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물/번역

[봇치더락SS] 그곳은 마치 괴수의 품 속 - 12

카와즈 2024. 3. 5.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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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마트폰 스피커에선 항상 히토리 짱의 목소리가 들린다.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에 올라온 곡은 한참 전에 전부 다 들어서 곡도 가사도 모든 것이 머릿속에 들어 있었다. 당연히 나를 향한 말이나 목소리가 아닌 건 알고 있으면서도 마치 강박관념처럼 나도 모르는 내가 히토리 짱을 원해서 나는 재생을 멈출 수 없다.
 쓰레기로 가득 찬 거실 안에서 나는 혼자 카페트에 뒹굴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흐린 하늘을 창문 너머로 바라보았다. 청소도 세탁도 나는 하는 법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쓰레기 버리는 날도 요리도 전부 모른다. 알고 싶지 않다. 히토리 짱이 돌아오지 않는단 건 알고 있는데 몸이 그럴 리가 없다고 떼를 쓰니까 나는 아무데도 갈 수 없다. 러그 위에서 히토리 짱의 목소리를 계속 듣다가 샤워를 적당히 하고 밥을 먹기도 하고 안 먹기도 하고, 그리고 회사에 갔다가 죽은 듯이 잠든다. 일어나서는 곡을 듣기를 반복. 다크서클도 요즘은 컨실러로 숨기지 못할 만큼 깊어졌다. 그걸 삿츠에게 지적받지만 나는 적당히 변명을 한다. 히토리 짱을 놓아준 건 나인데 내가 불평을 하는 건 잘못됐다. 이건 내 문제다. 누군가를 의지해도 되는 일이 아니다.
 결국 히토리 짱을 놓아주고 나는 무엇을 손에 넣었을까. 애초에 무엇을 손에 넣으려고 했더라. 그래, 히토리 짱이 빛나는 걸 바랐다. 하지만 히토리 짱은? 히토리 짱은 지금 빛나고 있나? 히토리 짱은 곡을 내지 않고 있다. 그럼 나는 무엇을 얻은 걸까.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히토리 짱과 만나기 전에 원래부터 있었던 외로움이 몇십 배로 부풀어올라서 나를 지금 괴롭히고 있다. 한 번 손에 넣고 만 온기를 잊는 건 간단하지 않다. 매일 밤 꿈에 나와서 아침에 눈을 뜨고 히토리 짱이 없는 방에 절망한다.
 이럴 생각이 아니었는데, 난 언제나 이렇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아무 예측도 하지 못한다. 하고 싶었던 것과 정반대로 일이 진행된다. 왜, 왜일까.
 기타 소리가 멎지 않는다. 히토리 짱의 목소리도, 멜로디도. 전부가 스피커에서 울려퍼지고 있는데 히토리 짱 안에 내가 없어져 가는 소리가 들린다. 당연하다, 나와 만나기 전의 히토리 짱 안에 나는 없으니까.


 컴퓨터 화면을 노려보면서 키보드로 글자를 친다. 수면부족인 머리는 잘 돌아가지 않아서 상사에게 주의받는 일이 늘었다. 화를 내거나 크게 혼나지는 않는다. 이런 세상이니까. 하지만 나는 화냈으면 좋겠고 혼났으면 좋겠다. 그렇게 함으로써 약한 자신을 긍정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히토리 짱을 잊고 싶어서 일에 몰두하고 있는데 실수가 많아서 잘 되지 않는다. 혈안이 되어서 문장을 훑어 보아도 안구가 불량품이라면 빠뜨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착실히 나는 타락하고 있다. 어디로? 그런 건 모른다.

 "키타, 점심이야."
 "됐어, 필요 없어. 일 남았어."
 "바쁜 거 아니잖아 그거. 과로야. 야근 필요 없는데 하고 있다며."
 "시끄러."
 "하다못해 뭐라도 먹어."
 "필요 없어."

 삿츠가 내 어깨를 두드리며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밥 같은 걸 먹을 시간이 있으면 떠올리고 만다. 그건 싫다. 이런 데서 울고 싶지 않다. 절대로. 나는 절대로 울지 않는다. 그런 치사한 짓은 하고 싶지 않다.

 "……그러다 언젠가 쓰러진다?"
 "쓰러져도 괜찮아. 신경 안 써."
 "……키타 바보."

 삿츠가 떠난다. 나는 일에 몰두한다. 히토리 짱이 희미해질 정도로 일을 하고 야근을 하고, 일에 열중한다. 그것 말고는 생각하지 않도록. 히토리 짱의 목소리 말고는 듣지 않도록. 이건 내 속죄니까. 날개를 꺾어 버린 내 벌이니까.

 11시 가까이 되어서 집에 돌아와 중간에 산 편의점 도시락을 깨작깨작 먹는다. 부장님이 돌아갈 때 내게 내민 연차신청서. 쌓여도 있고 요즘 너무 힘내고 있으니까 소화하고 오라며 억지로 이틀간을 쓰게 시켰다. 심지어 내일과 모레. 해야 하는 일이 있다고 해도 부장님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허락해 주지 않았다. 부하를 지키는 게 일이라고 부장님은 말했지만,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이틀간 정신을 돌리면 된단 말인가. 어떻게 이 죄책감을 덮으면 되느냐고 혼자 울다가, 어느샌가 잠들었는지 정신을 차리니 아침이 되어 있었다.
 히토리 짱 목소리를 계속해서 흘리는 스마트폰을 보자 신곡이 나와 있었다. 그것에 손가락을 뻗어서 화면에 닿기 직전, 나는 갑자기 무서워졌다. 이대로 영상을 재생해서, 내가 언제나 듣던 곡들처럼 어디에도 내가 없으면 어떡하지 생각하면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는다. 어쩔 줄 모를 공포를 느껴 지갑만 들고 집에서 뛰쳐나왔다. 스마트폰 같은 걸 들면 분명 그 곡을 들어 버릴 테니까.
 에너지가 고갈된 몸은 뛰는 것만으로 현기증이 난다. 수백 미터를 달린 후 무릎에 손을 대고 숨을 쉬었다. 스마트폰이 없는 지금 내가 히토리 짱을 느낄 방법은 없다. 조금 안심해서 역까지 걷는다. 어디에 갈지 정하지 않고 적당히 전철을 탔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사라져 가는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다 중간에 승차한 여고생 둘이 눈앞에 서서는 작은 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근데 Bocchi 신곡 들었어?"
 "들었어 들었어! 완전 쩔지 않냐!?"

 그 순간 나는 귀를 막는다. 양옆과 눈앞의 여자애 둘이 놀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자 나는 일어나 다른 차량으로 옮겨갔다. 그 다음 역에서 내려 빠른 걸음으로 개찰을 나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으려고 걷고 걸어, 평범하게 보이려 노력하며 밖으로 나와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 눈앞에 히토리 짱과 갔던 수족관이 바로 앞에 있었다. 여기 오시아게 역이었구나 하고 소라마치에서 하늘로 뻗은 스카이트리를 올려다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나는 티켓을 사고 평일의 한산한 수족관 안에 들어간다. 느릿느릿 발을 내밀어 나아가 처음 본 수조. 작은 물고기들이 유유히 헤엄치는 그곳에는 히토리 짱이 나를 닮았다고 해 줬던 예쁜 빨간색 구피가 아직 헤엄치고 있었다. 마치 커튼을 흔들흔들 나풀거리듯이 꼬리지느러미를 흔들며 헤엄치는 모습은 조금도 나와는 닮지 않았다. 히토리 짱과 여기에 왔을 때 나는 분명 이 구피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나는 볼품없었다. 맨투맨으로 거리를 달리다 전철에 뛰어들어가 귀를 틀어막고 내린 역이 운 나쁘게도 오시아게 역이라니, 신은 잔혹하다. 그리고 나도 도망치지 않고 어째서인지 여기에 있다. 해파리를 바라보자 히토리 짱이 좀처럼 이 자리를 떠나지 않았던 것을 떠올렸다. 5분 정도 가만히 해파리를 바라보며 잡은 손을 꼭 쥐었었다. 왜 그렇게 해파리를 보고 있었던 건지 나는 모른다. 앞으로 알게 될 일도 분명 없을 것이다. 그 자리를 떠나 대수조를 향했다.
 아크릴판 너머의 소금물 속에서 상어와 혹돔이 헤엄치고 있다. 히토리 짱은 상어가 돼서 나를 지켜 주겠다고 했다. 잡아먹지 않고, 잡아먹을 바에야 아사를 고르겠다고까지 말했다. 히토리 짱이 나를 지키고 싶다고 바랐듯이 나도 히토리 짱을 지키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히토리 짱이 새로 만든 곡을 듣지 못하고 있다. 들으면 모든 것이 무너져 내가 나로 있지 못하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 때 Bocchi도 좋아하게 됐다고 해 놓고 이건 너무하다. 한숨을 쉬고 펭귄 수조를 둘러볼 수 있는 다리를 건넜다. 펭귄은 그로부터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펭귄은 히토리 짱을 기억하고 있을까. 분명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작은 펭귄을 히토리 짱은 마음에 들어했지만 사실은 조금 질투하고 있었단 걸 알게 되면 웃을까. 웃어 줬으면 좋겠다. 아무리 그래도 펭귄을 좋아하게 되진 않아요 하고. 똑같은 목소리로 "이제 키타 짱을 좋아할 일은 없어요."라는 말이 뇌내에서 재생되었다. 반사적으로 귀를 막고 펭귄 코너를 빠져나와 금붕어가 있는 수조를 헤쳐 나간다. 여기도 전에 왔을 때와 변함이 없다. 작은 것 큰 것 부풀어오른 것 홀쭉한 것.  각양각색인 금붕어가 있다.
 한 수조에 발을 멈추고 쪼그려 앉았다. 수조랄지 네모난 양동이에 들어 있는 금붕어. 전에 히토리 짱과 바라봤던 금붕어. 나란히 앉아서 한동안 둘이서 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수조에는 한 마리밖에 없었고 넓은 세계를 혼자서 살랑살랑 헤엄치고 있다. 짝을 잃어버린 그 한 마리는 눈부신 LED 빛 속에서 헤엄치고 있었다.

'키타 짱이 구피라도 금붕어라도, 역시 저는 상어가 될래요.'

 갑자기 히토리 짱의 말이 되살아났다. 딱히 의미 같은 건 없는 말이다, 머릿속에 떠오른 말을 그대로 내게 말했을 뿐이고 분명 거기에 의미 같은 건 없다. 없을 터인데 왜 눈물이 흐르는 거야.
 주변 사람에게 이상하게 생각되지 않도록 입을 손으로 세게 틀어막고 소리를 죽여 어깨의 떨림을 억지로 억눌렀다. 눈물이 뺨을 미끄러져 똑 똑 바닥에 흘러 떨어진다.
 금붕어는 혼자서 헤엄치고 있다. 두 마리일 때 딱 좋았던 세상을 단 혼자서, 너무 넓은 모형정원을 살고 있었다.
 구피와 상어인 채로 있을 수 있었다면. 놓아준 쪽인 내게 그렇게 바랄 권리 따위 없었다.


 "눈 새빨개, 왜,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이면 뭐 어때. 오늘 재워줘."
 "그건 괜찮은데. 먼저 목욕하고 와."
 "……응."

 히토리 짱의 옛 모습이 북적거리는 집에는 돌아가고 싶지 않아서 삿츠네 집에 들어가 욕실을 빌렸다. 머리와 몸을 씻고 나서 욕조에 어깨까지 담그자 늘 샤워만으로 끝내서 그런지 기분이 좋았다. 생각에 잠겨서 머리가 어질해질 즈음 수건으로 몸을 닦아 간다. 삿츠의 잠옷을 빌리고 거실에 돌아가 소파에 앉아 있던 삿츠를 두고 러그에 앉았다.

 "머리 정도는 말리지 참."
 "……싫어."
 "나 참, 어쩔 수 없다니까."

 삿츠는 세면장에서 드라이기를 가져오더니 소파에서 머리를 말려 주었다. 드라이기 소리와 함께 삿츠가 내 머리를 만지는 손끝이 기분 좋다. 여기에 히토리 짱은 없다. 그 사실에 안심하고 실망했다.
 
 "머릿결 상했다. 지난번에 좋은 샴푸랑 트리트먼트 샀다고 그랬잖아."
 "……이제 안 써."
 "아 그래. 모처럼 머리 기니까 예쁘게 하고 다녀."
 "……귀찮아."

 드라이기가 끝나고 삿츠는 소파에서 내려와 내 옆에 앉았다. 머리가 어깨에 올라와서 힘없는 쇄골이 삐걱인다. 텔레비전에서는 외국 드라마가 흐르고 있었다.

 "무슨 일 있었어."
 "……딱히."
 "요즘 키타 이상하니까. 좀처럼 집에 안 들어가거나 밥 안 먹거나 다크서클 만들거나. 하지만 나한테도 짐작가는 데가 있어."

 삿츠의 목소리가 거기서 끊기고 한동안 입을 다물었다. 무슨 일일까 옆을 보자 삿츠의 눈은 눈물을 머금고 흐르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참고 있었다.

 "나 때문이지, 미안해."

 나는 "아니야, 삿츠 때문 아니야. 마지막에 고른 건 나니까."라고 해서 삿츠를 감싼다. 실제로 마지막에 고른 건 나다. 그러니까 삿츠는 나쁘지 않다. 나쁜 건 전부 나다.

 "내 잘못이니까, 삿츠는 아무것도 잘못 안 했어."
 "아니, 난 몰랐어, 고토 씨가 키타한테 그렇게 소중했단 거. 아는 척해서 고토 씨랑 키타가 서로 떨어져서, 키타는 훨씬 힘들어하고 있어."
 "시간 문제니까, 아직 나한텐 시간이 부족할 뿐이야."
 "그래도 키타가 지금 계속 상처받고 있는 사실은 바뀌지 않아!"

 삿츠는 내 어깨에서 머리를 들어 똑바로 내 눈을 보면서 그렇게 외쳤다. 참고 있던 눈물은 그 충격으로 떨어져 피부를 미끄러진다. 나는 삿츠의 이름을 부르고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되어 버렸다.

 "내 말이 맞아, 키타. 키타는 고토 씨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데, 좀 더 다른 방법도 있었어. 키타가 그렇게 힘들어하지 않아도 되는 선택지도 분명 있었을 텐데."

 삿츠는 눈물을 닦지 않고 그렇게 이야기한다. 히토리 짱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건 분명 내 사실이었다.
 선택지. 나와 히토리 짱이 같이 살아갈 수 있는 그런 분기도 있었던 걸까.

 "나, 키타에 대한 건 뭐든 알고 있다고 생각했어. 실제로 뭐든 알고 있었어. 그야 절친인걸. 하지만 고토 씨랑 만나고 나서 키타는 변했어. 그 키타를 몰랐어. 떼어 놔서, 미안, 미안해."
 "삿츠는 나쁘지 않아. 진짜야."
 "키타를 불행하게 해서 미안해, 키타는 웃어 줬으면 했어."
 "사과하지 마, 삿츠."
 "진작에 고토 씨는 키타의 일부였는데. 아프지, 힘들지, 미안해."

 삿츠는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울기 시작하고 말았다. 나는 어떡하면 좋을지 몰라 그저 손바닥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삿츠가 울어 버리면 내가 울 수 없다. 삿츠가 울었으면 한 게 아니다. 언제나처럼 왜 그런 어두운 얼굴 하고 있냐고 혼내 줬으면 했다. 똑바로 서라고 등을 두드려 줬으면 했는데.
 반신이 찢겨져 나가는 소리와 아픔이 나를 덮쳤다. 여기에도 히토리 짱이 있었다. 리플레인하는 사랑한다는 말은 이제 와서는 저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여기에는 없는 스마트폰 속, 나와 헤어진 후의 그녀는 어떤 곡을 만들었을까. 분명 나를 저주하는 곡일 게 틀림없다.
 나는 뭘 하고 싶었던 걸까. 히토리 짱을 잃고 모든 것을 잃어버린 느낌인데. 뭘 원하고 뭐가 필요없었던 거더라.


 카페 창 안쪽, 좁달막한 박스석에 욱여넣어진 우리들은 둘이 나란히 따뜻한 커피에 입을 댄다. 밖은 눈이 내리고 있어서 창문 너머로도 그 추위가 전해졌다.

 "히토리 짱은 잘 지내나요?"
 "그럭저럭이요. 키타 씨는?"
 "……잘 지내요."

 눈이 내리면 마음까지 얼어붙고 만다. 하지만 내 마음은 히토리 짱과 헤어진 그 순간에 진작에 망가져 버렸다. 지금은 세상에서 색이 없어져 버려서 살아갈 기력도 없다. 타성으로 살아가는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

 "히토리 짱은 요즘에 뭘 하고 있나요."
 "요즘엔 완전히 작곡뿐이에요. 계속해서 곡 쓰고 있나 봐요, 즐거운 듯이."
 "……그런가요."

 아아, 히토리 짱이 나를 잊어버린다. 이걸로 됐다, 이걸로 좋았던 거다. 이걸로 전부 잘 풀린다. 모든 것이 처음으로 돌아갔다. 이게 원래 있어야 할 세계. 히토리 짱이 자리잡을 곳. 히토리 짱은 음악을 되찾고 모두에게 사랑받고 있다. 그것의 뭐가 나쁘단 말인가.

 "없어지기 전보다 훨씬 작곡에 열중하고 있어요. 키타 씨는 이미 들으셨나요?"

 나는 말문이 막힌다. 들었어요와 안 들었어요의 경계선. 거짓말을 하면 된다. 여기서 아직 안 들었다느니 하면 이상한 표정을 지을 테니까. 몇초 사이를 두고 들었어요라고 답하자 이지치 씨는 눈을 한 번 깜빡이고 "그렇군요, 다행이네요."라고 내게 말했다.

 "지금까지 없었던 록 테이스트인 곡이라 좋았죠."
 "……네."
 "키타 씨는 평소에 음악 같은 거 듣나요?"
 "아니요, 전 별로요. 료 씨를 만났을 때도 누군지 모를 정도였어요."
 "료 음악도 좋으니까 꼭 들어 보세요. 그래 봬도 제대로 아티스트거든요."

 이지키 씨는 료 씨 이름을 꺼낼 때 분위기가 변했다. 료 씨의 매니저도 맡고 있는 걸까 가볍게 고민하다 아무래도 좋은가 싶어서 내던진다. 히토리 짱은 이제 돌아오지 않는다. 잘 알고 있는 것을 막상 인정하니 가슴이 괴로워서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키타 씨는 요즘 뭘 하고 있나요?"
 "저요?"
 "네. 키타 씨는 봇치 짱이 어떠냐고 물으시지만 자기 얘기는 별로 안 하셔서."

 얘기할 가치가 없다. 요즘 나는 너덜너덜하다. 술에 담배에 도박. 자신의 몸을 상처입히고 그걸로 죄를 갚은 기분을 느끼고 있다. 도박은 하고 있는 도중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아도 되니까 편하다. 요즘엔 히토리 짱의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 괴로워지니까.
 아슬아슬할 때까지 야근을 하고 있으니까 그래도 돈만큼은 쌓여 간다. 그 빙산의 일각을 도박으로 날려 버리고 또 보충하고를 반복한다. 의미 없는 인생, 결실 없는 나날.

 "……뭘 하고 있는 걸까요. 일이려나."
 "몸은 소중히 하세요."
 "아하하, 네."

 주말은 고통이다. 항상 어두운 감정에 지배당해야만 하니까. 그걸 니코틴과 술로 중화하고, 마시면 마실수록 내성이 붙어서 안 듣게 돼서 양이 늘어나고. 이래선 마치 죽기 위해 사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렇다기보다, 슬슬 죽어도 좋겠단 생각이 들고 있다.
 죽고 싶단 생각은 늘 있다. 갑자기 트럭에 치이거나 덮쳐져서 죽는 망상. 거리를 걷고 있으면 마치 나만 유령이 된 것처럼 발을 움직인다. 몸은 가벼워지는데 그만큼 마음이 무거워져 간다.

 "요즘은 추워지기도 했죠, 역시 감기 걸리거나 하면 큰일이에요. 봇치 짱도 요전에 걸렸었어요."

 아아 하지만 죽는다면 아예 히토리 짱 손으로 죽여 줬으면 한다. 그래도 놓아준 건 내 쪽인데 죽여 달라고 부탁하는 건 번지 수가 다르지. 히토리 짱이 보기엔 멋대로 혼자서 나가 죽으란 느낌일 테고. 그럼 어떡할까. 역시 목을 매달거나 하는 게 좋을까.

 "병원 싫어하니까 약도 받으러 안 가서 큰일이었어요. 어떻게좀 해 줬으면, 저기 키타 씨?"

 혼자서 조용히 없어지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 전철이나 차는 운전수가 불쌍하니까 좀 더 다른 방법이 좋다. 수해에서 목 매달기? 아니면 도진보? 절벽에서 몸을 던지는 건 물고기들 양분이 될 수 있으니까 괜찮을지도, 목 매다는 건 발견됐을 때 비참할 테고.

(* 수해, 도진보: 자살로 유명한 장소. 수해는 깊은 숲이고 도진보는 해안가 절벽이다.)

 "저기요, 키타 씨."

 이럴 거라면 즐거웠을 때 둘이서 여러가지 해 뒀으면 좋았을걸. 밖에 나가서 재밌는 걸 할걸 그랬다. 히토리 짱과 하고 싶은 일 많이 있었는데. 어서오세요 하고 끌어안겼을 때의 체온이 잊혀지질 않네, 사랑한단 말을 들었을 때의 기쁨, 아직 가슴에 남아 있어. 히토리 짱 투성이다, 내 몸 속은.

 "키타 씨!"

 그 말로 나는 현실로 끌려들어와 기세 좋게 고개를 들었다. 눈 앞의 이지치 씨는 뭔가 무서운 것이라도 본 듯한 얼굴로 나를 보고 있다. "죄송해요. 뭐라고 하셨죠?"하고 나는 이지치 씨에게 다시 한 번 묻자 딱딱한 웃음이 떠올랐다.

 "저, 키타 씨 이상해요. 제대로 자고 있어요?"
 "푹 자고 있어요, 어제도. 제대로 일도 가고 있고요. 아하하 죄송해요, 요즘 좀 잠이 부족해서."
 "저, 저기, 정말로요?"
 "네? 네. 요즘은 술 양도 줄고 밥 양도 줄었어요. 술 양도 줄고, 밥 양도 줄었다니까요."
 "에, 저, 저기."
 "요즘은, 요즘은 그러니까, 그렇지, 밥을 먹었어요. 많이. 아하하, 맞아요."
 
 말이 뇌를 거치지 않고 입으로 나간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런 감정도 떠오르지 않는다. 아아 뭔가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지금이라면 하늘도 날 수 있을 것 같다, 어떡할까, 이대로 러닝이라도 하러 갈까, 아까까지 그렇게 어두웠던 기분이 갑자기 밝아졌다. 나 나은 걸까.

 "하하, 아하하, 맞아요, 이제부터 뛰러 갈까 하는데 이지치 씨도 같이 어떠세요? 재밌을 거예요."
 "키, 키타 씨, 당신."
 "평범하게 뛰는 건 재미없죠, 뭐가 좋을까, 아, 그래! 뛰어서 에노시마까지 가죠! 그리고 시라스동 먹고 돌아온다거나!"
 "키타, 씨."
 "분명 재밌을 거예요, 전철로 여기서 20분 거리니까요, 어라, 15분이었던가요? 이전에 갔을 땐 얼마나 걸렸더라."
 "키타 씨!"
 "왜 그러세요?"

 이지치 씨는 일어서서 내 팔을 잡는다. 같이 가 줄 기분이 든 걸까 하고 기뻐하자 억지로 일으켜 세워졌다. 카페를 나와 나를 차에 태우고 이대로 에노시마에 가는 건가 조금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같이 가 주는구나 생각하면 기뻐져서 콧노래를 불렀다. 창유리에 찰싹 두 손을 붙이고 밖을 바라본다. 사람, 사람, 사람. 도쿄다, 여긴 도쿄. 어라, 에노시마는 무슨 현이었더라.
 다 왔어요 하고 데려다 준 곳은 커다란 하얀 건물. 뭔가 재밌는 곳인가 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있으려니 의자에 앉혀졌다. 지갑을 보여달라고 해서 귀엽죠? 하면서 건네자 안에 있는 카드 한장을 뺏겼다. 그리고 둘이서 한동안 기다리다 스피커에서 내 이름이 불렸다. 여러가지 일이 있었던 듯 없었던 듯한 느낌이 들었고 끝난 뒤에 나는 침대에 누워 링거를 맞고 있었다.

 "키타 씨. 당신 지친 거예요."
 "저 이상했어요?"
 "이상해요. 옆에서 봐도. 말이 지리멸렬했어요."
 "하하, 자각은 없었는데……."

 정신과 같은 데 와 본 건 처음이다. 링거 같은 걸로 마음이 편해지겠느냐고 조롱하듯이 노려보다 어차피 마음 같은 건 뇌가 제어하는 시냅스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고 웃는다. 의사 선생님에게 들은 건 나도 자주 듣는 병명. 설마 자신이 그렇게 될줄은 하고 얼굴을 덮고는 앞으로 오래 같이 지내게 되겠구나 하고 약을 먹는 자신을 떠올렸다.

 "마음은 약으로 고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지금은 진정됐잖아요."
 "진정됐을 뿐이에요. 원인을 없애지 않으면 키타 씨는 건강해지지 않아요."
 "……그럼 무리예요. 분명."

 히토리 짱은 날아올라 어딘가로 떠나고 말았다. 나는 그 뒷모습에서 눈을 돌렸다. 받아들이는 것도 거절하는 것도 할 수 없다. 나는 약한 구피다. 히토리 짱은 상어처럼 강하더라도.

 "저는 당신과 봇치 짱을 떨어뜨린 사람이라 아무 말도 못 해요."
 "알고 있으면 내버려 두세요."
 "하지만 키타 씨가 그러면 히토리 짱이 웃을 수 없어요."
 "히토리 짱 웃음 같은 거 전 못 봐요!"

 나는 히토리 짱의 웃음을 바라더라도 그걸 받고 싶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다. 그리고 히토리 짱은 많은 사람에게 웃음을 전해주고 있다. 불순물은 나 오직 한 사람이고, 그러니까, 이제 괜찮잖아.

 "만나지 말았어야 했어요. 우리들은 애초에 둘로 나뉘어 있었어야 했던 거예요. 하나가 되어서 서로 상처입히고 떨어지면 더 상처입고. 저는 자신이 옳은 선택을 했다고 생각하고 싶어요. 누구도 저를 긍정해 주지 않는다면 저 자신이 긍정해 줘야 해요."
 "키타 씨, 지나친 생각이에요."
 "당신도 기뻐하고 있잖아요, 히토리 짱의 매니저니까요. 그래서 저를 히토리 짱한테서 떨어뜨려 놓고 같은 편인 척 하지 마세요. 있어야 할 곳에 간 거예요. 히토리 짱은 Bocchi가 됐고, 저는 혼자로 돌아왔고. 이걸로 된 거예요."

 히토리 짱의 행복이 내 행복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그렇게 생각해야만 한다. 히토리 짱이 내 안에서 점점 신격화되어 간다, 신이 되어 간다. 신에게 사랑받고 싶다, 하지만 신을 거역한 나는 이제 사랑받을 수 없다. 지옥에 떨어져 땅을 기며 채워지지 않는 욕구를 끌어안고 계속 고통받는다. 그것이 신에 대한 벌이고 속죄다.

 "당신은 틀렸어요."
 "시끄러워!"
 "히토리 짱은 히토리 짱이에요."
 "당신한테 듣고 싶지 않아!"
 "……봇치 짱 노래, 정말로 키타 씨는 들었나요?"

 안 들었어, 들을 수 있을 리가 없어, 듣는 게 무서워,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어.
 히토리 짱에게서 내가 사라져 간다. 나라는 소리가 사라져 남는 것은 다름아닌 히토리 짱 자신이다. 나는 고토 히토리를 사랑했다, 하지만 사실을 내 눈으로 봤을 때 분명 나는 망가져 버린다. 지금보다 더욱 비참하게 괴물이 되고 만다. 사랑받고 싶은 괴물은 대체 어떻게 된단 말인가. 지금 있는 곳이 밑바닥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못 들어요."
 "한 번이라도 좋아요, 들어 주세요. 다름아닌 당신만은, 히토리 짱을 의심하지 말아 주세요."
 "어떻게 당신이!"
 "저는 아무리 원망해도 좋아요. 실제로 원망받을 일을 했어요. 제가 틀렸었어요. 여기에 사죄하겠습니다."

 이지치 씨는 죄송했습니다 하고 고개를 숙였다. 나는 어금니를 꽉 깨물고 모포를 움켜쥐고는 시선을 돌렸다. 고개를 든 이지치 씨는 "부탁드려요."라고 내게 말했다.

 "한 곡만이 아니에요, 세 곡 나왔어요. 그로부터. 히토리 짱은 날아올랐어요. 하지만 날아오른 이유를 키타 짱도 알아 주셨으면 해요."
 "저는, 못해요……."
 "히토리 짱한테서 도망치지 말아 주세요. 제가 말할 자격은 없지만, 부탁드려요."

 이지치 씨는 다시 고개를 숙이고 내게 그렇게 말했다. 눈앞에 있는 사람은 자신의 책임으로부터 도망치지 않는 훌륭한 어른이었다. 죄를 짊어지고서 그것을 마주보고 받아들여 속죄를 계속하는.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
 그것에 비해 나는 그저 애에 괴물에 지나지 않는다. 사랑받고 싶다고 바라는 나는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이지치 씨가 집까지 배웅해 주어서 처방받은 약을 끌어안으며 거실의 러그에 쓰러져 천장을 보고 눕는다. 완전히 밤이 되어 버린 도쿄를 창문으로 올려다봤다. 스마트폰을 켜서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를 열었다. 당연하다는 듯이 톱에 표시되는 Bocchi의 영상. 재생수는 백만을 넘었다.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탭하려다가 손가락이 직전에 멈춘다. 신음하면서 손가락을 앞으로 전진시켜 영상을 재생했다. 심장이 긴장으로 어떻게 되어 버릴 것 같았다.
 Bocchi답지 않은 록풍 곡. 히토리 짱의 숨소리가 스마트폰 스피커에서 들려온다.
 히토리 짱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와 헤어지고 처음 노래한 곡. 나를 향한 분노와 슬픔, 하지만 히토리 짱은 미련을 계속 자아내고 있다. 나를 좋아한다고 외치고 있다. 사랑한다고 했는데, 왜 내 쪽에서 떨어진 거냐고 기타를 울리면서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가사의 전부에 내가 있었다. 나 말고는 없었다. 후렴은 귀에 남는 멜로디와 함께 록이 튀어올랐다. 그것이 히토리 짱의 심정을 나타내듯이 나는 눈물을 흘렸다. 미안해, 미안해 하고 나는 러그에 눈물을 떨어뜨리며 입을 막았다. 히토리 짱의 노랫소리가 뚫고 들어온다. Bocchi가 돌아왔다. Bocchi가 거기 있었다. 나는 히어로의 귀환을 피부로 느꼈다. 모두에게 사랑받는 히토리 짱이 거기에 있다. 곡이 끝났다. 둘째 곡도 셋째 곡도, 멜로디는 다르지만 나를 향한 러브송이었다. 자만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을 정도로, 히토리 짱은 날 향해 감정을 폭발시키고 있었다.
 히토리 짱은 나를 사랑하고 있었다. 사랑한다고 외치고 있었다. 나도 외치듯 울었다. 사랑받고 싶은 사람에게 사랑받고 있었으니까. 그 이상은 없다, 그것 말고는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해 버렸다. 바라서는 안 되는 나는 사랑받고 싶다고 바라고 말았다.
 
 나는 히토리 짱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 이제 변변찮은 인생밖에 살 수 없다. 히토리 짱의 체온이 스며든 이 몸은 이 세상에는 적합하지 않아서 추워서 죽어 버릴 것 같다.
 용서받을 수 있다면 다시 한 번 끌어안아 줬으면 한다. 끌어안아 죽여도 좋으니까. 나를 끌어안아 줘.
 화면을 바꾸고는 연락처를 열었다. 히토리 짱이란 글자를 탭해서 귀에 가져다 댔다. 호출음이 고막에 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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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토라(虎) 님

원본 링크: そこはまるで怪獣の腕のなか | https://www.pixiv.net/novel/show.php?id=206409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