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05 10

[봇치더락SS] 그곳은 마치 괴수의 품 속 - 14

더보기 따스한 햇살이 쏟아지는 봄, 벌써 겨울은 끝나고 조금 열어 둔 창문에서 불어 들어오는 봄바람에 나는 어쿠스틱 기타를 치면서 콧노래를 불렀다. 테마는 딱히 없다, 평소에 살면서 느끼는 행복이나 발견이나 성장이나, 그리고 이쿠요 짱에 대한 것. 나들이 갈 준비를 진작에 마친 나는 늘 입는 빛바랜 청바지와 검은 티셔츠라는 모습이지만 이쿠요 짱이 이 모습에 대해서 뭐라고 한 적은 없으니까 신경쓰지 않는다. 오늘은 기념할만한 사귀기 시작하고 5년째인 기념일. 우리들은 30대에 접어들었지만 그래도 오늘의 나는 뭔가 좀 다르다. 무려 오른쪽 주머니엔 반지가 들어 있다. 물론 데이트 코스는 정해 두어서 수족관에 간 뒤에 스카이트리를 올라 전망대에서 도쿄를 내려다본다. 그리고 디너를 둘이서 우아하게 보내고 돌아가..

작업물/번역 2024.03.05

[봇치더락SS] 그곳은 마치 괴수의 품 속 - 13

더보기 스튜디오에서 하는 수록이나 MV 제작 등 아무리 급하게 진행했다고는 해도 그럭저럭 시간이 걸리고 말았다. 키타 짱은 들어 줬을까 하고 카페트에 뒹굴면서 도쿄의 밤하늘을 바라보고 배에 올려 둔 어쿠스틱 기타를 연주한다. 내가 만들었지만 좋은 곡이 됐다고 생각한다. 키타 짱을 향한 마음을 충분히 부딪혔고 멜로디도 MV도 최고의 완성도다. 이제 키타 짱에게 전해지기를 기다릴 뿐. 키타 짱이니까 벌써 나 같은 건 잊고 다른 누군가와 있을지도 모르지만, 나한텐 키타 짱밖에 없으니까 곡에 진심을 계속 담을 수밖에 없다. 언젠가 키타 짱이 나를 돌아봐 줄 날까지, 계속. 그야 나는 키타 짱을 좋아하니까. 사랑하니까. 그러니 나는 곡을 계속 만들어 키타 짱에게 나를 새긴다. 계속해서 부풀어오른 키타 짱을 향한 ..

작업물/번역 2024.03.05

[봇치더락SS] 그곳은 마치 괴수의 품 속 - 12

더보기 스마트폰 스피커에선 항상 히토리 짱의 목소리가 들린다.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에 올라온 곡은 한참 전에 전부 다 들어서 곡도 가사도 모든 것이 머릿속에 들어 있었다. 당연히 나를 향한 말이나 목소리가 아닌 건 알고 있으면서도 마치 강박관념처럼 나도 모르는 내가 히토리 짱을 원해서 나는 재생을 멈출 수 없다. 쓰레기로 가득 찬 거실 안에서 나는 혼자 카페트에 뒹굴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흐린 하늘을 창문 너머로 바라보았다. 청소도 세탁도 나는 하는 법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쓰레기 버리는 날도 요리도 전부 모른다. 알고 싶지 않다. 히토리 짱이 돌아오지 않는단 건 알고 있는데 몸이 그럴 리가 없다고 떼를 쓰니까 나는 아무데도 갈 수 없다. 러그 위에서 히토리 짱의 목소리를 계속 듣다가 샤워를 적당히..

작업물/번역 2024.03.05

[봇치더락SS] 그곳은 마치 괴수의 품 속 - 11

더보기 기타 히어로는 커녕 Bocchi도 죽었다. 그렇게 세간은 하나도 모르는 채 나는 기타를 그만두고 반 년 가까이가 지났다. 덧글란에는 여러 억측이 엇갈렸지만 그래도 또 새로운 아티스트가 나오자 그쪽으로 관심은 옮겨갔다. 솔직히 기대받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베란다에서 담배에 불을 붙이고 연기를 폐에 가득 담고는 도쿄의 거리를 내려다본다. 없어져 버린 그 사람을 생각하면 지금도 멜로디가 떠오른다. 하지만 전하고 싶은 것도 그 사람인데 어째서인지 기타를 칠 수 없었다. 왼손은 아직 현을 기억하고 있을까. 연기가 끊어지는 시야 저편, 왼손을 바라보면서 어떠냐고 묻는다. 한숨을 쉬고 나는 담배를 재떨이에 눌러 끄고 거실로 돌아왔다. 계속 켜 놓은 텔레비전에서는 탤런트의 웃음소리가 방에 울리..

작업물/번역 2024.03.05

[봇치더락SS] 그곳은 마치 괴수의 품 속 - 10

더보기 엎어져 있는 금색이 놓아 둔, 테이블에서 떨어질 정도인 술 캔을 쓰레기봉투에 던져 넣어 까랑까랑 소리를 낸다. 마지막 하나를 버리려고 했을 때 손목을 붙잡고는 "그건 아직 마시는 중이야."하고 노려보았다. 예이예이 하고 캔에서 손을 떼고 일단 깨끗해진 테이블 위에 물과 내가 마실 차를 두었다. "또 봇치 때문에?" "……그런데." 새빨개진 얼굴을 조금 들고 으음 신음한다. 이쿠요와의 이별로부터 다시 일어서지 못한 봇치는 계속 방에서 썩고 있었다. 조만간 정말로 썩어 버릴지도 모른다. "뭐 나도 그렇게 세게는 못 말하지만." "시끄러……." "새 술 가져올까?" "됐어……." 술이 센 니지카는 많은 양을 마시지 않으면 취하지 못하니까 가성비가 나쁘다. 반대로 나는 한 캔으로도 취해 버려서 부럽기도 ..

작업물/번역 2024.03.05

[봇치더락SS] 그곳은 마치 괴수의 품 속 - 9

더보기 도쿄 스카이트리 밑, 소라마치 건물 안을 위로 나아가 에스컬레이터를 타면 수족관이 있다. 평일은 사람이 적어서 티켓을 산 다음 바로 안에 들어갈 수 있었다. 키타 짱의 손을 잡으면서 어두운 관내를 나아가 수조 안을 유유히 헤엄치는 작은 물고기들을 바라본다. 투명하게 흔들리는 흰 빛이 키타 짱의 얼굴을 비추어서 그걸 예쁘다고 생각했다. 금요일 밤에 우리들이 사랑을 나눈 뒤, 키타 짱이 보여 준 스마트폰 속에는 다음날 데이트 플랜이 드글거렸다. 이 집에 살기 전부터 별로 밖에 나가지 않는 나는 그 눈부심에 불탔지만 키타 짱의 부탁을 거절하지도 못하고 여기에 있다. 오피스 캐주얼에 몸을 감싼 평소와는 달리 오늘 키타 짱은 귀엽게 멋을 내서 나는 두근거렸다. 그에 반해 나는 청바지에 까만 티셔츠. 옆에 ..

작업물/번역 2024.03.05

[봇치더락SS] 그곳은 마치 괴수의 품 속 - 8

더보기 만원 전철 속 사람 틈에 끼어서 흔들리고 밀쳐지고, 그래도 선다.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정말 좋아하고 정말 싫어하는 사람 목소리. 사랑하는 사람의 다른 얼굴. 이런 게 있으니까 안 된다면서 빼앗은 기타는 여기 있어서, 내 귀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Bocchi는 계속 여기 있다. 덧없고 힘있는 목소리에 신음하는 기타 소리. 코멘트란은 칭찬의 폭풍. 하지만 그 중에는 드문드문 실종이란 글자가 있었다. 이 사람들에게 Bocchi는 이제 없다고 하면 뭐라고 할까. 웃기지 말라든가, 돌려달라든가 할까. 이 사람들이 보기엔 그냥 히토리 짱에겐 가치가 없겠지. 내겐 없어선 안 되는 것이 이 사람들이 보기엔 방해고, 좋아하는 음악을 못 즐기게 된 원인인 나를 분명 규탄할 것이다. 빼앗은 것은 어마어마하게 커서 ..

작업물/번역 2024.03.05

[봇치더락SS] 그곳은 마치 괴수의 품 속 - 7

더보기 마지막 빨랫감을 베란다에 널고 거실로 돌아오자 저녁을 만들 시간이 되어 있었다. 냉장고를 열고 오늘 저녁밥을 생각한다. 다진고기에 두부에 닭다릿살. 오늘 밤은 튀긴 두부 고기조림과 가라아게로 할까 하고 가루가 든 선반을 보자 녹말가루가 없었다. 그러고 보면 요전에 썼던가 하고 기억의 단편을 보며 한숨을 쉬고 메시지 앱을 열었다. 하지만 한가지 생각이 났다. 니지카 짱에게 발각된 지금 숨어 지낼 필요는 없다. 게다가 키타 짱에게 사 와 달라고 하는 것도 업무로 지쳐 있을 테니 부담이 될 테고, 그렇다면 직접 사러 가면 되잖아. 앞치마를 벗어 지갑을 들고 나는 선반에서 예비 카드키를 꺼내서 현관을 열고는 문을 잠갔다. 아직 이른 저녁인 지금 시간은 새하얀 구름이 주황색으로 물들어 예쁘다고 생각했다. ..

작업물/번역 2024.03.05

[봇치더락SS] 그곳은 마치 괴수의 품 속 - 6

더보기 생각하면 할수록 자신이 쓰는 곡은 재미가 없다. 먹히는 것에 먹히는 것을 겹친 팝송이라니 어이없다는 말 말고는 할 말이 없다. 시모키타자와의 팝 스타라니 너무 아이러니해서 웃음도 나오지 않는다. 자신이 만들고 싶은 곡은 더 어두침침하고 시커멓고 지저분한 금색인데. 봇치는 바보다. 바보인 주제에 좋은 음악을 만드니까 짜증이 난다. 이쿠요를 손에 넣고, 만들고 싶은 음악을 손에 넣고, 천성의 재능을 가지고 있는데. 내게는 없는 것으로 가득 차 있는 주제에 그러면서 하나밖에 필요 없다고 지껄이니까 바보다. 내가 봇치라면 전부 손에 넣는다. 진흙탕 싸움을 벌여서라도 전부 손에 넣었을 텐데. 눈앞의 견갑골을 깨물자 스마트폰을 보고 있던 금색이 아프다고 중얼거렸다. 또 한 번 물자 그만하라고 말해 온다. 어..

작업물/번역 2024.03.05

[봇치더락SS] 그곳은 마치 괴수의 품 속 - 5

더보기 야먀노테선을 달리는 전철 안, 나는 아직 밝은 도쿄의 거리를 바라보면서 히토리 짱에 대한 걸 생각한다. 가끔 시야에 들어오는 나무들은 잎을 떨구고 거리는 겨울로 옮겨 가려 하고 있었다. 히토리 짱과 만나고 3개월. 나는 히토리 짱의 정체를 눈치채기 시작했다. 그렇다기보다, 이미 눈치챘다. 기타를 칠 때 우연히 귀에 들어온 콧노래가 길가에 자주 흐르는 히트 메이커 목소리와 똑같았다. 그리고 요전에 서점 앞을 지나쳤을 때 시모키타자와 씨 얼굴이 보여서 나도 모르게 그 잡지를 손에 들었다. 야마다 료라고 적힌 그 옆에는 시모키타자와의 팝 스타라고 적혀 있었다. 이제는 확신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부풀어오른 추측은 히토리 짱을 머나먼 존재로 만들어 간다. 시모키타자와 역 홈에서 전철을 내려서 나는 느릿느..

작업물/번역 2024.03.05