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물/번역

[봇치더락SS] 잔소리는 됐으니까 좋아한다고 말해 - 2

카와즈 2024. 3. 10.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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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야, 여기."
 "보는 대로 신주쿠예요."
 "그게 아니라."
 "키타 짱~, 봇치 짱~! 안녕~!"
 "늦었네."

 휴일, 아직 자고 있는 키타 짱을 두들겨 깨워서 준비를 시키고 아무말도 하지 않고 전철을 타자 역시나 그녀는 당황했다. 무리도 아니다. 깨워져서 옷을 갈아입고 영문도 모르는 채 신주쿠에 와 보니 커플룩을 하고 들떠 있는 바보 커플이 눈앞에 나타났으니까.
 
 "저, 저기요?"
 "어라라~? 키타 짱하고 봇치 짱은 안 해~? 커플룩♡"
 "잠깐 잠깐, 둘은 아직 사귄 지 얼마 안 됐으니까. 뭐 우리들 같은 러브러브는 못하지~."

 짜증나! 몰래카메라 비슷한 책략인 주제에 일부러 나를 도발할 필요는 없잖아요! 부들부들 주먹을 쥐고 있자 키타 짱은 물음표를 머리에 띄우고 있었다.

 "저, 저기 선배님들, 저희 애인 아닌데요……?"
 "에, 에에!? 잠깐만 료! 둘이 안 사귀잖아! 어떻게 된 거야?!"
 "에, 에에!? 거짓말! 안 사귄다고-!?"
 "……저, 정말. 그만두세요, 이상한 착각은."
 
 짜증나는 두 분은 친절하게도 손까지 깍지끼고 잡고 있다. 니지카 짱이 자기한테 맡기라는 듯한 아이컨택을 취하고는 "마, 맞아!" 하며 어색한 연기를 시작했다.

 "모처럼이니까 더블 데이트 하자! 둘도 같이 데이트 하자!"
 "그거 좋네! 역시 니지카♡"
 "왜애?♡ 료♡"
 "니지카♡"
 "료♡"
 "아- 그럼 빨리 갈까요 아침 안 먹어서 배 고프거든요 자 키타 짱도."
 "으, 응."

 꽁냥거리기 시작한 둘을 내버려 두고 미리 정해둔 데이트 플랜을 떠올린다. 처음엔 카페에서 가벼운 식사를 하고 다음에 쇼핑몰. 그 다음에 중고의류점에 갔다가 마지막에 수족관. 이걸로 잘 안 된다면 두 사람을 상어가 있는 수조에 던져넣고 기타 넥을 분질러 주겠어.

 "그럼 카페로 렛츠고~!"
 "오~!"
 "오~……."
 "오, 오~!"

 곧장 우리들은 가까운 카페를 향해 걷기 시작한다. 조금 앞을 걷는 바보 커플은 서로의 이름을 부르면서 후덥지근할 정도인 거리를 나란히 걷고 있었다. 사귀고 2년 정도 지났는데 아직 저만큼 사이가 좋다니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친구라도 손 정도는 잡을 거다. 실제로 고등학교 시절 등하교시에 손을 잡는 여고생은 몇명이나 봤다.
 나는 흔들리는 키타 짱 손에 자신의 손바닥을 겹치고는 부드럽게 쥐었다. 페리도트가 놀람에 크게 뜨인다. 나는 아무것도 특별한 느낌을 내지 않고 걸었다.

 "오늘은 날씨 좋네요."
 "으, 응. 그러게. 저, 저기 히토리 짱."
 "왜요? 친구 사이라도 요즘은 손 잡잖아요?"

 이렇게 말해 버리니 키타 짱은 포기한 듯이 눈썹을 내리고 그렇지 하고 손을 잡아 주었다. 나는 걷는 스피드를 키타 짱과 맞추어 조금 거리를 좁혔다. 물론 저 두 사람만큼은 아니고, 아주 조금.

 "아, 방금 키스했다."
 "아, 아무리 그래도 친구 사이에 키스는 안 한다고!?"
 "네 네, 정말이지. ……볼에 정도는 하지 않을래요?"
 "안 해!"

 일갈당해서 침울해져 있으려니 카페에 도착했다. "네 명이요~♡"란 달다구리한 우리 리더에게 확연히 점원은 굳은 웃음을 띄워서 불쌍하게 생각했다. 안내받은 곳은 구석 중에서도 구석의 4인석. 마치 눈에 안 좋다고 말하는 듯한 대응에 나는 신음한다. 뭘로 할래~?♡ 라느니 맞은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는 이제 그만 안 들리는 척을 하고 싶다.

 "히토리 짱은 뭘로 할래?"
 "저는, 글쎄요. 오므라이스려나."
 "정말로 오므라이스 좋아하는구나. 그럼 나는 햄버그로 할까."
 "왜요? 이쪽에 주문요리 있는데요?"
 "바보 취급하는 거야?"

 주문을 마치고 한숨 돌렸다. 결국 키타 짱은 햄버그를 주문했고 앞의 둘은 빅 하트 팬케이크란 걸 주문하고 있었다. "커플끼리 먹으면 계속 행복해질 수 있대~♡"라니. 눈앞에서 팬케이크를 절반으로 쪼개 주고 싶다.

 "히토리 짱 햄버그 좋아하잖아."
 "네?"
 "나눠 먹을 수 있겠다 싶어서. 그리고 오늘은 햄버그 기분이야."

 이런 부분을 상냥해서 좋아한다. 제대로 좋아한다. 심장이 빨리 뛰고 얼굴이 조금 붉어진다. 평소엔 이러쿵 저러쿵하는 주제에 이럴 때에만 나를 소중히 여겨 주니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고개숙이고 있으니 앞에서 놀림이 날아온다. 나는 둘을 노려보고 둘이 입고 있는 스웨터에 눈을 향했다.

 "그 스웨터 대체 뭐예요?"
 "이거? 괜찮지~ I ♡ RYO♡ 꽤 비쌌어~"
 "나는 I ♡ NJK♡ 맘에 들었어."
 "아니 아니 그런 거 물어본 거 아니에요 왜 그런 걸 입고 오는 건데요? 좀 보세요 점원의 저 눈! 질겁하고 있잖아요!"
 "뭐 어때 질겁하게 두면 되지. 그치~?♡"
 "그치~♡"

 이 두 사람 대체 뭐야. 서로 바라보지 마. 서로 웃지 마. 분명히 바보 커플을 보여줘서 키타 짱이 그럴 기분이 들게 만든다고는 했다. 하지만 이 정도로 바보 커플을 보여줄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이래선 바보 커플이 아니라 그냥 바보다. 선배로서의 둘의 모습이 와장창 소리를 내면서 무너져 간다.

 "아, 아하하. 키타 짱도 저랑 커플룩 할래요? 동경하는 료 씨랑 똑같이요."
 "동경? 그런 사람 있었던가?"
 "으아앙, 니지카아."
 "오~구오구오구, 너무하네 참. 괜찮아? 료♡"
 "니지카아♡"
 "아~ 빨리 밥 안 오려나. 속 뒤집어지기 전에."

 이런 둘을 부럽다고 생각해 버리는 게 분하다. 눈 뜨고 볼 수 없는 광경이지만 이런 경험도 살면서 한 번은 해 보고 싶다. 히-짱♡하고 예쁜 목소리로 키타 짱에게 불리는 날에는 분명 나도 이-짱♡하고 부르고 말 것이다.

 "……이-짱이 뭐야? 혹시 이쿠요에서 딴 거야?"
 "흐악!! 아, 아아아아아아아!!! 아니에요!!"
 "……히토리 짱?"
 "아, 아~! 봐요! 밥  왔어요! 감사합니다!!"

 큰일이다, 마음의 소리가 흘러서 료 씨가 줍고 말았다. 옆에서 시커먼 키타 짱의 오라가 풍겨왔을 때 베스트 타이밍으로 점원이 요리를 가져와 주었다. 눈앞에 놓인 오므라이스는 무척이나 예쁜 계란에 치킨라이스가 감싸여 있었다. 맛있겠다 하고 입가가 풀어져 있자 반대편에서 자그마한 하트가 몇개고 날아온다.

 "에~, 반으로 나누기 싫다~♡"
 "그럼 양 끝에서부터 먹자. 그럼 안 잘라도 돼."
 "료 천재! 역시 천재 베이시스트♡"
 "칭찬해도 아무것도 안 나와♡"
 "정말 료~♡"
 "왜애 니지카~♡"

 빨리 먹기나 해.
 짜증나는 하트의 대군을 떨어 내면서 오므라이스에 숟가락을 푹 찔러 덥썩 입으로 옮긴다.  케찹이 너무나도 달콤하다. 일부러 보여 주고 있단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몰래카메라 비슷한 작전이니까 얼마든지 보여 줘도 된다곤 해도 이건 도를 넘었다. 이미 우리들을 위한 게 아니다.
 
 "자, 아~앙♡"
 "응, 맛있어 니지카♡"
 "꺄아~!♡ 나한테도 줄래?♡"
 "자, 아~앙♡"
 "음~!♡ 맛있어♡ 정말 좋아해 료♡"

 아~~~~ 좋겠다~~~~~. 나도 해 보고 싶다. 아~앙. 키타 짱한테 아~앙 받고 싶다. 나도 키타 짱한테 아~앙 해주고 싶다. 하지만 아~앙 따윈 안 시켜 주겠지. 하고 싶어라아, 하지만 참아야지이, 서러워라아.

 "히토리 짱, 아, 아~앙……."
 "!? 키타 짱……!?"
 "왜, 안 먹을 거야……?"

 포크에는 한입 크기의 햄버그가 올라가 있다. 나는 꿀꺽 침을 삼키고 천천히 입을 열었을 그 때.

 "여, 역시 친구 사이에 아~앙 같은 건 안 하지, 잊어버려."
 "아아아앙!!"

 무참하게도 키타 짱의 입으로 빨려들어간 햄버그를 소리지르면서 배웅했다. 왜. 대체 왜. 키타 짱. 아~앙 정도는 친구라도 해, 잘 모르지만. 절친이라면 할지도 모르잖아, 응?
 눈앞의 바보 커플을 노려본다. 거의 다 왔네♡라며 팬케이크를 착실하게도 양 끝에서부터 먹고 있는 두 사람은 착착 반죽을 위에 집어넣고 있다.

 "앗 이거 봐 료♡ 봐 봐, 먹다 보니까 I가 되고 있어♡ 사랑(* 아이)이네♡"
 "정말이네♡사랑이다♡이게 진짜 러브다♡"

 시끄러. 먹을 걸로 장난치지 마.
 오므라이스를 다 먹고 눈앞의 바보 커플과 같이 밖에 나오자 다음은 쇼핑몰에 가야 한다니 이제 지긋지긋해졌다. 이거랑 가게 안을 걷는다니 시선집중이다. 이래서는 역효과가 되고 만다. 그렇달지 이제 돌아가고 싶다. 작전 같은 건 아무래도 좋다.
 나는 그저 키타 짱과 애인이 되고 싶을 뿐인데 왜 이렇게도 신은 잔혹한 일을 하는 걸까. 나는 전생에 뭔가 큰 죄라도 범한 걸까. 선배 둘과 거리를 이 이상 없을 정도로 떨어뜨리고 키타 짱과 걷는다. 손은 더이상 이어져 있지 않았다.

 "저 둘이 평소에도 저랬던가?"
 "아니요. 뭐 아마 데이트 때는 저 정도인 거 아닐까요. 제가 있는 앞에서도 가끔 둘만의 세계에 들어가고."
 "아아 뭐 확실히. 평소에도 가끔 저런 세계 될 때 있지."

 아아 정말 이런 분위기가 되면 안 된다. 우리들은 저렇게 되지 말자 같은 바보 커플을 바보 취급하는 분위기. 이렇게 되면 끝장이다. 시합 종료의 공이 울려 퍼진다. 고마워 1300엔짜리 오므라이스. 좀 비싼 주제에 맛있었어.

 "히토리 짱도 누구랑 사귀면 저런 느낌이 될까."
 "그, 글쎄요. 하지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남이 그러는 거 보는 건 힘들지만요."
 "저 촌스런 커플 스웨터도?"
 "뭐 나쁘진 않을지도."

 키타 짱하고라면 저런 복장도 재밌을 것이다. 만약 쟤네들 너무 바보 커플 아니냔 말을 들어도 기분이 좋아진 나는 중지손가락 하나쯤 상대에게 세워 버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거 꽤 록하다. 라이브 때에도 똑같은 스웨터를 입고 싶다. 나도 키타 짱과 있을 때 정도는 바보가 되고 싶다.
 
 "키타 짱은 싫어요? 저런 거."
 "나는……상대에 따라 다르려나. 하자고 그러면 할지도."
 "헤에, 그렇군요."
 "왜."
 "아니, 뭔가. 신나서 하려나 싶었거든요."

 저 촌스런 스웨터를 입고 모든 걸 커플룩으로 한 키타 짱은 간단히 상상할 수 있고 옆에 서 있는 게 내가 아니라 모르는 누군가라면 하고 생각하면 울고 싶어진다. 키타 짱은 어쩌면 친구로서 나를 속박하고 있을 뿐일지도 모른다. 가끔 그런 사람이 있는 걸 다른 밴드와의 술자리에서 알게 됐다. 특히 인싸 여자. 나는 즉 어장이고 장난이고, 키타 짱이 보기엔 대단찮은 사람인 걸지도 모른다. 아니면 좋아하는 척을 해서 나를 결속밴드의 리드 기타인 채로 둔다거나, 그런 어쩔 도리 없는 걸 생각하기 시작하고 말았다.

 "신나서라니, 나 보기 좋은 건 좋아하지만 바보는 안 좋아해. 파티피플도 싫어하고."
 "지금 다방면으로 공격이……."
 "있잖아, 누구랑 사귀거나 그러지 마."

 정말 너무한 말을 한다. 나와 사귀어 달라고는 키타 짱은 말해 주지 않는다. 키타 짱 말고는 사귈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는데. 나를 그럴 기분으로 만들어 놓고 마치 자기는 관계 없다는듯이 말하는 게 참을 수 없이 싫었다.

 "……치사해요, 그런 거."

 괴로움에 키타 짱에게 그렇게 말하고 나는 키타 짱보다 조금 빠른 속도로 걸었다. 따라오지 말든가 하고 생각될 정도로 무책임한 태도로 걷는다. 하지만 키타 짱이 나를 쫓아오는 기색을 보이지 않자 나는 속도를 늦추어서 옆을 걸었다. 나는 이런 사람이었다.


 쇼핑몰엔 그럭저럭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둘을 뛰어넘을만한 커플과는 만나지 못했다. 적당한 가게에 들어가 옷이며 잡화를 본다. 그 다음 CD숍에 들르자 과도한 복장의 드러머와 베이시스트가 진지한 얼굴로 음악 얘기를 하니까 뇌가 이상해질 것 같았다.

 "으음, 예전보단 아는 게 많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내가 제일 문외한이랄지, 유행에 휩쓸리는 느낌이 들어."
 "그런 거예요. 너무 고집하는 게 많으면 인기도 안 따라오고요. 료 씨가 제일 좋은 예잖아요."
 "무슨 말 했냐, 봇치."
 "아뇨 아무것도."

 워어워어 진정시키는 니지카 짱은 결속밴드의 앨범을 손에 들었다. 가장 최근에 나온 그것은 판매량도 좋은 추세라서 점원이 쓴 듯한 광고문구도 붙어 있다. 료 씨는 요전에 음악방송에서 너무 긴장한 결과 딥한 내용을 너무 말해서 사회자를 두고 가 버렸다. 인터넷에선 그런 부분이 문제라고 그래서 료 씨는 3일정도 앓아누웠었다.

 "키타 짱은 그대로 괜찮아요. 니지카 짱하고 키타 짱으로 밸런스 맞춘단 느낌 있으니까요."
 "한때 심했었지, 결속밴드 밸런스 의미불명이라느니 작곡담당이 얼굴 좋은 주제에 너무 아싸라느니."
 "요즘은 꽤 줄었죠."
 "으, 오오……."

 료 씨는 얼굴이 파랗게 질려 있다. 트라우마가 될 정도면 그만두면 될 텐데. 또 하나 결속밴드의 유명한 부분이 있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이 바보 커플의 케미다. 료 씨가 니지카 짱한테 라이브에서 지분거리게 되고 나서 인터넷은 열기를 보였고, 아이돌이 아닌 진지한 록밴드니까 그것도 록하다는 걸로 나도 키타 짱도 어울리고 있다. 페스나 지상파 방송에 나갈 때는 하지 말라고 니지카 짱도 못을 박고 있으니까 아마 보기 거북한 일이 되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고 싶다. 인터넷에는 둘의 딥한 키스 사진이 넘쳐나고 있지만. 드럼을 막 치고 베이스를 튕기면서 하는 두 사람의 그건, 뭐라고 할까 확실히 록했다.

 "뭐 그래도 전 싫지 않아요. 라이브 영상 봐도 대단하다 생각하고요."
 "관객도 대단했죠, 꺄~라거나 오~라거나. 록해요."
 "이쿠요도 록을 이해하게 됐구나."
 "아~,  뭐, 응. 그건 록하지. 응, 록해 록."
 "아무렇게나 록이라고 하지 마세요……."
 
 이런 이상한 스웨터를 입고 있는 둘이지만 일단 악기를 들면 일류 밴드맨으로 확 바뀌니까 신기하다. 실제로 둘은 멋있다. 이 드러머와 베이시스트가 있었기에 결속밴드는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할 정도로.

 "올해 안에는 세계로 가서 후세까지 결속밴드를 남기자. 여기까지 왔으니까 우리들은 더 클 수 있어."
 "그렇지. 키타 짱도 봇치 짱도 더 잘할 수 있어. 물론 나도. 더 성장할 수 있으니까, 인생 걸자."

 하는 말은 되게 좋은데, 그 차림과 스웨터론 물거품이다. 하지만 결속밴드는 더 좋은 밴드가 될 수 있다. 곡을 많이 만들고 가사도 많이 쓰고, 그래서 더욱더 지명도를 올려서 전설의 록밴드가 되자. 동상이 만들어질 정도로 커서 스테이지 위에서 죽는 게 내 꿈이다.

 "키타 짱, 키타 짱도 같이 스테이지 위에서 죽기로 해요."
 "싫어."
 "키타 짜앙……."

 즉답한 키타 짱에게 풀썩 어깨를 떨구고 그 뒤에 한동안 점내를 둘러본 후 CD숍을 나왔다. 쇼핑몰 통로를 천천히 걸으면서 나는 문득 생각한다.

 이 상태로 수족관에서 고백이라니 무리 아니야?
 
 키타 짱은 아까부터 좀 식은 분위기고 나도 저 두사람을 보고 슬슬 위가 부글부글하고 있다. 뭔가 방법은 없을까, 이제부터 그런 무드를 만들지 못하면 내게 승산은 없어져 버린다. 뭔가, 뭔가 좋은 방법이…….
 옆의 키타 짱을 슬쩍 엿본다. 걱정스런 눈을 하고 있다. 걷는 속도도 아까보다 살짝 느리다.
 아아 끝장이다! 이제 틀렸어! 선배들을 상어한테 밥으로 줄 수밖에 없어!
 아이고 하면서 고개를 숙이며 걷다가 하나 생각이 났다. 아예 둘을 놓고 다른 곳에 가 버리자. 어차피 계획은 파탄났으니까 둘은 멋대로 데이트하게 두면 된다. 나는 키타 짱의 손을 잡았다. 페리도트가 완만한 동작으로 올려다본다. 나는 거기서 그녀에게 마법의 말을 건넸다.

 "키타 짱, 더 재밌는 데로 가요."
 "뭐? 재밌는 데?"
 "네, 저런 둘의 데이트에 어울리느니 저랑 같이 다른 데 가요."
 "잠깐만, 히토리 짱!?"

 나는 키타 짱의 손을 잡은 채로 반대 방향으로 뛰쳐나간다. 두 사람 분의 스니커는 쇼핑몰을 경쾌하게 울리며 밖에 나와서 바로 눈앞의 버스정류장에 멈춰 있던 버스에 올라탄다. 둘이 앉는 의자에 앉아서 안절부절 못하는 기분으로 키타 짱을 봤다. 데이트 코스는 버려 버리고 전부 새로 만들어 버리자. 우리들 데이트는 이제부터니까.

 "어디 가는 거야?"
 "지금부터 저희들은 애인인 척을 할 거예요."
 "어, 응? 갑자기 뭐야."
 "저 생각해 봤거든요, 그런 바보 커플이 재밌어 보였단 말이에요? 그럼 저희들도 바보 커플 흉내를 내면 더 재밌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응? 뭐?"
 
 버스가 출발한다. 일단 역으로 돌아가자. 그리고 안에 입점해 있는 패스트 패션에서 커플룩을 코디해서 도쿄 거리를 걷는 거야. 그럼 분명 재밌을 거다. 키타 짱도 애인인 척이라면 분명 즐거워해 줄 테니까.

 "오늘만, 오늘만이에요. 내일부터는 친구로 돌아갈 테니까, 가끔은 괜찮잖아요."
 "……뭐어, 가끔은 괜찮을지도."
 "그럼 역으로 가요. 오늘은 사진도 잔뜩 찍고, 단 것도 많이 먹고, 밤까지 놀아 버려요."
 "응, 그러자!"

 처음으로 키타 짱이 웃는 얼굴이 되었다. 시트 아래에서 잡은 손을 꼭 쥐자 열이 부풀어올라 에헤헤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자 키타 짱도 웃어 준다. 어깨를 붙이자 달콤하고 좋은 냄새가 났다. 향수도 섬유유연제도 아니라 키타 짱 자신의 냄새였다.

 "아, 근데 이-짱은 그만둬. 그냥 싫어."
 "에, 아, 네……."

 아무리 그래도 생각이 짧았나, 하고 나는 조금 반성했다.


 신주쿠 역에 돌아와서 가까운 패스트 패션 스토어에 들어가 커플룩을 한다. 그렇다곤 해도 아무리 그래도 그 둘 정도는 아니고 평범하게 복장을 똑같이 할 뿐이다. 키타 짱은 즐거운 듯이 옷을 고른다. 가을이기도 해서 카멜색 코듀로이 와이드 팬츠에 오버사이즈 와이셔츠와 카키색 베스트를 걸쳐 똑같이 했다. 이거라면 그렇게 주장이 세지도 않고 가을다움도 연출할 수 있다. 어디까지나 그냥 똑같이 맞췄을 뿐이란 느낌을 전면에 냈다.

 "귀여워, 히토리 짱."
 "그, 그런가요. 키타 짱도 엄청 귀여워요."
 "고, 고마워……. 그럼 가자."

 계산을 마치고 옷을 갈아입은 뒤 손을 잡고 신주쿠 거리를 걷는다. 부드러운 손바닥을 잡고 가볍게 흔들자 키타 짱은 즐거운 듯이 웃었다.
 애인다운 것. 확실히 커플룩도 손을 잡는 것도 애인답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부족하다. 뭔가 없을까 생각하다 생각이 났다. 나는 키타 짱의 옆얼굴을 지긋이 바라본다.

 "이, 이쿠요 짱."
 "뭐?"
 "시, 싫으면 괜찮아요. 못 들은 걸로 해 주세요."

 나는 고개를 숙이고 잡은 손에 힘을 주면서 걷는다. 승산은 없다. 아마 안 되겠지 생각하면서 한 제안이었다.

 "싫어."
 "그, 그쵸 죄송해요 저 같은 사람이 키타 짱을 이름으로 부르다니, 죄송해──"
 "하지만 애인이라면 허락해 줄게."
 
 나도 모르게 고개를 들고 그녀의 얼굴을 본다. 부끄러운 듯이 눈을 돌리면서 이쿠요 짱도 내 손을 꼭 잡고 있었다.

 "괘, 괜찮아요?"
 "그치만 애인이잖아? 그럼 성은 거리감 있어 보이고, 나도 이름으로 불리고 싶어."
 "이, 이쿠요 짱!!"

 나도 모르게 외치듯 말해 버린 그 말에 지나가는 사람의 주목이 모였다. 순식간에 빨갛게 물든 이쿠요 짱 얼굴을 보고 저질러 버렸다 하고 순식간에 후회했다.

 "정말! 바보! 뭐 하는 거야!"
 "아, 죄죄죄송해요!" 기뻐서, 정말로! 죄송해요!"
 "빨리 가자! 히토리 짱 바보!"
 "죄송해요오!!"

 이쿠요 짱에게 끌려 우리들은 뛰기 시작해 역앞의 대로를 달려나간다. 다음 장소 같은 건 안 정했다. 하지만 벌써부터 돌아가는 건 말도 안 된다. 놀 수 있는 곳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자 그게 눈에 들어왔다.

 "아, 오락실."
 "이, 일단 들어갈까요."

 커다란 오락실에 빨려들어가듯이 들어가자 점내는 인형뽑기의 엄청난 소리가 귀를 뚫고 들어와서 이건 밴드맨 귀에 나쁘겠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평소에 이런 곳에 안 오는 나와 달리 이쿠요 짱은 익숙한 건지 즐거운 듯이 인형이나 피규어가 쌓인 기계를 둘러보고 있었다.

 "신경 쓰이는 거 있어요?"
 "으음, 나 이런 거 잘 못해서……. 매번 손해만 보고 끝나거든."

 쓸쓸하게 웃는 이쿠요 짱에 가슴이 불편해진다. 어떡할까 둘러보다 귀여운 개 인형이 경품인 인형뽑기를 발견했다. 옛날에 공략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아마 그렇게 어렵지 않겠지 하고 그 앞에 서서 돈을 넣고는 키타 짱은 내 뒤에서 가만히 암의 움직임을 바라보고 있었다.
 개의 목에는 목걸이가 있어서 틈이 있었다. 아마 그 사이를 노리는 거겠지 하고 암이 열리는 움직임을 계산해서 암을 움직이자, 노린 대로 암 끝이 목걸이 틈에 들어가 개가 들어올려졌다. 그대로 구멍에 떨어지자 경품 구멍에서 인형을 꺼내 이쿠요 짱에게 건넨다.

 "드, 드릴게요."
 "어, 어!? 고, 고마워! 대단해! 한 번만에!?"
 "에, 에헤헤, 뽑아 버렸네요."
 "대단해 히토리 짱! 어떻게 한 거야!?"
 "처, 처음 한 거였는데요, 옛날에 공략 영상을 본 적이 있어서."
 "히토리 짱은 이상한 데서 천재라니까……."

 잔뜩 이쿠요 짱에게 칭찬받아서 기분이 좋아져 버린다. 에헤헤 하고 입가가 풀어져 있으려니 "그럼 배워 볼까." 하고 이쿠요 짱이 고양이 인형의 기계 앞으로 이동했다. 한 번 해 볼게! 라고 말하고 이쿠요 짱이 돈을 넣고는 암을 움직인다. 왼쪽으로 움직인 암이 안쪽을 향한다. 장소는 아주 좋다. 아래로 뻗은 두 개의 집게발은 인형을 붙잡고 들어올렸다. 그대로 구멍에 떨어질까 생각했더니 중간에 툭 떨어져 버렸다. 한숨을 쉰 이쿠요 짱의 등 뒤에 붙어서 나는 돈을 넣고 그녀의 손을 위에서 감쌌다.

 "히, 히토리 짱……!?"
 "이 인형, 배에 태그가 달려 있어요. 게다가 벌어져 있으니까 거기를 노리면 아마 걸려 줄 거예요."
 "그, 그런 어려운 일이 가능한 거야……? 엄청 어렵지 않아……?"

 태그 부분에 암이 닿도록 조정하면서 왼쪽으로 움직여서 이쿠요 짱의 손을 안쪽으로 움직이는 버튼에 올렸다. 그 위에서 또 눌러서 암을 인형에 접근시킨다.

 "히, 히토리 짱, 숨이 귀에……."
 "어, 아, 죄송해요."
 "으응, 나, 나도 미안해."

 내려온 암은 태그에 들어가 인형을 들어올려 구멍에 떨구었다. 경품 구멍에서 귀여운 고양이 인형을 꺼내서 이쿠요 짱에게 안긴다.

 "엄청나! 두 개나 뽑았어! 히토리 짱은 공부랑 일하는 거 말곤 뭐든지 할 줄 아는구나!"
 "공부랑 일하는 거 거의 진리 아니에요……? 이거 둘 다 이쿠요 짱 드릴게요."
 "그래도 돼!? 고마워! 소중히 간직할게! 잘 부탁해! 히토리 짱 2호, 3호!"
 "역시 무거워……."

 인형을 두 개 손에 넣은 우리들은 점원에게 커다란 봉투를 받고 오락실 안으로 나아갔다. 안에는 코인 게임이나 아케이드 게임 등이 많이 있었다. 오락실 같은 덴 처음이지 하고 다시금 하교하는 인싸나 커플밖에 없는 그 광경을 바라본다. 옛날 나였으면 절대로 오지 못했겠지.

 "있잖아, 승부하지 않을래?"
 "좋은데요, 뭘로 할래요?"
 "후후, 저거야."

 이쿠요 짱이 가리킨 건 자주 있는 레이스 게임이었다. 옛날에 엄마랑 쇼핑 갔을 땐 게임코너에서 이것만 탔었지. 그렇다고 해도 벌써 10년쯤 전 얘기인데. 지금은 어떤 사양이 됐을까. 앉은 느낌은 전혀 다르지 않았다.

 "나 이거 꽤 잘해."
 "저도요. 이쿠요 짱한텐 안 져요."
 "흥, 말했겠다!"

 이상한 사진을 찍고 이쿠요 짱은 제일 어려운 코스를 골랐다. 내 캐릭터는 만능 밸런스 타입이고 이쿠요 짱은 스피드 중시. 여기서 질 수는 없지 하고 이쿠요 짱을 슬쩍 곁눈질로 바라보자 꽤 자신이 있어 보이는 눈동자가 커다란 화면을 노려보고 있다.
 카운트다운이 시작되고 우리들 차가 하양과 까망의 격자무늬에서 튀어나갔다. 두 대 다 순조롭게 미끄러져 코스를 달리고 있다.

 "이쿠요 짱 꽤 하네요, 하지만 제가 틀림없이 더 잘해요."
 "히토리 짱은 이런 게임 별로 해 본 적 없잖아."
 "어렸을 땐 많이 했어요. 엄마가 쇼핑하는 거 기다릴 때라든가."
 "흐응, 그래도 요즘 건 모르겠지!"
 
 그래픽이 예뻐진 정도 아닐까 생각하고 있으려니 아이템이 날아온다. 한 번 그걸로 뒤집어지자 컴퓨터에게 따라잡혔지만 금방 복귀해서 2위에 돌아왔다. 아이템을 먹자 번개였고 이건 잘 됐다 하고 바로 던져서 공격을 받은 순간에 이쿠요 짱을 추월한다. 1바퀴째는 내가 선두다. 2바퀴째에 들어서자 키타 짱은 계속 내 뒤를 딱 붙어 따라왔다.

 "정말! 히토리 짱 거기 비켜!"
 "이쿠요 짱이 그래도 안 비켜요!"

 접전이 이어진다. 이제 우리들은 컴퓨터를 놔두고 독주상태였다. 21세와 20세가 진심이 되어서 핸들을 쥐고 화면에 들어가려고 하는 모습은 분명 옆에서 보면 이상할 것이다.
 서로 한 발도 양보하지 않는 모습으로 레이스는 3바퀴째에 접어든다. 아이템을 먹고는 이쿠요 짱에게 마구 던지고 또 그녀도 막 던진다. 먹어라 먹어라! 하는 사이에 자동차는 골에 다가갔다. 이대로 돌진하면 내 승리가 확정된다. 골이 보였다.

 "제 승리예요!"

 그러자 이쿠요 짱이 옆에서 "후후후." 하고 대담하게 웃었다. 뭣!? 하고 나는 핸들을 쥐면서 그녀를 보자 이쿠요 짱 또한 나를 본다.

 "내 승리야."

 이쿠요 짱이 아이템을 쓰자 탄환처럼 차가 모습을 바꾸었다.

 "아아아!! 잠깐!! 잠깐!! 잠깐!!"

 나를 가볍게 앞지르고 골을 향해 일직선으로 달려갔다. 키타 짱의 차가 골인하자 이어서 내가 골인한다. 핸들에 엎드려 패배를 맛보고 있자 이쿠요 짱은 즐거운 듯이 옆에서 웃고 있었다. 별로 져도 상관 없다고 생각되었다. 그 웃음이 무척 귀여웠으니까.

 "재밌었어요?"
 "응, 정말 재밌었어. 특히 마지막의 히토리 짱 얼굴. 그렇게 당황한 얼굴 처음 봤을지도."

 아하하! 하고 경쾌하게 웃는 키타 짱에 나도 웃는 얼굴이 된다. 기계에서 떨어져서 우리들은 다시 손을 잡았다. 인형뽑기 사이를 누비면서 나는 이쿠요 짱에게 묻는다.

 "그러고 보면 승부라고 그랬는데, 이기면 뭘 할지 정해 둔 건가요?"
 "응. 사실은 벌써 정해 뒀어."
 "그게 뭔데요?"

 이쿠요 짱은 손을 놓고는 내 팔뚝을 끌어안았다. 두근거리면서 이쿠요 짱을 보자 싱긋 웃고 있다. 애인 사이가 하는 일, 뭘까. ……설마, 설마!!

 "서, 서서서설마 호──"
 "술 마시러 가자."

 위험했다!!! 좀만 더 했으면 차가운 눈빛을 받을 뻔했다. 말할 게 못 되는군, 그 이전에 하는 법도 모르고.

 "……히토리 짱은 지금 뭐라고 말하려고 한 거야?"
 "매오징어(* 호타루이카)라도 먹으러 가나요라고 하려고 한 거예요."
 "이럴 때는 술술……. 뭐 어때, 근처에 맛있는 바가 있으니까 가자."

 반쯤 끌려가듯이 그곳을 향한다. 나는 이쿠요 짱 앞에서 술을 마시는 건 얼마만일까 되돌아본다. 아마 반년은 안 마셨지 하고 기억을 떠올리고 떡이 되지 않게 조심해야겠다고 자신을 다그쳤다.


 메뉴를 열자 멋있는 밥에 멋있는 술. 바 같은 가게에 보통 나는 들어가지 않는다. 역시 이쿠요 짱이네 하고 익숙한 듯한 그녀와 카운터 석에 나란히 앉아 속닥속닥 이야기했다.

 "히토리 짱은 이런 가게 와 본 적 있어?"
 "그게, 딱 한번."
 "헤에, 의외네. 료 씨랑 간 거야?"
 "아니요, 같이 공연한 밴드의 기타인 여성분이랑."
 "……응?"

 온화한 분위기의 여성이었다. 그야말로 기타를 친다고 하면 의외란 말을 들을 것 같은. 딱 이쿠요 짱 같은 타입의 사람. 내 팬이래서 그럼 한잔 갈래요 같은 말을 해 버렸지만 그 밤은 즐거웠다. 음악 얘기를 많이 할 수 있어서.

 "……꽤 즐거웠나 보네."
 "네, 정말로요. 상대도 기타를 잘 쳤거든요. 그러니까 기타 얘기를 많이 하고 좋아하는 아티스트나 기타리스트나, 그것 참──"
 
 이쿠요 짱의 손이 내 턱에 뻗더니 억지로 얼굴을 그녀 쪽으로 돌려서 입술이 막혔다.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야 입술을 막은 건 이쿠요 짱의 입술이었으니까. 즉 키스다. 나와 이쿠요 짱의.
 조금 뒤에 얼굴이 떨어져서 뾰로통한 표정으로 노려본다. 나는 움직일 수 없었다.

 "지금은 내가 히토리 짱 애인이야. 그럼 알지?"
 "흐에, 그게, 아, 아, 흐."
 "정말! 다른 사람 얘기 하지 말란 뜻이야!"

 정말이지, 라면서 이쿠요 짱은 자못 키스가 익숙한 듯이 행동했다. 나는 그것에 마음이 차가워진다. 그치만 내 퍼스트 키스였는데, 부끄러움도 기쁨도 이쿠요 짱한테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내 처음을 이쿠요 짱이 받아 주었다. 그것만으로 충분히 기쁘다.
 나는 와인, 이쿠요 짱은 레드아이를 시키고 밥은 잘 모르겠어서 생햄을 주문했다. 음료는 금방 나와서 먼저 건배를 한다. 술은 2잔이 한계니까 언제나 할짝이듯이 마시면서 취기가 도는 걸 늦추고 있었다.

 "좋겠다, 이쿠요 짱은 술 세서."
 "세지는 않아. 이지치 선배 쪽이 나보다 훨씬 세고."
 "그래도 저보단 세잖아요. 전 금방 취하니까 별로 술 못 즐긴단 말이에요."

 마실 수 있냐 없냐라면 틀림없이 마실 수 있는 편이 즐겁다. 술이 세단 거 멋있고, 금방 떡이 되는 건 폐도 끼치고 무엇보다 즐겁지 않다. 술의 기세를 빌려서 모두와 좀 더 얘기하고 싶은데 빌리면 빌릴수록 점점 영문을 모르게 된다.

 "나는 금방 취해 버리는 히토리 짱도 좋아. 거하게 취해서 혀 꼬이고 집적거리기 시작하는 것도. 마지막은 좀 걱정이지만."
 "이쿠요 짱도 취하면 누가 됐든 상관 없이 찰싹 달라붙고 그러잖아요."
 "안 그러거든. 후후, 귀여워라."

 이쿠요 짱은 레드아이를 다 마시고 맥주를 주문했다. 나도 이쿠요 짱에게 이끌려 와인을 다 마신다. 머리가 어질했다. 생햄이 눈앞에 놓여서 집어먹자 고기의 감칠맛과 짭짤함에 알코올이 마시고 싶어진다. 적당한 이름의 칵테일을 점원에게 말하자 이쿠요 짱은 "너무 많이 마시면 안 돼?"라고 내게 못을 박았다.

 "있잖아, 이쿠요 짱. 우리들 벌써 20살이래. 만나고 5년 정도 지났네."
 "응, 그러게. 결속밴드도 꽤 커져서 정말 다들 대단해."
 "이쿠요 짱이 제일 대단해. 아무것도 모르는 완전 초보자 상태에서 여기까지 왔는걸."
 "나 같은 건 하나도 안 대단하지. 전혀 안 대단해."
 "대단해, 이쿠요 짱."

 도착한 칵테일을 한 모금 마신다. 내 몸이 휘청휘청 흔들린다. 무릎에 올려진 이쿠요 짱의 손을 위에서 감싸쥐자 가늘어진 페리도트가 나를 본다. 반대편 손이 술을 입으로 옮기고 있었다.

 "이쿠요 짱은 나 좋아해?"
 "응, 좋아해. 계속 좋아했어. 한참 전부터 좋아했어."
 "아싸, 나도 이쿠요 짱이 좋아. 한참 전부터 정말 좋아했어."
 "후후, 히토리 짱도 참 귀엽다니까."
 "이쿠요 짱이야말로."

 칵테일을 마신다. 취기가 돈다. 나는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걸까. 점점 잘 모르게 되기 시작했다. 그래도 몰라도 된다. 깨면 분명 재미없어질 거다. 우리들은 간단히 하이해지는데 거기서 잘 내려오는 법을 모른다.

 "취해 버렸어?"
 "아니요. 아직 더 마실 수 있어요."
 "그럼 한 잔만 더 마실래?"
 "마실래. 이쿠요 짱도 마시자."

 메뉴를 열자 글자가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 애초에 칵테일에는 밝지 않다. 술에도. 그럼 알고 있는 걸 시키면 된다. 마침 이쿠요 짱이 마시고 있는 맥주라든가.

 "맥주, 맥주 마실래."
 "맥주가 좋아? 별로 안 좋아했었잖아."
 "괜찮아, 맥주가 좋아. 이쿠요 짱이랑 같은 게 좋아."
 "같은 거라면 지금 하고 있잖아."

 뭐가? 아아, 복장인가. 그러고 보면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그거 기쁜걸. 이쿠요 짱과 똑같다. 깊게 연결된 느낌이 든다. 하지만 더 깊게 연결되고 싶다. 하지만 그건 '흉내' 범주에는 안 들어가네. 그럼 이건 허락될까.
 이쿠요 짱의 어깨에 손을 놓고 이쪽을 향하게 하고는 입술을 겹쳤다. 마침 술을 눈앞에 놓은 점원은 아무런 일도 없었단 얼굴을 하고 있었다.

 "……참, 여기 가게거든."
 "이쿠요 짱도 아까 했으면서."
 "정말, 완전히 취했구나."
 "아니야."

 황금색 탄산에 입을 대고 눈썹을 찌푸린다. 맛있지 않다. 하지만 알코올이다. 이젠 맛 같은 건 잘 모르겠으니까 뭐든 마찬가지였다. 절반 정도 한번에 마시고 후우 숨을 내쉰다. 지금이라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쿠요 짱, 좋아해. 좋아해. 엄청 좋아해, 누구보다 좋아해. 사랑해."
 "나도 좋아해, 히토리 짱."
 "목소리도 손가락도 얼굴도 성격도 뭣도 전부 좋아해."
 "나도. 히토리 짱의 기타를 좋아해."

 나는 뾰로통해져서 노려본다. 또 맥주를 마셨다. 잔이 비었다. 똑같이 빈 옆 잔을 멍하니 바라본다. "나갈까." 하고 내 어깨를 부축하면서 이쿠요 짱은 계산을 하고 가게를 나와 주었다.
 도쿄의 거리는 여기든 저기든 사람으로 넘쳐나고 있다. 별이 보이지 않는 신주쿠의 밤하늘은 먹물을 엎은 것처럼 새까매서 위에서 흘러내려올 것 같았다. 어깨로 이쿠요 짱의 온기를 느껴서 끌어안듯이 하고 걷는다. 항상 이쿠요 짱의 냄새가 났다.

 "이쿠요 짱, 이쿠요 짱."
 "왜애?"
 "더 재밌는 거 해요."
 "예를 들어?"

 예를 들어 뭘 할까. 예를 들어, 예를 들어. 이제 술은 안 마시는 편이 좋겠지. 이 이상 마시면 아무리 그래도 기분 나빠질 테고, 재밌지 않아질 거다. 다행히 도쿄는 여러가지로 넘쳐나니까 여러가지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애인다운 것의 최정점에 있는 일은 다음번에라도 좋다. 그건 분명 재밌을 테지만 아직 때가 아니다.

 "바다, 바다에 가요."

 밤바다는 분명 먹물 그 자체일 것이다. 보름달인 오늘은 수면에 달이 떠 있을지도 모른다. 안 떠 있어도 별로 상관 없다. 이쿠요 짱과 함께라면 분명 뭘 해도 재밌을 테니까.

 "지금부터 바다 가는 거야? 벌써 가을인데?"
 "이쿠요 짱이랑 하면 뭘 해도 재밌어. 같이 가자, 싫어?"
 "……싫진 않아."

 나는 적당히 택시를 세우고 둘이서 탔다. 장소를 말하자 이상한 얼굴이 돌아왔다. 커플룩을 하고 있어서 그럴까, 동반자살 같은 거 안 해. 아직 하고 싶은 일도 있고.
 머리가 어질어질 휘청인다. 이제와서 술이 돌기 시작한 모양이다. 이제 꿈인지 현실인지 모르겠다. 휘청휘청 차의 좌회전 우회전에 몸이 흔들린다. 왼팔이 내 어깨를 붙잡고는 끌어당겼다. 이쿠요 짱이 나를 지탱했다. 예쁜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몸은 괜찮아?"
 "괜차나. 있자나 이쿠요 짱, 바다 가면 뭐 할래, 수영할래? 분명 재밌을걸."
 "후후, 꽤 취했나 보네. 아직 더 걸릴 테니까 잠깐 눕자."

 이쿠요 짱이 지탱하던 손을 떼더니 내 몸을 눕히고 허벅지 위에 머리를 올려 주었다. 가늘고 지방이 없어서 딱딱하지만 그래도 이쿠요 짱 몸이라는 것만으로 안심한다. 다가가 부비자 옆머리를 가늘고 예쁜 손이 쓰다듬어 주었다.

 "얼굴 새빨개, 좀 뜨거워."
 "이쿠요 짱 허벅지 딱딱해."
 "칭찬으로 받아 둘게. 나 말고 다른 사람이랑 마실 때는 이렇게 마시면 안 돼?"
 "나도 알아, 이런거, 이쿠요 짱 앞에서만이야."
 "……그래."

 택시가 목적지에 도착했다. 나는 카드로 결제하고 밖에 나오자 바다 냄새가 먼저 코를 찔렀다. 이전에 인터넷에서 본 도쿄의 해수욕장. 휘청휘청 다가가서 제방의 계단을 오르고는 모래사장을 내려다보았다. 사람 하나 없는 밤바다는 어른 둘이서 뛰놀기에는 딱 좋은 장소였다.

 "이얏호! 바다다!"

 나는 신발과 양말을 제방에 벗어던지고 맨발로 두 손을 올리면서 파도가 들이치는 곳을 향해 달린다.  혈액순환이 좋아져서 체온이 2도 정도 오른 것처럼 느껴진다. 구토감은 아직 없다. 앞으로는 모른다.
 부드러워서 발이 빠지는 모래언덕을 달려 넘어가 점점 발밑이 단단하고 축축해져 간다. 도쿄 거리의 불빛을 삼킨 밤의 바다는 먹물이진 않았지만 충분히 예뻤다.

 "히토리 짱! 정말, 갑자기 달리면 위험해!"
 "이거봐 이쿠요 짱! 엄청 예뻐! 봐봐!"

 그 야경을 본 이쿠요 짱은 대단하다고도 예쁘다고도 하지 않고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이쿠요 짱? 하고 내가 묻는다. 나를 본 이쿠요 짱은 다음 순간에 히죽거리면서 나를 밀어 넘어뜨렸다.
 풍덩. 차가운 바다에 잠긴다. 파도가 밀려오고 나가는 걸 등으로 느꼈다.

 "이쿠요 짱! 무슨 짓이야!"
 "후하, 아하하, 아하하하! 다 젖었대요!"
 "이쿠요 짱이 그랬잖아!"

 나는 복수라도 하듯이 이쿠요 짱의 손을 잡고 끌어당긴다. 둘이서 바닷물에 기세 좋게 잠기곤 같이 몸을 적셨다. 커플룩인 옷이 한 순간에 무거워진다.

 "했겠다? 받아라!"
 "어푸, 이게!"

 찰싹 찰싹 약한 파도가 밀려오는 속에서 우리들은 온몸이 흠뻑 젖었다. 자연히 입안에 들어간 바닷물은 짰고 아주 조금 달았다. 첨벙첨벙 서로 물을 끼얹는 동안에 지치기 시작해서 머리 뒤로 팔짱을 끼고 파도가 밀려오는 곳에 드러눕는다. 새까만 밤하늘이 평소보다 특별한 느낌이 들었다.

 "계속 가나가와에 있었으면 이쿠요 짱하고도 못 만났어."
 "가나가와에 있었으면 분명 다른 밴드의 기타리스트가 됐겠지."
 "그럴 리가 없어, 난 겁쟁이니까. 그러니까 아마 그대로 썩었을 거라 생각해."
 "히토리 짱의 재능은 묻히기엔 너무 눈부시단 말이야."

 취기의 피크를 지난 머리로, 똑같이 파도를 맞으면서 무릎을 끌어안고 앉은 이쿠요 짱을 올려다본다. 나는 가볍게 윗몸을 일으켜 그녀의 어깨에 손을 놓고 천천히 키스했다. 짭짤한 키스는 무척 달콤하고 바다 비린내가 난다. 입술을 떼자 진심으로 사랑스럽다는 듯이 가늘어진 눈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히토리 짱 머리카락 역시 예쁘다."
 "이쿠요 짱 머리도."

 뺨을 쓰다듬자 간지럽단 듯이 이쿠요 짱은 웃었다. 그 웃음에 나도 웃는다. 나는 마침내 억누르지 못하게 되어 버렸다.

 "이쿠요 짱, 나랑 애인이 되어 줘. 흉내가 아니라 진짜로. 응? 부탁이야."

 좋다고 말해, 응이라고. 그것만으로 괜찮으니까, 다음은 아무것도 말 안해도 좋으니까. 이쿠요 짱이 나를 좋아하는 건 알고 있으니까, 그냥 고개를 세로로 흔들기만 하면 돼. 나는 그걸로 모든 걸 알 수 있으니까.
 페리도트가 도쿄의 빛을 받아 일그러진다. 가느다란 손이 내 어깨를 밀었다.

 "미안해, 그건 못 해. 미안해."

 머리가 새하얘진다. 고백을 거절당하는 건 상정에 없었으니까. 이쿠요 짱은 반드시 좋다고 말해 줄 거라 생각했으니까.
 어깨를 민 손을 붙잡는다. 나는 이쿠요 짱을 매달리듯이 바라보았다.

 "알고 있어, 한밤중에 계속 내 방에다 나 좋아한다고 말하는 거. 이쿠요 짱 무겁고, 계속 나 좋아했던 거 알아, 나도 이쿠요 짱 좋아해. 그거 이상은 분명 없어, 근데, 왜 이쿠요 짱은 날 멀리하는 거야……?"
 "히토리 짱한테 나 같은 건 아까워. 그렇다고 누구 옆은 안 어울려. 히토리 짱은 혼자니까 강한 거야. 그러니까 사랑 같은 거 하지 마."
 "이쿠요 짱은 나 사랑하잖아."

 이쿠요 짱은 일어섰다. 차가운 파도를 맞는 나를 놓고.

 "……일방적으로 사랑할 뿐이야. 히토리 짱이 받아들여 주는 건 생각 안 해."

 슬슬 돌아가자며 이쿠요 짱은 내게 등을 돌렸다.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했다.
 이쿠요 짱의 등은 평소보다 훨씬 작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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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토라(虎) 님

원본 링크: 御託はいいから好きって言って | https://www.pixiv.net/novel/show.php?id=209511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