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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봇치더락SS] 잔소리는 됐으니까 좋아한다고 말해 - 5

더보기 기타 히어로는 고고한 천재여야 한다. 결속밴드에서도 특출난 재능을 가진 히토리 짱에게 애인 같은 게 생겼다간 소리나 가사에 지장이 갈 수밖에 없고, 더군다나 히토리 짱이 사귀는 건 어차피 상냥하고 붙임성 좋은 거유인 여자일 테니까. 그런 얄팍한 여자에게 넘겨주는 건 절대로 싫고 히토리 짱이 나를 봐 주지 않게 되는 건 엄청나게 싫다. 그러니까 이렇게 귀엽고 상냥하고 기타를 잘 치는 히토리 짱은 내가 지켜 줘야 해. 나쁜 어른은 히토리 짱 같은 쉬운 사람을 쉽게 찾아내니까. 내가 감싸서 소중하게 소중하게 키워 줘야 한다. 구제해야 할 대상을 생각하며 앞으로의 마음고생에 한숨을 쉬자 "무슨 일 있어요?" 하며 머그컵을 두 개 든 히토리 짱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그렇게 내게 묻는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

작업물/번역 2024.03.13

[봇치더락SS] 잔소리는 됐으니까 좋아한다고 말해 - 4

더보기 "방해야. 비켜." "앗, 넵……죄송합니다……." "그보다 왜 이런 데 있어? 잡초나 먹고 올 것이지." STARRY에서 라이브를 마친 후 홀에서 니지카 짱이 료 씨를 구박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오늘은 아침부터 두 사람 분위기가 최악이었다. 키타 짱은 분위기를 읽고 최대한 두 사람에게 말을 걸지 않았고 지금도 팬 대응을 하고 있지만 정말로 분위기가 나쁘다. 멀리서 보고 있던 내 옆에 점장님이 다가오자 똑같은 시선을 보냈다. "어, 어제까진 아무렇지도 않았었죠?" "멍청한 료가 다른 여자한테 밥을 얻어먹었다더라." "그, 그렇군요……." 니지카 짱은 즉 료 씨가 바람을 펴서 화가 난 듯했다. 하지만 밥을 얻어먹은 게 바람에 들어간다니 니지카 짱도 꽤나 엄격하다. 나였으면 삐치긴 했겠지만 아마 태도..

작업물/번역 2024.03.12

[봇치더락SS] 잔소리는 됐으니까 좋아한다고 말해 - 3

더보기 아무리 기다려도 한밤중의 저주는 그로부터 들리지 않게 되었고 벌써 이틀이 지났다. 키타 짱이 없는 걸 핑계삼아 하루종일 스튜디오에서 기타를 울리고 있으려니 찰칵 문이 열리고 금색 눈동자가 나를 본다. 나는 방해받은 듯한 기분이 되어 시선을 기타로 되돌리고는 연습을 재개했다. "계속 곤두서 있네, 이쿠요랑 무슨 일 있었어?" "딱히 아무일도 없었어요, 내버려 두세요." "그래선 있었다고 말하는 거나 마찬가지야." 료 씨는 베이스를 꺼내고 앰프에 연결해 피크를 들었다. 그 시점에서 뭔가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팔을 치켜들고, 아래로 휘두르면서 다운 스트로크. 볼륨이 맥스로 되어 있는 듯한 앰프에서는 폭발음이 울려펴지고 있다. 나도 모르게 귀를 막고 료 씨를 노려보았다. 장본인은 꼼꼼하게도 귀마개를 하..

작업물/번역 2024.03.11

[봇치더락SS] 잔소리는 됐으니까 좋아한다고 말해 - 2

더보기 "뭐야, 여기." "보는 대로 신주쿠예요." "그게 아니라." "키타 짱~, 봇치 짱~! 안녕~!" "늦었네." 휴일, 아직 자고 있는 키타 짱을 두들겨 깨워서 준비를 시키고 아무말도 하지 않고 전철을 타자 역시나 그녀는 당황했다. 무리도 아니다. 깨워져서 옷을 갈아입고 영문도 모르는 채 신주쿠에 와 보니 커플룩을 하고 들떠 있는 바보 커플이 눈앞에 나타났으니까. "저, 저기요?" "어라라~? 키타 짱하고 봇치 짱은 안 해~? 커플룩♡" "잠깐 잠깐, 둘은 아직 사귄 지 얼마 안 됐으니까. 뭐 우리들 같은 러브러브는 못하지~." 짜증나! 몰래카메라 비슷한 책략인 주제에 일부러 나를 도발할 필요는 없잖아요! 부들부들 주먹을 쥐고 있자 키타 짱은 물음표를 머리에 띄우고 있었다. "저, 저기 선배님들,..

작업물/번역 2024.03.10

[봇치더락SS] 잔소리는 됐으니까 좋아한다고 말해 - 1

"완전 무거운 키타 개념의 개그 보키타." 더보기 집에 돌아가면 또 시작이겠구만 생각하며 취기로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귀로를 걷는다. 기타 히어로로서 다른 밴드 라이브를 도와준 뒷풀이에서 꽤나 즐겁게 마셔서 지금은 기분이 좋다. 무엇보다 그 기타 히어로 님이죠! 라든가, 엄청나게 기타 잘 치시네요! 란 말을 들으면서 마시는 술은 정말 맛있었다. 그리고 다들 좋은 사람들이고 친절했지. 아파트에 도착해 아무도 없는 걸 핑계 삼아 콧노래를 부르면서 엘리베이터를 탄다. 결속밴드도 5주년이 되었고 나도 20살이 되었다. 메이저 데뷔하고 그럭저럭 벌고 있는 나는, 돈으로 고민하고 있지는 않지만 어떤 사람으로 고민하고 있다. 우리 밴드의 기타 보컬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인물은 한 사람밖에 없다. 카드키를 문의 센서에 대..

작업물/번역 2024.03.09

[봇치더락SS] Run through the Bluespring!!!!

"운동회입니다. 계절 같은 건 상관 없습니다. 제가 보고 싶을 뿐입니다. 돈이라면 좋은 가격으로 낼 테니까 한껏 청춘을 달려나가 줬으면." 더보기 학생인 이상 그 날을 피해갈 순 없다. 몇번 캘린더를 봐도 그 행사가 사라지는 일은 없었다. 1년에 한 번 최저최악인 지옥의 제전, 운동회. 안 그래도 체육 수업만으로 우울한데 그런 지옥을 축제라고 부르며 신나서 떠들다니 내가 보기엔 제정신이라곤 생각되지 않는다. 얼마 없는 친구 중 하나인 키타 짱이 바로 그래서, 종목을 정하는 날 아침부터 전신으로 두근두근을 체현. 키타 짱은 운동 신경 좋으니까 어떤 경기에 나가도 분명 활약하겠지……. 우리 학교는 한 사람이 적어도 2종목에는 출장하도록 되어 있다. 하나는 학년 공통 종목으로, 2학년은 이인삼각으로 정해져 있..

작업물/번역 2024.03.06

[봇치더락SS] 그곳은 마치 괴수의 품 속 - 14

더보기 따스한 햇살이 쏟아지는 봄, 벌써 겨울은 끝나고 조금 열어 둔 창문에서 불어 들어오는 봄바람에 나는 어쿠스틱 기타를 치면서 콧노래를 불렀다. 테마는 딱히 없다, 평소에 살면서 느끼는 행복이나 발견이나 성장이나, 그리고 이쿠요 짱에 대한 것. 나들이 갈 준비를 진작에 마친 나는 늘 입는 빛바랜 청바지와 검은 티셔츠라는 모습이지만 이쿠요 짱이 이 모습에 대해서 뭐라고 한 적은 없으니까 신경쓰지 않는다. 오늘은 기념할만한 사귀기 시작하고 5년째인 기념일. 우리들은 30대에 접어들었지만 그래도 오늘의 나는 뭔가 좀 다르다. 무려 오른쪽 주머니엔 반지가 들어 있다. 물론 데이트 코스는 정해 두어서 수족관에 간 뒤에 스카이트리를 올라 전망대에서 도쿄를 내려다본다. 그리고 디너를 둘이서 우아하게 보내고 돌아가..

작업물/번역 2024.03.05

[봇치더락SS] 그곳은 마치 괴수의 품 속 - 13

더보기 스튜디오에서 하는 수록이나 MV 제작 등 아무리 급하게 진행했다고는 해도 그럭저럭 시간이 걸리고 말았다. 키타 짱은 들어 줬을까 하고 카페트에 뒹굴면서 도쿄의 밤하늘을 바라보고 배에 올려 둔 어쿠스틱 기타를 연주한다. 내가 만들었지만 좋은 곡이 됐다고 생각한다. 키타 짱을 향한 마음을 충분히 부딪혔고 멜로디도 MV도 최고의 완성도다. 이제 키타 짱에게 전해지기를 기다릴 뿐. 키타 짱이니까 벌써 나 같은 건 잊고 다른 누군가와 있을지도 모르지만, 나한텐 키타 짱밖에 없으니까 곡에 진심을 계속 담을 수밖에 없다. 언젠가 키타 짱이 나를 돌아봐 줄 날까지, 계속. 그야 나는 키타 짱을 좋아하니까. 사랑하니까. 그러니 나는 곡을 계속 만들어 키타 짱에게 나를 새긴다. 계속해서 부풀어오른 키타 짱을 향한 ..

작업물/번역 2024.03.05

[봇치더락SS] 그곳은 마치 괴수의 품 속 - 12

더보기 스마트폰 스피커에선 항상 히토리 짱의 목소리가 들린다.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에 올라온 곡은 한참 전에 전부 다 들어서 곡도 가사도 모든 것이 머릿속에 들어 있었다. 당연히 나를 향한 말이나 목소리가 아닌 건 알고 있으면서도 마치 강박관념처럼 나도 모르는 내가 히토리 짱을 원해서 나는 재생을 멈출 수 없다. 쓰레기로 가득 찬 거실 안에서 나는 혼자 카페트에 뒹굴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흐린 하늘을 창문 너머로 바라보았다. 청소도 세탁도 나는 하는 법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쓰레기 버리는 날도 요리도 전부 모른다. 알고 싶지 않다. 히토리 짱이 돌아오지 않는단 건 알고 있는데 몸이 그럴 리가 없다고 떼를 쓰니까 나는 아무데도 갈 수 없다. 러그 위에서 히토리 짱의 목소리를 계속 듣다가 샤워를 적당히..

작업물/번역 2024.03.05

[봇치더락SS] 그곳은 마치 괴수의 품 속 - 11

더보기 기타 히어로는 커녕 Bocchi도 죽었다. 그렇게 세간은 하나도 모르는 채 나는 기타를 그만두고 반 년 가까이가 지났다. 덧글란에는 여러 억측이 엇갈렸지만 그래도 또 새로운 아티스트가 나오자 그쪽으로 관심은 옮겨갔다. 솔직히 기대받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베란다에서 담배에 불을 붙이고 연기를 폐에 가득 담고는 도쿄의 거리를 내려다본다. 없어져 버린 그 사람을 생각하면 지금도 멜로디가 떠오른다. 하지만 전하고 싶은 것도 그 사람인데 어째서인지 기타를 칠 수 없었다. 왼손은 아직 현을 기억하고 있을까. 연기가 끊어지는 시야 저편, 왼손을 바라보면서 어떠냐고 묻는다. 한숨을 쉬고 나는 담배를 재떨이에 눌러 끄고 거실로 돌아왔다. 계속 켜 놓은 텔레비전에서는 탤런트의 웃음소리가 방에 울리..

작업물/번역 2024.0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