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물/번역

[봇치더락SS] 그곳은 마치 괴수의 품 속 - 10

카와즈 2024. 3. 5.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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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엎어져 있는 금색이 놓아 둔, 테이블에서 떨어질 정도인 술 캔을 쓰레기봉투에 던져 넣어 까랑까랑 소리를 낸다. 마지막 하나를 버리려고 했을 때 손목을 붙잡고는 "그건 아직 마시는 중이야."하고 노려보았다. 예이예이 하고 캔에서 손을 떼고 일단 깨끗해진 테이블 위에 물과 내가 마실 차를 두었다.
 
 "또 봇치 때문에?"
 "……그런데."

 새빨개진 얼굴을 조금 들고 으음 신음한다. 이쿠요와의 이별로부터 다시 일어서지 못한 봇치는 계속 방에서 썩고 있었다. 조만간 정말로 썩어 버릴지도 모른다.

 "뭐 나도 그렇게 세게는 못 말하지만."
 "시끄러……."
 "새 술 가져올까?"
 "됐어……."

 술이 센 니지카는 많은 양을 마시지 않으면 취하지 못하니까 가성비가 나쁘다. 반대로 나는 한 캔으로도 취해 버려서 부럽기도 하다.
 나도 봇치한테서 이쿠요를 벗겨내면 이렇게 될 걸 어렴풋이 눈치채곤 있었는데 질투하다 못해 꼴 좋다고 생각하는 자신에게 한기가 들었다.
 
 "키타 씨가 있지, 봇치 짱을 자유롭게 해 주고 싶대서. 그래서 그걸 도와 줬어. 나가 있는 동안에 물건이나 기타 가지고 나가거나 집 열쇠 바꾸거나. 하지만 봇치 짱이 저래선 의미가 없어."
 "마주보기 전에 벗겨내 버리면 그야 그렇지."

 니지카는 평소의 2분의 1이 된 눈을 내게 향하고 부루퉁해져서 말했다.

 "그치만, 그치만……."

 뭘 모르네, 몰라도 너무 몰라 니지카는. 봇치를 닮은 사람이 눈앞에 있는데 모른단 말이야? 곡을 만들 수 있는 환경에 있어도 곡을 만들 이유가 없으면 멜로디조차 떠오르지 않는데.

 "바보."
 "어, 뭐?"
 "니지카 바보, 해삼멍게말미잘, 대머리."
 "대머리는 아니거든!"
 "아무것도 모른다니까, 내가 옆에 있는데."

 나는 니지카 옆에 앉고는 캔 속에 남아 있던 술을 다 마셨다. 아앗! 하는 니지카 목소리가 들리고 텅 빈 캔을 비닐봉지에 던져넣고는 천장을 올려다본다.

 "요즘은 니지카를 계속 봇치한테 뺏긴 느낌이 들어서 싫었어."
 "내, 내가? 그럴 리가 없잖아."
 "그럴 리가 있지. 니지카는 계속 봇치 짱 봇치 짱 뭘 하고 있어도 그러고. 그러니까 삐져 있었어."
 "미, 미안해."
 "나는 참을성이 많으니까 용서해 줄게. 어쩔 수 없으니까."

 니지카는 미안해 보이는 표정을 새빨간 뺨 속에 띄우고 있었다. 손을 뻗어 머리를 쓰다듬자 니지카는 눈물을 띄운다.

 "나 의욕은 있는 주제에 못하는 게 많으니까 모두한테 폐 끼치고."
 "확실히 그렇지."
 "부정해 줘……."
 "부정 못해."
 "위로도 못하면서……."
 "그렇지, 하지만 나도 봇치 마음은 잘 알아."

 부러웠다, 모든 것을 손에 넣을 수 있는 봇치가. 동시에 질투했다, 그러면서 모든 것을 손에 넣으려 하지 않는 봇치를.
 나는 자신의 음악을 포기하고 니지카와 함께 있다. 하지만 니지카가 함께 있지 않는다면 음악을 하는 의미가 없다. 싫어하는 팝은 니지카를 위해 쓰고 있다. 그러니 니지카가 좋아할 것 같은 멜로디와 가사를 써서 모든 게 금색. 내 음악을 관철한다 하더라도 분명 니지카는 나를 쳐다봐 주지도 않을 테니까.

 "내가 음악을 하는 이유는 니지카야."
 "뭐?"
 "니지카가 나를 봐 주니까 음악을 하는 거야. 니지카만을 위해서."
 "에, 그게 무슨 말이야."
 "말 그대로야. 니지카가 없었으면 나는 음악 안 했어. 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처럼 팔리진 않았을 거야."

 니지카는 매달리는 듯한 눈으로 나를 본다. 테이블에서 얼굴을 완전히 든 니지카는 당황하고 있었다.

 "팝 같은 건 싫어. 대중에 먹히든 말든 아무래도 좋아. 대중에게 먹혀도 니지카에게 칭찬받지 못하면 의미가 없어."
 "그, 그런, 료는 대단한 아티스트야, 자신 가져."
 "자신의 문제가 아니야. 이유의 문제."

 봇치도 나도 사는 게 미숙하다. 자신을 위해 살면 되는데 다른 사람에게 목숨을 맡겨 두고 있다. 더 자유롭게 살면 좋을 텐데 고삐를 남이 쥐게 하고 있으니까 이미 늦은 걸 거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니지카다. 그런데 본인은 그걸 모른다. 그게 분해서, 아니꼬와서 지금까지 말 안하고 있었는데.

 "무서웠어, 지금까지. 니지카는 귀엽고 밝고 상냥하니까 누군가한테 뺏기는 게 아닌가 하고. 그래서 말 안했어."
 "나, 나, 제대로 료 좋아해."
 "응. 고마워."
 "료의 음악도 좋아해……."

 내 음악은 니지카 모양이다. 니지카를 위해 전부 만들고 니지카가 싫어하는 건 무엇 하나 넣지 않은, 니지카 전용 음악. 그래도 니지카도 봇치 음악을 좋아한다. 화가 나지만 봇치가 만드는 음악은 역시 대단해서 나는 인정해 버린다.

 "봇치도 똑같아. 곡을 만드는 이유가 이쿠요라면 이쿠요가 없으면 못 만들어. 기타 같은 건 잡동사니고 멜로디도 안 떠올라."
 "그, 그럼 키타 씨랑 같이 있으면."
 "이제 옆에 없잖아."

 니지카는 뭔가 말하려고 연 입을 다물고는 내 품에 다가와 끌어안았다. 어쩔 수 없이 나도 끌어안아 주자 어린이 같은 체온이 내 몸에 스며든다. 정말 어린애라니까.

 "나 어떡하면 좋을까……."

 곤란해하는 니지카의 머리 뒤를 쓰다듬고는 나는 신음하면서 생각하는 척을 한다. 답은 알고 있다. 하지만 니지카에겐 아직 가르쳐 주지 않는다.

 "알고 싶어?"
 "……알고 싶어."
 "그냥은 안 알려 줘."

 에에 하고 아쉬워하는 니지카는 내 등을 쥐었다. 둔감한 니지카를 지금까지의 복수로 조금 괴롭혀 주고 싶다.

 "어떡하면 알려줄 건데?"
 "나를 안 떠나겠다고 약속해."

 봇치만 득을 보는 건 치사하다. 나도 확실한 걸 갖고 싶다. 확실한 것이란 즉 니지카와의 미래. 입으로 한 약속에 효력은 없지만 그래도 있는 것과 없는 건 많이 다르니까.

 "나를 싫어하지 않겠다고, 버리지 않겠다고 약속해."
 "료, 난 그런 짓 안 해."
 "됐으니까, 부탁해."

 이번엔 내가 어린이처럼 니지카 몸에 매달린다. 니지카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면, 말 조금 받는대도 천벌은 안 내릴 것이다. 게다가 나만 니지카를 좋아하는 것도 불공평하다. 그렇다면 이쯤은 용서받고 싶다.

 "……약속할게."
 "정말로?"
 "응, 정말로."
 "정말로 정말로……?"
 "정말로 정말로. 계약서도 만들래?"

 진지하게 니지카가 그렇게 말해서 나는 고개를 옆으로 흔들었다. 목덜미에 코를 가져가 들이마셔 니지카 냄새를 폐에 채우고는 눈을 감았다.

 "니지카라면 입으로 한 약속이면 믿을 수 있어."

 내가 원하는 건 손에 넣었다. 그렇다면 조금은 도와 줘도 괜찮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나도 그 녀석 음악은 좋아하고. 조금쯤 짜증이 난대도 결국 좋은 녀석이니까.
 게다가 봇치가 없으면 니지카가 곤란하다. 봇치 때문에 니지카가 우는 건 이제 보고 싶지 않다.



 점심이 지났을 때 여벌 열쇠를 써서 집에 들어가자 먼지가 많아서 기침을 했다. 전혀 청소를 안 했는지 복도엔 먼지가 2밀리 쯤 쌓여 있었고 봇치의 발자국을 따라 또렷이 마루바닥이 드러나 있었다.
 되도록 그 발자국을 따라 거실에 들어가 보지만 봇치는 없었다. 배달 음식 쓰레기가 바닥과 소파, 테이블에 나뒹굴고 있었다. 발자국은 침실로 이어져 있었고 문을 열자 침대에 사람이 있었다. 분홍색에 되는 대로 기른 머리. 닫힌 눈꺼풀에서 긴 속눈썹이 넘쳐 파르르 떨렸다.
 올라가 있던 모포를 잡고 기세 좋게 벗겨 내자 추운지 몸이 동그랗게 말렸다. 봇치의 몸을 넘어가 커튼과 창문을 열자 겨울의 찬 바람이 방에 불어들어왔다. 실눈을 뜬 속에 보이는 파랑이 나를 보더니 싫은 듯이 눈썹을 찌푸렸다.

 "……무슨 일이에요?"
 "안 죽었나 하고."
 "살아 있어요, 돌아가세요."
 "청소할게."
 "안 해도 돼요."

 그대로 봇치를 침실에 남겨두고 거실로 돌아와서 비닐봉지에 배달 음식 쓰레기를 넣어 갔다. 커튼과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하자 먼지가 일었다. 어디부터 청소할까 생각하다가 복도의 먼지를 떠올리고 거실을 나왔다. 
 청소기가 없네 하고 방을 돌아다니다 세면장에 세워져 있는 걸 발견했다. 콘센트를 꽂아 스위치를 누른다. 하지만 반응이 없다. 몇 번 눌러도 반응이 없어서 망가진 건가 싶어 침실로 돌아와 스마트폰을 보고 있던 봇지의 등에 "청소기 망가진 거야?" 하고 묻는다. "……2초 눌러야 돼요."라고 대답이 돌아와서 아아 그렇군 하고 그대로 하자 전원이 켜졌다.
 위이잉 하는 둔탁한 소리를 흩뿌리며 바닥에 청소기를 민다. 먼지가 없어져서 상쾌하군 생각하고 있으니 청소기가 멈춰 버렸다. 어라 싶어 본체를 만져 보니 꽤나 뜨거워져 있다. 어떡해야 하나 또 침실로 가서 봇치에게 "청소기 멈췄어, 왜 이래?"하고 묻자 "……먼지가 너무 많아서 뜨거워서 멈춘 거라고 생각해요."란 말을 듣고 아아 그렇군 했다. 꼼짝도 하지 않게 된 청소기를 내려다보며 그럼 빨래를 할까 하고 빨래바구니에 들어 있는 수많은 의류를 세탁기에 넣었다. 세탁과 유연제 양을 모르겠어서 봇치가 있는 데로 가 "세제랑 유연제 얼마나 넣으면 돼?"하고 묻는다. "……세제는 양이 많으니까 뚜껑 한가득 넣으면 될 거예요, 때탔으니까 유연제는 안 넣어도 돼요."란 말이 돌아와 그대로 했다. 시작 버튼을 누르자 위잉위잉 소리를 내며 돌기 시작한다. 슬슬 쓸 수 있게 됐을까 싶어 청소기를 들었지만 아직 뜨거워서 쓸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있잖아 봇치, 청소기 못 쓰겠는데 어떡할까?"
 "……아아 진짜!"

 봇치는 일어나더니 나를 밀치고 거실에 들어갔다. 청소기에서 필터를 빼고 새로운 걸 끼워 내게 건넸다. 봇치는 어떤가 하면 자루걸레로 먼지를 닦아 간다. 그런 방법도 있었구나.

 "나 뭐 하면 돼?"
 "카페트에 청소기 돌려 주세요. 전 마루바닥 청소할 테니까요."
 "아, 응."

 들은 대로 나는 카페트에 청소기를 돌렸다. 얽힌 먼지가 나아져 가는 걸 보고 오오 하고 감탄의 소리를 흘리자 그 사이에 봇치는 마루바닥의 먼지를 전부 닦아낸 상태였다. 세탁기가 아직 소리를 내고 있으니 주방에 들어가자 바닥에 떨어진 대량의 술 캔과 담배꽁초가 싱크대 바로 위에 산처럼 쌓여 있는 광경에 나는 당황했다. 진동으로 재가 파락 떨어져 나는 몸을 떨었다.

 "봇치, 불 낼 셈이야?"
 "이, 이건, 그게."
 "일단 치우자."

 나는 고무장갑을 끼고 술 캔을 쓰레기봉투에 넣어 갔고 봇치는 담배꽁초를 버리기 시작했다. 그 도중에 재가 내게 조금 튀어서 봇치를 노려본다. 하지만 봇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한숨을 쉬며 작업을 재개하길 20분 정도, 캔과 꽁초는 치워지고 정성껏 바닥과 싱크대가 닦였다. 그것과 동시에 세탁기가 울려서 둘이서 세탁물을 밖에 넌다. 밖은 맑아서 빨래하기 좋은 날이었다. 마지막에 침실에 들어가서 시트나 모포도 통째로 빨려고 한다. 하지만 너무 커서 들어가지 않아서 코인세탁소에 나중에 가기로 했다. 매트리스에 돌돌이를 굴리자 어느정도 일이 끝났다. 제대로 목욕도 하지 않은 봇치를 샤워시키러 보낸 뒤 나도 샤워를 했다. 담뱃재를 씻어 내고 샤워로 먼지 냄새를 뺀 뒤 봇치가 있는 거실로 돌아온다. 봇치는 러그에 무릎을 끌어안고 앉아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나는 옆에 앉고는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린다. 특별히 말을 걸지는 않았다.

 "……방을 깨끗이 한대도 의미 없어요."
 "그런 것치곤 꽤 잘 하던데."
 "키타 짱 집에선 집안일은 제가 했었거든요."
 "그럼 이 집에서도 하면 되지."
 "싫어요, 그치만 키타 짱 없는걸요."

 봇치는 고개를 숙이고 울기 시작해 버렸다. 우우 하고 보물을 잃어버린 애처럼 눈물을 흘리는 봇치를 곁눈질하면서 나는 카페트에 뒹굴었다. 머리 뒤로 팔짱을 끼자 햇살이 딱 얼굴에 닿았다. 피부가 타는 것도 신경쓰지 않고 그대로 있다가 눈을 감는다. 봇치가 우는 소리가 귀에 울렸다.

 "기타 안 쳐?"
 "안 쳐요, 치고 싶지 않아요."

 봇치는 그저 오열을 흘렸다. 나는 그것을 그저 바라본다. 내게 등을 돌리고 있는 봇치가 어떤 표정으로 울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코인세탁소 가자, 그리고 덤으로 밥도. 오늘은 못 사 줄 것도 없지."
 "안 가요, 가기 싫어요."
 "여기까지 와서 침대 시트랑 모포 안 빠는 거 말이 안 되지 않아?"
 "이런 얼굴로 밖에 못 나가요."
 "뭐 어때 봇치다운데, 가자."

 나는 몸을 일으켜 서서 침실에 들어가 먼지 냄새가 나는 시트와 모포를 접어 겨드랑이에 꼈다. 아직 울고 있는 봇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우곤 우리들은 밖으로 나왔다. 가까운 코인세탁소는 도보 3분 거리에 있었고 아스팔트를 밟아 봇치 손을 끌면서 코인세탁소를 향했다.
 봇치는 고개를 숙이면서 훌쩍훌쩍 계속 울고 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태평하게 봇치의 심정을 생각하고 있으려니 봇치의 목소리가 커졌다. 무슨 일인가 싶어 뒤를 돌아보자 붉은 색 털을 가진 개를 보고 엉엉 울고 있다. 주인은 깜짝 놀라 빠른 걸음으로 지나쳐 갔다. 지금 봇치는 이쿠요와 연결되는 모든 것에 민감한 걸지도 모른다.

 "야 봇치, 너무 민감하잖아. 이쿠요는 죽은 거 아니야."
 "죽은 거나 마찬가지예요! 이제 두 번 다시 못 본다고요, 그럼 죽은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너무 극단적이야. 못 만날 건 아니잖아."

 지나가는 사람들 시선이 꽂힌다. 코인세탁소가 보이기 시작한 게 유일한 구원이었다. 자동문을 열고 안에 들어가 봇치를 의자에 앉힌다. 비어 있는 세탁건조기 안에 모포와 시트를 던져 넣고 돈을 넣어 시작 버튼을 눌렀다. 시간은 2시간. 늦은 점심을 먹기엔 딱 좋은 시간이었다.
 
 "봇치, 뭐 먹고 싶어?"
 "아무것도 먹기 싫어요."
 "먹어야지. 햄버거라도 먹을래?"
 "그럼 그걸로 됐어요."

 그럼 가자 하고 나는 봇치 손을 잡고는 코인세탁소를 나온다. 아직 고개를 숙인 봇치는 느릿느릿 걷고 있다. 나도 니지카를 같은 식으로 잃는다면 이렇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날은 아직 멀다. 무엇보다 니지카는 약속해 주었다. 약속을 어긴다면 아예 니지카를 죽이고 나도……. 그건 아무리 그래도 무거운가.

 "봇치, 아래만 보고 있으면 넘어진다."
 "시끄러워요, 시끄러……."
 "봇치는 뭐 먹을래?"
 "필요 없어, 필요 없다고."
 "주문 내가 할 테니까. 자, 말해 봐."
 "……치즈, 버거."

 울고 있는데 잘도 그런 무거운 걸 먹는군 하고 봇치 손을 끌면서 생각한다.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패스트푸드점은 푸드코트 형식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그런 공간에 내던져져서 시선을 집중시키는 건 사양이니까.
 가게에 도착하자 문을 밀어 봇치와 안에 들어간다. 손을 끌면서 하는 주문에 점원은 놀랐지만 신경쓰지 않는다. 데리야키 버거와 치즈버거, 그리고 사이드메뉴를 주문하고 우리는 가장 구석의 사각에 들어가는 자리를 잡고 벽가에 봇치를 앉혔다. 번호를 불려서 상품을 받으러 갔다가 자리에 돌아가 봇치의 눈앞에 쟁반을 놓았다.

 "이러쿵저러쿵해도 마지막에 도달하는 건 데리야키란 말이지."
 "……"
 "음료 콜라로 괜찮았지?"

 나는 포장지를 벗겨 내용물을 꺼내 덥썩 문다. 평소와 같은 데리야키 버거 맛이 났다. 특별히 맛있는 건 아니었지만 봇치의 배가 고파지도록 되도록 맛있어 보이게 먹었다.
 혼자서 먹는 밥이 맛없단 걸 봇치는 알고 있을 것이다.

 "맛있다, 역시 데리야키. 치즈버거도 맛있지만 나이 때문인지 요즘 좀 힘들단 말이지."
 "……"
 "여기에 또 콜라가 어울린다니까. 셰이크도 사 올까."

 햄버거를 세 입 먹은 시점에서 봇치의 배가 꼬륵거렸다. 봇치는 한 번 깊게 고개숙인 뒤, 천천히 얼굴을 들어 나를 본다. 그녀의 올려다보는 눈빛에 나는 미소짓고 "먹지 그래."하고 말했다. 커다란 손이 햄버거를 잡고 포장지를 벗긴다. 두툼한 원반을 덥썩 물고는 꼭꼭 씹어 삼켰다. 봇치는 눈물을 흘리는 채로 기세 좋게 씹고 삼키며 콜라로 목을 축였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현실을 식사에 화풀이하듯이 득달같이 먹었다.

 "맛있어?"
 "……맛있, 어요."

 울면서 봇치는 먹는다. 나는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 데리야키 버거를 다시 입에 넣었다.

 코인세탁소에서 건조가 끝난 폭신폭신한 모포와 시트를 끌어안고 우리들은 아파트로 돌아간다. 이제 손은 잡지 않고 봇치는 울음을 멈추고 내 조금 뒤를 걷고 있었다. 시각은 벌써 오후 4시. 겨울의 해질녘은 빨라서 하늘은 주황색으로 물들어 있다. 봇치는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이 하늘을 보지 않고 있었지만 나는 계속 올려다보고 있었다.
 여벌 열쇠로 문을 열고 안에 들어가서 둘이서 시트를 펼쳐 매트리스에 건다. 모포를 깔고 나면 할 일은 끝나 나는 다시 카페트에 뒹굴었다. 해는 저물고 주변도 어두워지고 있다. 배는 고프지 않다. 냉장고에서 츄하이를 꺼내 그 자리에서 뚜껑을 따 벌컥벌컥 마셨다. 탄산의 자극이 목을 통과해서 상쾌감과 함께 알코올이 식도를 태운다.

 "아, 그, 그거 제 건데."
 "봇치도 마실래?"

 하나 더 츄하이를 꺼내 봇치에게 건네고는 나는 옆에 앉아 텔레비전을 켠다. 재미 없는 방송뿐이었지만 없는 것보단 나았다.

 "그거 청포도맛도 맛있어. 그리고 포도맛도."
 "……료 씨 애들 입맛이네요."
 "부정은 안 할게. 하지만 어른인 척 해서 좋은 일은 없거든."

 봇치는 조용히 술 캔을 바라보다가 뚜껑을 따 거의 수직으로 캔을 기울였다. 연속으로 오르락내리락하는 목에 오오 하는 감탄을 흘리면서 나도 캔을 기울인다.
 안주를 먹고 싶어졌지만 그런 게 이 집에 없는 건 알고 있으니까 그저 마셨다. 그렇게 술에 약한 나는 10분도 지나지 않아 술기운이 돌아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낀다. 봇치도 마찬가지였다.

 "9퍼는 좀 듣네."
 "후우, 네, 네에."
 "좋아, 봇치. 게임하자."
 "네? 지, 지금이요?"
 "당연하지. 집에서 꽤 많이 가져왔어. 게임기는 있지?"

 나는 가방에서 수많은 게임팩을 꺼내고 봇치에게 고르게 한다. 봇치는 전투 게임을 골랐다. 나는 그 게임을 게임기에 넣고 둘이서 컨트롤러를 잡는다. 캐릭터를 고르고 대전하자 의외로 봇치는 강했다.

 "봇치 이거 처음이야?"
 "네, 네. 전부터 궁금하긴 했는데요."
 "그래, 사서 해 보지 그래. 그걸로 대전하자."
 "아, 네, 네."

 그래도 이 게임을 닳도록 한 내 쪽이 우세해진다. 대미지 표기가 커진 봇치 캐릭터를 필살기로 날려 버리고 잔기를 깎아 내 승리. ……인가 했더니 봇치는 마지막의 마지막에 요령을 알았는지 내 잔기를 3개 깎고 승리했다.

 "봇치."
 "앗, 네, 네."
 "지금 건 그거야, 스틱 감도가 안 좋았어. 그리고 지금은 취했고."
 "아, 네."
 "그러니까 한 판 더."

 그렇게 말하고 우리들은 한 번 더 대전한다. 봇치의 공격을 피하고 공격을 넣기를 반복하다 그래도 내가 날아갈 것 같아졌을 때 아이템으로 봇치를 날려 버렸다. 잔기가 줄어들고 봇치를 도발하자 스틱을 또닥거리면서 그녀도 진심이 된다.

 "지금 건 치사해요 료 씨! 그게 뭐예요, 그래도 되는 거예요?"
 "써도 되니까 떨어지는 거지. 봇치, 아직 초보구만."
 "이제 안 봐드릴 거예요!"

 봇치의 움직임은 초조와 분노 때문인지 단조로워져서 공격을 넣기 쉬워진다. 흐히히 웃으면서 한 번 더 날려 버리고 필살기 아이템을 깨고는 봇치에게 다가간다. 봇치는 큰 소리를 내면서 내게서 도망쳐 간다.

 "오지 마요! 좀! 그만해요! 싫어싫어싫어!"
 "안 아파 살짝 뿅할 뿐이니까, 자 이리 와, 도망쳐도 소용없어."
 "싫어, 싫어 오지 마요 료 씨! 으아, 우와아아아악!!"

 필살기를 해방하자 보기 좋게 봇치는 화면 밖으로 날아가 게임 셋. 천장을 올려다보는 봇치를 보고 나는 웃는다. 아하하 하고 내 웃음소리가 방에 퍼졌다.

 "봇치 목소리 그게 뭐야, 웃겨라, 봇치가 그렇게 초조해하는 거 처음 봤을지도, 아하하."
 "왜, 왜요, 료 씨가 몰아붙여 놓고."
 "그치만, 그건, 아하하, 아하, 하하하!"

 내가 웃자 옮은 건지 봇치도 피식 웃고, 흐하하 웃자 그걸 시작으로 웃음소리는 커졌다. 둘이서 웃으면서 또 게임으로 싸운다. 술도 추가해서 다른 게임을 하고 계속 우리들은 승부를 했다. 봇치는 강하기도 하고 약하기도 했다. 하지만 무척 재밌었다.

 둘이서 게임에 몰두하길 수 시간. 커튼에서는 빛이 새어들어와 네모난 윤곽을 또렷이 만들었다. 술기운도 깨서 카페트에 위를 보고 누워 있으려니 봇치도 흰 천장을 보고 있었다. 빛을 보면 오늘도 맑은 듯하다.

 "밤 새 버렸네요."
 "응, 새 버렸네."
 "목욕 안 했네요."
 "샤워 했으니까 뭐 어때."
 "배 고프다."

 나는 천천히 상반신을 일으킨다. 그리고 하품을 하나 하고 봇치를 보았다.

 "라멘 먹으러 가자."

 봇치는 그 말을 듣고 천천히 일어난다. 평온한 표정으로 네 하고 대답하고는 우리들은 흐늘흐늘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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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토라(虎) 님

원본 링크: そこはまるで怪獣の腕のなか | https://www.pixiv.net/novel/show.php?id=206409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