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기상이었다. 일단 어둡다. 새까맣다. 오늘 아침 태양은 전혀 의욕이 없다고 생각했다.
누워 있는 곳도 차갑고 딱딱하다. 왜 이런 데서 자고 있었더라.
상반신을 일으켜 본다. 곧 머리가 뭔가에 부딪혀서 둔탁한 소리와 아픔을 만들었다. 아무래도 차갑고 딱딱하고 좁은 침상인 모양이다. 왜 이런 곳에…….
위를 막고 있는 무언가를 양 손으로 들어올려서 옆으로 미끄러뜨린다. 시야를 막고 있던 것이 점점 없어져도 눈앞에 있는 것은 똑같은 어둠이었으니 딱히 의미는 없었다.
이번에야말로 일어나서 어두운 방 안을 신중히 걷는다. 부딪히지 않도록 앞에 뻗고 있던 팔이 무언가에 닿았다. 이게 문일까.
손잡이라 생각되는 곳을 잡고 단번에 연다. 드디어 약간의 조명을 발견했나 싶었지만 미덥지 못한 양초 뿐. 방 밖으로 이어져 있는 것은 어두침침한 돌로 된 복도. 뒤돌아서 방 안을 보자 중안에 있던 건 칠흑의 관. 아무래도 저 안에서 자고 있었던 것 같다. 꽤나 취미가 나쁜걸.
막 일어난 머리가 영 움직여 주질 않는다. 왜 이런 데에 있는 건지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일단 이 강렬한 공복과 목마름을 어떻게든 하고 싶다. 밖에 나가야지.
복도 끝에 있던 나선 계단을 올라간다. 몸이 무거워서 발이 엉킬 것 같다. 일어나서 바로 가혹한 운동에 내몰릴 정도로 어제 나는 나쁜 일을 했던 걸까.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올라간 끝에 겨우 밝아졌다. 밖이 가깝다. 마지막 몇 계단을 단번에 뛰어 올라갔다.
지면을 밟고 선 내 뺨을 무척 오랜만인 것처럼 느껴지는 바람이 쓰다듬었다. 갑작스런 아침의 빛은 눈에 나쁠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난 팔로 챙을 만들면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눈부시다.
'치하야 짱.'
누군가에게 불린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잠들기 전에도 뭔가가 눈부셔서 눈을 가늘게 떴었던 것 같다.
――그래.
태양처럼 빛나는 웃음을 내게 보여 주었던 소녀.
"하루, 카――"
싹트는 것처럼 머릿속에 떠오른 그 이름을 입에 올리자, 시야에 비치는 햇빛이 조금 번졌다.
등 뒤에 있는 벚나무는 쓸쓸하게 갈색 줄기를 하늘로 뻗고 있다. 말라 비틀어진 팔처럼 벌려진 가지에 꽃은 피지 않았다.
흘러가는 세월은 모든 것을 바꾼 것이겠지.
여긴 분명 내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세계다.
그리고 내가, 죄와 추억을 끌어안고 앞으로 살아갈 세계다.
………
……
…
교사 주위를 빙 둘러봤다. 사람의 기척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벌써 몇 십 년도 더 전부터 누구도 발을 들이지 않은 것 같다. 미나세 상과 다른 애들이 마지막 졸업생이 된 것일까.
나를 신용하고 학원이 그 역할을 마쳤다면, 난 그 기대에 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다곤 해도. 딱히 뭘 분발할 것도 없이. 전혀 세계를 부수고 싶다는 상태가 될 조짐은 없었다.
난 내가 소중히 생각했던 사람들을 기억하고 있다. 내가, 그녀들이 사랑했던 세계의 귀중함을 알고 있다.
고대부터 이어져 온 잠자는 공주의 이야기는, 지금 끝난 것이다.
하지만 난 앞으로 한동안 살아가게 되는 셈이고. 앞으로 어떡하지. 일단 더이상 이 학원에 있을 필요는 없다.
학원을 한 바퀴 돈 내 발은 마지막으로 하루카와 만났던 언덕으로 향했다.
꽃을 달지 않은 벚나무에 등을 기대고, 그 날처럼 앉아 본다.
긴 세월을 지나 풍화한 교사. 그 주변에 펼쳐진 광대한 부지도 손질을 하지 않아서 잡초가 멋대로 자랐다. 당시의 정원 같은 풍경과는 많이 다르다.
그것들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문득 생각한다.
어쩌면 내가 본 미래의 광경은 지금인 것일까.
그러고 보니 꿈 속에서 벚나무에 꽃은 피지 않았었다. 미키를 쓰러뜨린 그 날에는 꽤 떨어지기 시작했다곤 해도 작은 핑크빛 꽃잎은 분명 있었다.
오싹하게 기분 나쁜 예감이 등줄기를 훑었다. 설마, 바꿨을 미래가 아직 이어지고 있나――?
하지만 조금 생각해 보고, 딱히 두려워할 것도 아니란 것을 깨닫는다. 아무도 없는 건 당연하다. 벌써 백 년이나 지나 버렸으니까. 그 쓸쓸함은 이제 내가 착실히 다시 짊어진 것들이다.
아직 조금 무겁다. 하지만 없어지지는 않을테고, 없애고 싶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이 쓸쓸함은 내 것이다. 내게 소중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분명한 증거다.
'이제 다들 없어져 버렸어. 하지만 있지, 난 여기 있어――'
미래의 것이라는 꿈 속에서 들었던 듯한 목소리가 뇌리에 메아리친다.
그래. 하루카는 확실히 여기에 있다. 내 추억 속에, 계속 있다. 언제든지 만나러 갈 수 있다.
괜찮아. 아직 나는 걸어갈 수 있어.
일어서려고 두 다리에 힘을 넣으려고 했을 때였다.
"너……아이돌이 되고 싶어?"
등 뒤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경악으로 눈이 크게 뜨였다.
그 질문이 갑자기 뭐라는 건지 영문 모를 것이어서가 아니라.
누구보다도 소중한 사람과 처음으로 나누었던 바로 그 말이어서.
그 목소리가 지금까지 이 학원에서 들은 누구의 것도 아니라서가 아니라.
작은 아픔과 작은 행복과 함께 떠올리고 있던 목소리였으니까.
그런,
설마――
천천히 뒤돌아본다.
검정색을 바탕으로 한 세일러 복을 입은 소녀가 서 있었다. 머리에 단 리본 두 개가 바람을 맞아 흔들리고, 봄 햇살과도 같은 따스한 미소를 띠고 있다.
아직 나는 꿈 속에 있는 걸까.
"하지만 있지, 이제 이 학원엔 백 년쯤 전부터 학생은 없어. 아이돌 같은 건 필요 없게 됐거든. 왜인진 알지?"
내가 일어서자 그 소녀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내게 다가온다.
"치하야 짱, 덕분이야."
소녀는 웃음을 띠고 내 눈앞에서 발을 멈추었다.
사고가 쫓아가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그 날 만났을 때 처음으로 떠올랐지만 입에 담지 않았던 의문을, 백 년이 지나 던져 본다.
"너는――누구야?"
불쑥 내민 오른팔을 천천히 뽑아 냈다.
푸른 빛과 함께 선혈이 소녀 복부에서 흘러나와, 그녀는 지면에 무너졌다.
"너, 너무해, 치하야 짱……. 난, 하루카, 야……."
그 소녀는 입에서도 피를 토하면서 엷은 웃음을 얼굴에 붙였다.
"나와 하루카의 추억을 바보 취급하지 마."
스스로도 소름 끼칠 정도로 낮고 차가운 목소리가 나왔다. 오른팔을 그녀에게 향하고 푸르스름한 불꽃을 쏜다. 목소리를 낼 틈도 없이. 먼지 한 톨 남기지 않고. 불꽃과 함께 그녀는 사라졌다.
불어 나가는 바람이 꽃잎이 없는 거목의 가지를 흔들었다.
털썩 무릎을 꿇었다.
누가.
어째서.
내게 이런 짓을 하지?
세계를 구했으니까 감사하라느니 그런 말은 안 한다. 하지만 이건 너무하지 않은가.
그 목소리에 이름을 불려도 마음 깊은 곳에서 따스함이 차오르는 느낌이 안 드는 '하루카'가, 하루카라고?
한 순간이라도 기대에 가슴을 두근대던 자신이 너무도 비참해서.
내 소중한 하루카는.
내가 사랑했던 하루카는.
하루카 말고는 있을 수 없는데도.
양손으로 얼굴을 덮는다.
내 안의 하루카조차 푸르스름한 불꽃과 함께 사라져 버린 것 같은 상실감.
아니다. 하루카를 죽인 건 내가 아니다. 난, 너를,
어떻게, 하고 싶었던 걸까.
이제 뭐가 뭔지 모르겠다.
이런 세계는 더이상――
………
……
…
정처없이 걷는다. 그저 걷는다.
어둡다. 어둡다. 어둡다. 여긴 어디일까.
어느새인가 밤이 돼 버렸다.
그보다, 꽤 전에 밤이 됐던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래도 좋다.
꽤나 멀리까지 왔다는 건 안다.
늘어선 빌딩이 하늘을 향한 나무들처럼 주위를 둘러싸고, 마치 숲 속에 헤메어 들어온 것 같다.
학원에서 하루 동안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도시는 없었으니까, 이것도 백 년이란 시간의 산물일 것이다.
태양 같은 건 어디에도 없는데 수많은 사람들과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 속에서 나는 어쩔 도리 없이 혼자였다.
이런 세계는 더이상, 나한텐 필요 없다.
하지만 전부 부숴버리려고도 생각지 않는다.
그럴 기력은, 없다. 분명 내 다리의 힘이 다 빠진 곳이 내 세계의 끝이 되겠지.
"잠, 깐, 기다려."
마지막 잠자는 공주는 아무래도 임종 때도 혼자일 것 같다. 아이돌에게 죽는 편이 그나마 나았을지도 모른다.
"저기, 기다리라니까!"
……성가신걸. 누군가가 말을 걸 정도로 심한 표정을 짓고 있었을까.
"겨우 따라잡았네!"
어깨를 붙잡혀서 혀를 차며 뒤돌아본다.
눈 앞에서 흔들리는 두 개의 붉은 리본.
"너무해 정말! 혹시 나 잊어버렸어? 그야 백 년 만이고――"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과 소원 끝에서.
"이제 다들 없어져 버렸어. 하지만 있지, 난 여기 있어."
세계의 운명이, 지금 여기에 수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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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난 줄 알았죠? 유감! 아직 더 남았답니다!
이 소설은 픽시브에서 타마키 하야테(珠樹 颯)님이 연재하신 소설입니다. 허가를 받고 카와즈(かわづ)가 번역하였습니다. 원작자의 허가로, 이 소설은 작가와 번역가의 이름, 출처를 명기하면 전재가 가능합니다. 또한, 이 소설에 코멘트된 감상은 원작자에게도 전달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소설의 원본 주소 : http://www.pixiv.net/novel/show.php?id=46118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