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몸이 지표에 격돌하기 직전에 리츠코의 오른손이 움찔하고 움직였다. 그 손끝에서 초록색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미키를 부드럽게 받아내, 살짝 그녀를 지면에 내렸다.
나와 하루카도 손을 잡고 미키를 쫓았다. 우리들이 그녀 옆에 내려와 서서 원래 교복 모습으로 돌아가자, 미키는 노곤한 듯이 눈을 떴다. 아이돌의 빛을 잃은 그 눈이 날 보고 엷게 웃음을 지었다.
"아~아……. 져 버린, 거야. 하지만 괜찮아? 졸리지……않아?"
"――졸리, 네."
한 번 눈을 감으면 이제 오랫동안 뜨지 못할 것 같다.
아이돌의 힘을 제어할 수 있어도 역시 잠자는 공주가 되는 운명에선 도망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시조 상과 아미, 마미가 다가온다.
"치하야……."
"괜찮아요, 시조 상. 분명 저는 백 년 후에 눈을 떠도 세계를 멸망시키는 일은 없을 거예요. 지금도 제가 뭘 위해 아이돌이 됐는지 제대로 기억하고 있어요."
"그런 게 아니라――"
"알고 있어요. 고맙, 습니다."
시조 상의 눈이 백 년 후의 세계를 걱정해서 그런 게 아니란 것은 안다. 하지만 위로도 동정도, 내겐 필요 없는 것들이다.
더욱 따뜻한 마음이 하루카의 왼손에서 전해져 온다.
"뭐가 뭔지, 전혀――"
"미나세, 상."
"너, 설마……."
다리를 끌면서 다가오던 미나세 상이 눈을 크게 떴다.
"미안하지만 너와의 약속은 못 지킬 것 같아. 미키가 잠자는 공주였어. 그리고, 나도."
그 말만으로 모든 것을 눈치챈 것 같았다. 미나세 상은 눈을 내리깔고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이기고 도망가겠다는 거야? ――나와 같은 시대를 살지 못했던 걸 후회하도록 해."
말로 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마음이 있는가 하면, 말 뒤편에서 전해지는 마음도 있다.
"……미키, 그런 거 이제 전부 시시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조금 부러워."
내가 미나세 상에게 대답하지 않고 있자, 미키가 대자로 누운 채로 말했다.
"미키, 당신은 계속 고독을 느끼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만, 사람은 꽤나 혼자가 되는 게 어려운 법이랍니다."
그런 미키에게 말을 건 것은 시조 상이었다.
"안경을 쓴 여성, 리츠코는 당신이 백 년 전에 구한 급우의 자손입니다. 당신의 얘기를 듣고 자란 그녀는 자신에게 능력이 있다는 걸 알고 바로 이 학원에 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리츠코는 이런 외진 곳에서 젊을 때부터 교사를 하고 있던 건가. 하나의 납득이 조용히 마음에 떨어진다.
"리츠코는 예전부터 말했습니다. 미키에게 처음으로 아침 인사를 건네는 건 자신이라고. 그리고 반드시 미키의 슬픔을 후세로 잇지 않겠다고."
"……리츠코, 상의 친절은 너무 알기 힘든 거야."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는 미키의 눈이 눈부신 듯이 얇아지고, 한 방울의 눈물이 유성처럼 떨어졌다.
"아이돌이나 잠자는 공주 뿐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의 소망과 마음이, 이 학원에는 모여 있습니다. ……이오리, 당신의 아버님도 그렇답니다."
"아버지가?"
시조 상의 말에 미나세 상은 놀란 듯이 얼굴을 들었다.
"당신의 아버님은 타카기 님과 만나 이 학원에 원조를 청했습니다. 자신에게는 아무런 이득도 없는데도."
"그래서 아버지는 내가 아이돌이 되겠다고 했을 때……."
또 하나 의문이 풀린다. 이 학원이 너무나 적은 학생수로도 어떻게든 존속할 수 있던 건 어떤 시대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솔직히, 지금은 그런 것보다――
"미나세 상, 다른, 애들은……?"
"여기에 없는 애도 있으니까 뭐라고 말은 못하겠는데. 학원이 푸른 빛에 휩싸였을때 분명히 치유의 힘을 느꼈어. 그 전에 이미 늦지 않았다면, 분명 괜찮아."
미나세 상의 말에 안도가 퍼진다. 안심하자 동시에 잠기운이 강해진다.
이제 분명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시대엔 없는 것이겠지.
"그럼 난 이만 갈게."
"――치하야! 실패하면 가만 안 둘 거야. 백 년 후에도 2백 년 후에도, 내가 무덤 밑에서 나와서 널 날려버릴 테니까."
"후훗. 내가 인정한 네가 그렇게 말해준다면 안심이야."
"누, 누가!"
딴 데를 보는 미나세 상에게 쓴웃음을 지어 보인다. 그녀의 눈에 작은 눈물 방울이 반짝였던 것은 꺼내지 말아 주자.
고마워, 미나세 상.
결국 입에 담을 일은 없었던 그 말을 추억과 함께 마음속에 소중히담아 둔다.
아즈사 상, 타카츠키 상, 하기와라 상, 가나하 상, 마코토, 그리고 리츠코.
모두에게도 제대로 감사와 이별의 인사를 하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시간은 없어 보였다. 나머지는 미나세 상과 다른 사람들에게 맡기자.
내가 사랑한 세계를 계속 지켜줄 사람들에게.
발을 돌려 구교사 쪽으로 걸어간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하루카만이 따라온다.
벚나무 아래, 지하로 이어지는 나선 계단. 돌로 된 그것을 한 걸음씩 밟아 내려간다.
하루카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하는 데이트가 이런 음침한 곳이라니. 그녀에게 미움받고 말까. 문득 생각한 것에 작은 웃음이 입에서 흘러나왔다.
시조 상이 있었던 방 반대편으로 걸어 나간다. 양초가 비추는 복도 막다른 곳에 열려 있는 어두운 방. 분명 내가 저번에 꿨던 꿈은, 여기에 끌려온 미키의 과거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아무도 없는 폐허가 된 학원이, 역시 미래라는 게 됐을 터인데.
꼴 좋다. 다들 분명 무사할 거야. 운명 같은 거 내 알 바 아냐.
――유. 나, 드디어 네게 자랑할 만한 게 생겼어. 그걸로 용서받을 수 있으리라곤 생각 안 하지만. 사실은 멀리서라도 널 지켜보며 살고 싶었는데.
이 두 손은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기만 하는 게 아니다. 마지막까지 누군가를 지킬 수도 있었다.
옆에 있는 소중한 사람에게 시선을 향한다.
옆에서, 정말 좋아하는 꽃이 핀다.
"치하야 짱, 나 있지, 치하야 짱과 보냈던 시간, 정말로 행복했어."
하루카가 부드러운 봄의 햇살 같은 웃음을 지으며 음미하듯이 말했다.
"아이돌인 내가 아니라. 잠자는 공주로서 사라진 나도 아니라. 내가, 나 자신이 손에 넣은 소중한 마음이야. 짧은 생을 받은 내가, 확실히 여기에 있었던 증거야."
하루카의 마음은 내 것과 같은 모습일까. 자신조차 잘 표현할 수 없는 이 마음은.
"치하야 짱. 날 잊지 말아줘. 내가 여기에 있었단 걸. 내가 치하야 짱을 소중히 생각하고 있었단 걸."
달라도 상관 없긴 하지만. 내 마음은 그걸로 변하는 게 아니니까. 하지만 조금 신경쓰였으니까. 더 가까이서, 강하게 널 느끼고 싶어졌으니까.
"그럼 분명, 나――"
하루카의 머리를 끌어당겨서 작은 꽃잎 같은 입술에, 살짝 내 그것을 겹친다. 아주 잠깐 하루카의 전신이 경직하고, 놀라서 크게 뜨였던 눈이 천천히 감겼다.
――다행이다.
입술로 말을 막아도. 네가 하고 싶었던 말은 알 수 있어. 너와 내 마음은 이렇게나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으니까.
하루카의 두 팔이 내 등에 둘러졌다.
처음 한 키스는 하루카의 눈물 맛이 났다.
또 하루카는.
울 수 없는 나 대신에 눈물을 흘려 주는 거겠지.
입술을 떼자 뺨을 벚꽃잎처럼 물들인 하루카가 한 걸음 물러서서 조금 화난 것처럼 입을 삐죽 내밀었다.
"너무해, 치하야 짱. 기습이라니. 그것 때문에 무슨 말 하려고 했는지 잊어버렸어!"
"하루카야말로 너무해. 일부러 짠 입맞춤을 제공해 주다니."
"이, 이건 아니야! 땀이야!"
"그래. 모처럼의 내 첫번째 키스는 땀 맛이었던 거구나."
눈을 부비면서 하루카는 조금 웃었다.
"약속할게, 하루카. 난 절대로 널 잊지 않아."
"――응!"
태양처럼 빛나는 웃음이 조금 눈부셔서 눈을 가늘게 떴다. 울고 있는 하루카도 화내고 있는 하루카도 귀엽지만. 제일 좋아하는 네 표정을 뇌리에 각인시킨다. 몇 백 년이 지나도 빛바래지 않도록.
"하루카――"
마지막에 뭔가 말하려고 했지만, 딱 맞는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하루카도 마찬가지인 듯, 음 하고 신음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린다.
"안녕, 은 좀 그렇지. 아까 밤이었으니까, 좋은 밤이야?"
"하지만 원래는 아직 낮이었는걸. 미키의 힘으로 밤의 장막이 내려왔을 뿐이고."
"그것도 그런가. 그럼 역시――"
하루카는 웃는다.
"좋은 아침이야, 치하야 짱. 백 년 분 먼저 말해 둘게."
나도, 웃는다.
"좋은 아침이야, 하루카. 내일의 네가 부드러운 아침 햇살에 감싸이기를."
분명 내 기도는 닿을 것이다. 아이돌의 힘을 얕보지 말아 주었으면 한다.
어둠 속으로 발을 내딛는다. 손을 대지도 않았는데 문이 닫혀 간다.
눈물로 눈을 빨갛게 물들인 웃음.
그것이 내가 마지막으로 본 하루카였다.
한 줄기 빛도 들어오지 않는 방 중앙에 검은 관이 놓여 있다. 꽤나 취미가 나쁜걸.
쓴웃음을 지으며 몸을 뉘어 보니, 과연 그렇게까지 나쁘진 않을지도 모른다. 분명 이건 산 자를 위해 만들어진 특수 제작품일 것이다.
어둠 속에서 눈을 감는다.
하루카에게 한 번도 좋아한다고 말하지 않은 느낌도 들지만. 제대로 전해졌겠지.
말해 뒀으면 좋았을 일들, 해 뒀으면 좋았을 일들, 몇 개인가가 떠오르지만. 딱히 후회할만한 것들도 아니다.
결국 벚나무 아래에서 읽었던 소설의 결말도 모르는 채가 되었지만.
지금의 나는 그들의 기분을 알 것 같기도 하니까. 눈을 떠도 다음은 안 읽어도 된다.
다음 백 년 후의 세계에서는 다른 취미를 찾아 볼까.
내가 저지른 죄는 없어지지 않지만. 사소한 기쁨을 맛보는 것쯤은 용서해 줬으면 한다.
……그렇지. 노래 같은 건 어떨까. 분명 다시 한 번, 노래를 진심으로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모처럼이니까 곡을 만들어서 가사도 써 보자. 처음은――새로운 잠자는 공주의 이야기를.
조금 슬픈 노래가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대로부터 이어져 온 잠자는 공주 이야기를 절망만으로 끝내지는 않는다. 아이돌은 탄식의 우상 같은 게 아니니까.
꿈 속에서 이야기를 잣자. 처음이자 마지막 키스를 추억으로 남기고, 마지막 잠자는 공주의 시작을 노래하자.
백 년의 세월이 흐르더라도. 나는 너를 만나러 가리라.
내가 계속 생각하는 한, 네가 내 마음속에서 없어질 일은 없으니까.
그리고 소중한 사람들이 곁에 있어 주었던 것을.
나는 계속――잊지 않는다.
이 소설은 픽시브에서 타마키 하야테(珠樹 颯)님이 연재하신 소설입니다. 허가를 받고 카와즈(かわづ)가 번역하였습니다. 원작자의 허가로, 이 소설은 작가와 번역가의 이름, 출처를 명기하면 전재가 가능합니다. 또한, 이 소설에 코멘트된 감상은 원작자에게도 전달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소설의 원본 주소 : http://www.pixiv.net/novel/show.php?id=46118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