늘게 뜬다.

 "히토리 짱은 기타 좋아해?"

 좋아해요. 하지만 키타 짱을 더 좋아해요.

 "……아니요, 싫어해요."

 기타를 올려다보는 키타 짱의 눈을 바라보며 나는 딱 잘라 그렇게 말했다. 맞잡은 손은 꼭 연결되어 키타 짱의 체온이 전해진다. 하지만 자주 차가워지는 손가락 끝은 차가운 느낌이 들었다.
 
 돌아가는 길에 들른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우리들은 식사를 한다. 나는 스테이크, 키타 짱은 미트소스 파스타. 밥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나는 옆에 있는 창으로 큰길의 차들을 바라본다. 고급차에 경차에 밴. 여긴 도쿄. 각양각색인 사람들이 살고 빌딩이 꽉 들어찬 도시. 그리고 나와 키타 짱이 만난 도시.

 "오늘은 즐거웠어?"
 "네, 무척이요. 어디든 평소에 혼자였으면 절대로 안 가는 곳들이어서 재밌었어요."
 "그래. 나도 재밌었어."

 그렇게 말하는 것치곤 어딘가 쓸쓸해 보이는 건 아마 오늘이란 하루가 끝나 버려서일까. 그렇다면 나도 쓸쓸하다. 하지만 오늘이란 하루는 끝나더라도 또 내일이 있다. 그러니 쓸쓸하지 않다.

 "펭귄 귀여웠죠, 금붕어도."
 "응. 영화도 좋았어."
 "마지막에 헤어져 버렸지만요."
 "그러게, 헤어져 버렸지."

 안 헤어졌으면 좋았을 텐데, 같은 말을 만들어진 이야기 속에서 해도 어쩔 도리가 없다. 둘은 헤어지고, 그래도 세계는 계속 돈다. 아무리 울고불고 떠들어도 우리들의 시간은 멈추지 않고 계속 흐르고, 언젠가 진짜 이별이 찾아온다.
 
 "그 두 사람이 헤어지지 않았다면 행복해졌을까?"
 "글쎄요. 하지만 그런 세계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만남과 이별 같은 건 최악이지."

 키타 짱은 그렇게 말하곤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나도 그것을 따른다. 가늘어진 눈 속의 키타 짱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키타 짱은 그 두 사람이 이어지는 걸 바랐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 정해진 결말을 깨부수고 둘이 행복해지길, 그렇게 생각할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악기점에 기타 잔뜩 있었지. 히토리 짱의 기타도 봐서 좋았어."
 "기타는, 뭐어, 네."
 "심오하구나, 나는 접한 적이 없었지만."

 키타 짱의 눈은 평소보다도 가늘게, 깊어져 있다. 말을 되돌려 주려던 때 주문한 게 도착했다. 나에겐 스테이크, 키타 짱에겐 파스타. 그러고 보면 옛날 니지카 짱과 료 씨와 나 셋이서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은 적이 있었다. 그 때도 내가 스테이크에 둘은 파스타였다. 분명 막 Bocchi가 되었을 시절. 가장 즐거웠던 시기.
 스테이크에 포크를 찔러 나이프로 한 입 크기로 자른다. 포크를 위로 향해 스테이크를 입에 넣고는 잘 씹어 삼켰다. 쇠고기 맛을 음미하며, 팔렸어도 결국 돈을 물 쓰듯 쓰는 일은 없었군 하고 자신의 음악인생을 되돌아본다. 밥도 옷도 결국 평소와 바뀌지 않았다. 평소대로이기를 내가 바랐으니까.

 "맛있다."
 "네, 정말로요."

 키타 짱은 전혀 그런 건 생각지 않고 있는 듯한 얼굴로 내게 말한다. 대화는 없고 내 포크는 철판과 입을 몇 번이고 왕복했다.
 식사가 끝나자 우리들은 자리를 뜨지 않고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키타 짱은 컵을 테이블 가장자리에 두고 계속 뭔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고민이 있는 건가 하고 나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으니, 갑자기 테이블에 놓여 있던 키타 짱의 스마트폰이 짧게 울렸다. 화면을 본 키타 짱은 눈쌀을 찌푸리고 나를 봤다.

 "……나 있잖아, 히토리 짱의 상냥하고 노력가고 올곧은 부분을 좋아해."

 키타 짱은 내게 맥락도 없이 그렇게 말했다. 갑자기 무슨 일일까 싶었지만 나도 말을 돌려준다.

 "고, 고맙습니다. 저도 키타 짱을 정말 좋아해요."
 "고마워. 그런데 있지, 또 하나 있어. 히토리 짱의 좋아하는 부분."

 테이블에 올려진 그녀의 오른손이 떨리고 그것을 억누르듯이 왼손이 겹쳐졌다.

 "히토리 짱의 기타를 좋아해. 목소리도, 노래도. 난 히토리 짱하고, Bocchi도 좋아해."

 키타 짱의 말에 나는 눈을 크게 뜬다. 그 때 키타 짱이 했던 말과 정반대였으니까.

 "그, 그건, 무슨……."
 "나 있지, 정말로, 정말로 히토리 짱을 좋아해. 날 위해 노력해 주는 히토리 짱도, 내 곁에 있어 주는 히토리 짱도, 날 위해 기타를 참아 주는 히토리 짱도, 전부 좋아해, 정말 좋아해."
 "그러면……!"
 "하지만 있지, 히토리 짱. 나 사랑하게 돼 버렸거든. 어쩔 줄 모를 만큼 히토리 짱을 사랑하게 돼 버렸어. 그러니까 히토리 짱이 빛나는 모습도 보고 싶어."

 키타 짱은 고개를 숙이지도 않고 창을 바라보더니 뺨에 눈물이 흘렀다. 닦아내지도 않는 물방울은 톡톡 테이블에 떨어져 스며들어 평평해졌다.

 "히토리 짱이 왼손을 잘라내려고 했을 때 나 깨달아 버렸어. 으응, 사실은 훨씬 전부터 알고 있었어. 히토리 짱을 독점할 수는 없다고. 내가 용서할 수 없었어. 히토리 짱은 내 곁에 있을 각오를 해 줬는데."
 "아니야, 아니야 키타 짱. 나는 키타 짱하고 계속 같이 있고 싶어서──"
 "같이는 이제 있을 수 없어."

 키타 짱이 나를 본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마, 나를 두고 가지 마, 버리지 마. 계속 곁에 있어 달라고, 기타를 버리고 날 봐 달라고, 키타 짱이 그랬잖아. 그러니까 나는 그대로 했는데 자기 쪽에서 내던지다니, 너무해.

 "싫어, 싫어. 나는 반드시 키타 짱이랑 같이 있을 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안 떨어져, 그야 Bocchi는 키타 짱을 만났을 때 죽었으니까."
 "미니 기타를 치던 히토리 짱이 진짜 히토리 짱인 거잖아?"

 나는 말문이 막혀 버렸다. 버려도 버리지 못했던 것, 키타 짱을 만나고 또 치고 싶다고 생각해 버린 마음. 하지만 모순된 그것은 역시 내 본심이라 그 때 나는──

 "기타를 좋아한다고, 치고 싶다고, 생각했잖아."

 시야가 번져서 멋대로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멈추고 싶어도 멈춰 주지 않아서 나는 톡톡 테이블에 흘리고 만다. 울고 싶은 게 아니다, 나는 말로 키타 짱에게 전하고 싶은데, 튀어나오는 말은 전부 싸구려고 신빙성이 없었다.

 "싫어, 헤어지기 싫어, 키타 짱, 계속 옆에 있어 줘."
 "미안해, 히토리 짱을 좋아해, 사랑하니까, 나는 히토리 짱이 기타 치는 모습이, 보고 싶어."
 "키타 짱이 없으면, 못 쳐. 나 못 빛나."
 "사랑해, 사랑하니까, 같이 있으면 안 되는 거야."
 "키타 짱, 키타 짱……."
 "미안해, 사랑해, 히토리 짱."

 키타 짱은 괴로운 듯이, 하지만 기쁜 듯이 눈물을 흘린다. 나는 숨을 쉴 수 없어서, 괴로워서, 딸꾹질을 하면서 운다. 키타 짱은 눈물을 닦는다. 하지만 나는 닦지 않는다. 이 슬픔으로부터 나는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 같지 않았으니까.
 키타 짱이 멀어져 버린다. 내가 고토 히토리라서. 기타 같은 건 이제 버렸는데 키타 짱은 기타를 치는 나도 사랑해 버렸으니까. 그런 게 어딨어. 내 기타에 그럴 가치는 없는데.

 "살아갈 수 없어, 옆에 있어줘, 부탁이야."
 "미안해."
 "싫어, 키타 짱, 사랑해, 나도 사랑해."
 "미안해."
 "사과하지 마, 응? 키타 짱."
 "미안해."

 키타 짱은 계속 사과한다. 언젠가처럼. 하지만 그 얼굴에 고민이나 걱정은 이제 없었다. 아아, 각오를 굳혔구나. 기타를 버린 나처럼, 키타 짱도 나를 버릴 각오를 굳혀 버렸다. 그러면 키타 짱은 더는 나를 주워 주지 않는다. 버린 채 방치되어, 나와 키타 짱은 다른 길을 걷게 된다.
 키타 짱은 눈물을 손수건으로 닦으면서 스마트폰을 보고 코를 훌쩍였다. "이제 곧 이지치 씨가 여기 올 거니까. 나 이만 가 볼게." 하고 키타 짱은 돈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키타 짱, 하고 나는 불러세운다. 등을 돌린 채 멈춰선 키타 짱의 표정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짐도 기타도 정리해서 이지치 씨에게 전해뒀어. 그리고 열쇠도 오늘 나가 있는 동안에 바꿨어."
 "기다려, 키타 짱."
 "언제든 보고 있을 테니까. 히토리 짱을."
 "그런 거 의미 없어."
 "히토리 짱의 기타 들려 줘야 해?"

 잘 있으라고 말하며 키타 짱은 걸어가 버린다. 나는 절망에 일어서지 못하고 그저 고개숙여 울었다. 눈꺼풀 뒤엔 키타 짱의 웃음이 있는데 이제 여기엔 없다. 나는 혼자다.
 기타를 버리면 계속 같이 있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키타 짱만을 보고 키타 짱만을 위해 살아가겠다, 그 때 그렇게 결심한 건 키타 짱을 몰아붙여 버린 걸까. 키타 짱은 상냥하니까 죄책감에 짓눌려 버린 걸까.
 사랑한다고 키타 짱은 말해 주었다. 사랑하니까 기타를 치는 나도 좋아하게 돼 버렸다고. 나를 묶어둘 수 없다고. 그래도 나는 키타 짱이 없으면 기타조차 칠 수 없는데, 그 이전에 숨도 잘 쉴 수 없는데.
 키타 짱은 제멋대로다, 뭐든지 전부 혼자서 정하고 나를 두고 가 버렸다. 앞으로 나는 어떡하면 좋은가. 내 마음은 그 방에 놔두고 왔는데. 이런 마음으로 기타 같은 건 못 치는데.
 내가 버린 기타를 좋아하면 어떡해. 형편 좋은 사실만을 끌어안고 웃어 줘. 키타 짱 옆에 나를 두고 죽을 때까지 곁에 있어 줘.

 "나도 사랑해, 키타 짱."

 말은 닿지 않는다. 이제 거기에 너는 없다.



 오랜만에 돌아간 내 방은 먼지가 많았지만 창문을 열 기분도 들지 않았다. 그저 침대에 누워 불도 켜지 않고 천장을 바라본다. 기타는 벽에 세워진 채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게 되어 버렸다. 그런 주제에 키타 짱은 기타를 치는 나도 사랑하게 돼 버렸으니 죽을 수도 없다. 아예 죽어서 복수해 줄까도 생각했지만 키타 짱과 같은 세계에 있지 못하는 것도 싫어서 그만뒀다. 나는 기타도 치지 않고 키타 짱을 만나지도 못하고 살아갈 거라 생각한다. 이것과 죽음이 뭐가 다른 걸까.
 마음은 움직이지 않아도 배는 고파진다. 과충전된 스마트폰 속 배달앱을 켜자 내려가 있던 회원 랭크는 다시 올랐다. 참 편리한 세상이 됐다. 언젠가 감정까지도 편리해져 버리면 좋을 텐데.
 레이블에 돌아갔다고 해도 내가 곡을 만들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처음엔 시끄럽게 떠들던 니지카 짱도 내가 마음이 망가졌다는 걸 알자마자 폭탄 취급하듯이 집에 안 오게 됐다. 그걸로 됐다. 집이 조용해져서 허무에 잠긴다. 돈만은 있거든, 쓸데없이. 전액을 어딘가에 기부해서 무일푼이 되어 볼까 생각해 봐도 다음 달에는 또 대량의 돈이 쏟아져 들어오니까 의미가 없다. 남들이 보기엔 부러울 일이 지금 내겐 그저 성가셨다.
 내가 Bocchi가 아니라 평범한 외톨이였다면, 키타 짱과도 평범하게 지낼 수 있었을까. 같이 언제까지고.
 있지도 않을 만약이 떠올라서 코를 훌쩍이자 초인종이 울렸다. 배달음식을 받아들고 나는 방에서 우물우물 맛있지도 않은 밥을 먹었다. 키타 짱과 같이 있었던 시절 밥은 그렇게 맛있었는데.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청소도 빨래도 요리도 전부 키타 짱이 없으면 하지 못한다. 나 자신은 아무런 가치도 없는 인간이니까. 키타 짱이 내게 살아갈 의미를 줬으니까.
 지금 나는 그저 무가치하다. 살아있는 의미가 전혀 없다.
 그런 주제에 눈물만은 나오니까 짜증이 난다. 마르고 마르고 말라서 아예 내 존재 자체가 사라져 없어지면 좋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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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토라(虎) 님

원본 링크: そこはまるで怪獣の腕のなか | https://www.pixiv.net/novel/show.php?id=206409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