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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봇치더락SS] 그곳은 마치 괴수의 품 속 - 10

더보기 엎어져 있는 금색이 놓아 둔, 테이블에서 떨어질 정도인 술 캔을 쓰레기봉투에 던져 넣어 까랑까랑 소리를 낸다. 마지막 하나를 버리려고 했을 때 손목을 붙잡고는 "그건 아직 마시는 중이야."하고 노려보았다. 예이예이 하고 캔에서 손을 떼고 일단 깨끗해진 테이블 위에 물과 내가 마실 차를 두었다. "또 봇치 때문에?" "……그런데." 새빨개진 얼굴을 조금 들고 으음 신음한다. 이쿠요와의 이별로부터 다시 일어서지 못한 봇치는 계속 방에서 썩고 있었다. 조만간 정말로 썩어 버릴지도 모른다. "뭐 나도 그렇게 세게는 못 말하지만." "시끄러……." "새 술 가져올까?" "됐어……." 술이 센 니지카는 많은 양을 마시지 않으면 취하지 못하니까 가성비가 나쁘다. 반대로 나는 한 캔으로도 취해 버려서 부럽기도 ..

작업물/번역 2024.03.05

[봇치더락SS] 그곳은 마치 괴수의 품 속 - 9

더보기 도쿄 스카이트리 밑, 소라마치 건물 안을 위로 나아가 에스컬레이터를 타면 수족관이 있다. 평일은 사람이 적어서 티켓을 산 다음 바로 안에 들어갈 수 있었다. 키타 짱의 손을 잡으면서 어두운 관내를 나아가 수조 안을 유유히 헤엄치는 작은 물고기들을 바라본다. 투명하게 흔들리는 흰 빛이 키타 짱의 얼굴을 비추어서 그걸 예쁘다고 생각했다. 금요일 밤에 우리들이 사랑을 나눈 뒤, 키타 짱이 보여 준 스마트폰 속에는 다음날 데이트 플랜이 드글거렸다. 이 집에 살기 전부터 별로 밖에 나가지 않는 나는 그 눈부심에 불탔지만 키타 짱의 부탁을 거절하지도 못하고 여기에 있다. 오피스 캐주얼에 몸을 감싼 평소와는 달리 오늘 키타 짱은 귀엽게 멋을 내서 나는 두근거렸다. 그에 반해 나는 청바지에 까만 티셔츠. 옆에 ..

작업물/번역 2024.03.05

[봇치더락SS] 그곳은 마치 괴수의 품 속 - 8

더보기 만원 전철 속 사람 틈에 끼어서 흔들리고 밀쳐지고, 그래도 선다.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정말 좋아하고 정말 싫어하는 사람 목소리. 사랑하는 사람의 다른 얼굴. 이런 게 있으니까 안 된다면서 빼앗은 기타는 여기 있어서, 내 귀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Bocchi는 계속 여기 있다. 덧없고 힘있는 목소리에 신음하는 기타 소리. 코멘트란은 칭찬의 폭풍. 하지만 그 중에는 드문드문 실종이란 글자가 있었다. 이 사람들에게 Bocchi는 이제 없다고 하면 뭐라고 할까. 웃기지 말라든가, 돌려달라든가 할까. 이 사람들이 보기엔 그냥 히토리 짱에겐 가치가 없겠지. 내겐 없어선 안 되는 것이 이 사람들이 보기엔 방해고, 좋아하는 음악을 못 즐기게 된 원인인 나를 분명 규탄할 것이다. 빼앗은 것은 어마어마하게 커서 ..

작업물/번역 2024.03.05

[봇치더락SS] 그곳은 마치 괴수의 품 속 - 7

더보기 마지막 빨랫감을 베란다에 널고 거실로 돌아오자 저녁을 만들 시간이 되어 있었다. 냉장고를 열고 오늘 저녁밥을 생각한다. 다진고기에 두부에 닭다릿살. 오늘 밤은 튀긴 두부 고기조림과 가라아게로 할까 하고 가루가 든 선반을 보자 녹말가루가 없었다. 그러고 보면 요전에 썼던가 하고 기억의 단편을 보며 한숨을 쉬고 메시지 앱을 열었다. 하지만 한가지 생각이 났다. 니지카 짱에게 발각된 지금 숨어 지낼 필요는 없다. 게다가 키타 짱에게 사 와 달라고 하는 것도 업무로 지쳐 있을 테니 부담이 될 테고, 그렇다면 직접 사러 가면 되잖아. 앞치마를 벗어 지갑을 들고 나는 선반에서 예비 카드키를 꺼내서 현관을 열고는 문을 잠갔다. 아직 이른 저녁인 지금 시간은 새하얀 구름이 주황색으로 물들어 예쁘다고 생각했다. ..

작업물/번역 2024.03.05

[봇치더락SS] 그곳은 마치 괴수의 품 속 - 6

더보기 생각하면 할수록 자신이 쓰는 곡은 재미가 없다. 먹히는 것에 먹히는 것을 겹친 팝송이라니 어이없다는 말 말고는 할 말이 없다. 시모키타자와의 팝 스타라니 너무 아이러니해서 웃음도 나오지 않는다. 자신이 만들고 싶은 곡은 더 어두침침하고 시커멓고 지저분한 금색인데. 봇치는 바보다. 바보인 주제에 좋은 음악을 만드니까 짜증이 난다. 이쿠요를 손에 넣고, 만들고 싶은 음악을 손에 넣고, 천성의 재능을 가지고 있는데. 내게는 없는 것으로 가득 차 있는 주제에 그러면서 하나밖에 필요 없다고 지껄이니까 바보다. 내가 봇치라면 전부 손에 넣는다. 진흙탕 싸움을 벌여서라도 전부 손에 넣었을 텐데. 눈앞의 견갑골을 깨물자 스마트폰을 보고 있던 금색이 아프다고 중얼거렸다. 또 한 번 물자 그만하라고 말해 온다. 어..

작업물/번역 2024.03.05

[봇치더락SS] 그곳은 마치 괴수의 품 속 - 5

더보기 야먀노테선을 달리는 전철 안, 나는 아직 밝은 도쿄의 거리를 바라보면서 히토리 짱에 대한 걸 생각한다. 가끔 시야에 들어오는 나무들은 잎을 떨구고 거리는 겨울로 옮겨 가려 하고 있었다. 히토리 짱과 만나고 3개월. 나는 히토리 짱의 정체를 눈치채기 시작했다. 그렇다기보다, 이미 눈치챘다. 기타를 칠 때 우연히 귀에 들어온 콧노래가 길가에 자주 흐르는 히트 메이커 목소리와 똑같았다. 그리고 요전에 서점 앞을 지나쳤을 때 시모키타자와 씨 얼굴이 보여서 나도 모르게 그 잡지를 손에 들었다. 야마다 료라고 적힌 그 옆에는 시모키타자와의 팝 스타라고 적혀 있었다. 이제는 확신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부풀어오른 추측은 히토리 짱을 머나먼 존재로 만들어 간다. 시모키타자와 역 홈에서 전철을 내려서 나는 느릿느..

작업물/번역 2024.03.05

[봇치더락SS] 그곳은 마치 괴수의 품 속 - 4

더보기 분홍색 피크로 미니 기타를 쳐서 소리를 즐긴다. 한 음 한 음을 정확하게 치는 게 이 크기로는 어렵지만, 쳐지면 즐거웠다. 그 프레이즈를 저녁에 돌아온 키타 짱에게 들려 주고 칭찬을 받는다. 그게 기뻐서 또 친다. 아마도 나는 쭉 칭찬을 원했던 거다. 그리고 잘한다고, 잘 친다고 말해 주길 원했던 거다. 열심히 했다고 칭찬해 줬으면 했다. 키타 짱은 나에게 뭐든지 준다. 뭐든지 주려고 하고, 뭐든지 이루어 주려고 한다. 키타 짱은 상냥하다. 나에 대한 건 아무것도 묻지 않고 아무것도 파헤치려 하지 않는다. 이 기타라도 괜찮다고 말해 주는 건 분명 키타 짱뿐이다. 레이블 사람한테 그렇게 말하면 뻔한 거짓말일 거라느니, 봇치 짱에겐 안 어울린다느니 말할 게 틀립없다. 제공된 값비싼 기타를 들려 놓고 ..

작업물/번역 2024.03.04

[봇치더락SS] 그곳은 마치 괴수의 품 속 - 3

더보기 눈앞에 앉아 있는 얼굴이 예쁜 여성은 내 타입이라 나도 모르게 홀린 듯이 보고 만다. 아이스커피를 마시는 동작이 우아해서 어딘가 좋은 집안에서 자란 느낌을 받았다. 멋들어진 인테리어의 카페 안은 차분하고 사람도 적어서, 눈앞의 여성은 슈퍼에서 계산하는 나를 밀어내고 대신 돈을 낸 다음 "할 말이 있어."라고 억지로 여기까지 나를 데리고 왔다. 단발머리 정도의 파란 머리칼과 나른해 보이는 표정은 그녀의 미스테리어스함을 증폭시키고 있었다. "그, 그래서, 저, 당신은……?" "날 몰라?" "어? 네, 네……." "흐응. 그럼 뭐, 그렇지, 적당히 시모키타자와 정도로 불러. 시모키타자와에 사니까." "에, 에?" 나를 보는 눈동자의 바로 옆, 두 개의 핀이 반짝 빛난다. 테이블에 팔꿈치를 대고 깍지를 ..

작업물/번역 2024.03.04

[봇치더락SS] 그곳은 마치 괴수의 품 속 - 2

더보기 도망친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싫증이 났으니까. 레이블과의 의견 결렬이라든가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든가 대단한 이유가 있으면 나도 조금은 가슴을 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건 없고 이젠 힘낼 수 없다고 생각한 나는 아무 말도 없이 사라져, 스마트폰의 위치정보를 끄고 전화도 메시지도 뭣도 전부 무시하길 계속하고 있다. 통장 정도는 가져오는 편이 좋았을까 생각해도 현금카드와 신용카드가 있고, 애초에 키타 짱 집에 살면서 돈을 쓸 기회는 적다. 원래부터 집에서 안 나가는 나에게 있어 이 생활은 체질에 잘 맞고, 무엇보다 키타 짱은 나 자신을 봐 준다. "이 주인공 어떻게 되는 걸까………역시 죽어 버리나……?" "글쎄요. 하지만 아마 안 죽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럼 좋겠지만, 뭔가 안 좋은..

작업물/번역 2024.03.04

[봇치더락SS] 그곳은 마치 괴수의 품 속 - 1

"의외로 마음은 편하네/그렇네요 키노코 테이코쿠 괴수의 품 속 https://youtu.be/W4eFAWRAPtY?si=zlyRSCHxFCLezDEM" 더보기 이제 곧 날짜도 바뀌어 버리는 금요일 밤, 불금이라고 들떠 있는 사원을 무시하고 지나쳐 시체처럼 걸으면서 회사를 나온다. 드디어 중대한 안건이 끝났다. 그 뒷풀이를 가자고 상사에게 권유를 받았지만 오늘은 이만 돌아가서 자고 싶다고 절실히 생각해서 그럴듯한 이유를 대고 거절했다. 도쿄의 하늘은 한참 옛날에 까맣게 물들어서 칠흑의 커튼을 드리우고 있다. 회사에서 아침해를 보는 날은 안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역까지 걸어가 전철을 탔다. 나 키타 이쿠요 스물 여섯살은 평범한 회사원이다. 평범한 고등학교, 평범한 대학을 나와서 평범한 기업에 취직. 블..

작업물/번역 2024.0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